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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Nov 22. 2015

김장을 하면서

몸을 비틀면 술이 뚝뚝 떨어질듯

자정 넘게 술로 채워져 코 곯고 누운 남편처럼

소금에 푹 절여져 축 늘어진 배추들.


칼날처럼 위험한 세상사와 상관없이

까륵까륵 새하얗게 쏟아지는 아이들 웃음처럼

강판 밑으로 한가득씩 쌓이는 무채들.


김장비닐처럼 서걱거리는 일상 속에서

인생의 깊이를 더해 가는 눈물과 기쁨처럼

맵고 짜고 달고 향긋한 양념들.


엄마는 무채와 양념을 대야에 넣고

온몸으로 껴안아 비비고 버무린다.

엄마 품속 아이 볼처럼

발그레 윤기 나는 배추속.


온 식구가 둘러 서서

배추잎 사이사이에 배추속을 채운다.

배추잎 한장씩을 곱게 쓰다듬으면

혈관에 피가 돌듯 김치는 생명이 된다.


김치통마다 그득그득

가족의 일 년이 탐스럽게 담긴다.

몸살이 나 일찍 누운 엄마의 얼굴에

적금 통장의 동그라미 같은 웃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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