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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Nov 22. 2015

내부자들

'욕망의 카르텔'을 파헤치다

온 국민의 지탄을 받는 무능하고 부도덕한 위정자. 우리 사회에는 그들을 몰아내기 위한 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한 건 그들이 자리에서 물러나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 욕망의 시스템.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바로 그 시스템이기에 선수 몇 명이 바뀐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것이다.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은 ‘재벌-언론-정치’가 결탁한 카르텔이 어떻게 그들의 욕망을 채워 가고 있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영화는 정치 깡패 안상구(이병헌 분)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 장필우(이경영 분)와 재벌 오 회장(김홍파 분)의 비자금 스캔들을 폭로하는 기자 회견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플래시백. 안상구가 왜 기자 회견장에 서게 됐는지를 시간을 거슬러 파헤친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상위 1% 카르텔의 추악한 모습들. 내부자들의 생활상을 통해 클로즈업되는 욕망의 민낯은 그들의 카르텔이 오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임을 드러낸다. 국가의 경제를 위해서니, 국민들을 위해서니 하는 구호들은 싸구려 화장품처럼 역겨운 가식일 뿐이다.


내부자들의 카르텔은 그들 욕망의 크기만큼이나 견고하다. 꽤 치밀해 보이는 안상구의 작전들도 그들에겐 좀처럼 먹히질 않는다. 특히 유명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분)의 노련한 대처에서는 언론의 프레임에 따라 진실이 왜곡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조성하여 대중들의 분노가 카르텔의 담장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들의 영악함과 우리들의 우둔함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며 복수의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대목이었다.


회장님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 나가던 깡패였지만, 안상구 혼자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적이었다. 위기에 처한 안상구의 앞에 나타난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 빽 없고 족보가 없어 늘 승진을 눈앞에 두고 주저앉는 그에게 장필우를 잡는 일은 황금동아줄이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조직의 개처럼 일하다가 급기야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 우장훈의 모습은 현실의 사건들과 매칭이 되어 씁쓸했다. 결국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서만 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아니어서 힘들기는 하겠지만, 대중이 힘을 합치면 거대한 비리의 카르텔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봐야, 1% 대 99%의 싸움이 아닌가? 이 질문의 답을 이 영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수준에서 각각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규모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치는 ‘내부자들’이다. 그리고 커 가는 욕망의 금고를 더 채우기 위해 상위의 카르텔로 상승할 기회를 찾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암묵적으로 서로의 욕망을 묵인하고 타협하는 것이다. 오직 내가 그 타협의 결과로 희생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개개인의 욕망이 그룹으로 묶여 레이어를 이루고, 수많은 욕망의 수만큼 겹쳐진 레이어가 한 장의 이미지로 합성된 사회. 원본의 레이어들을 하나하나 뜯어 보지 않으면 수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나서서 내 주변부터 돌아보지 않는 한, 이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장을 나와 생각이 이쯤에 이를 무렵, 아침 일찍 조조영화를 보느라 공복인 탓인지 속이 쓰리고 아팠다. 속을 채워도 한동안은 통증이 계속될 듯하다.





감독판 '디 오리지널'을 봤다. 개봉판에 비해 러닝 타임이 50분이나 늘었다. 개봉판의 러닝 타임이 2시간 10분이나 됐지만, 각 인물들의 욕망을 형상화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타협하고 갈등하는지를 풀어 놓는 데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복수극의 플롯을 중심으로 사건 전개에 치중하다 보니 인물의 내면과 인물 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드러내는 데 아쉬움이 있었다.


감독판에서 늘어난 분량은 사건의 전체 맥락에서 숨어 있던 부분들을 확대하여 보여 준다.

인물의 속사정과 사건의 배후까지 구체적으로 살아나면서 전체적으로 개연성이 강화되었다. 그 결과 영화의 내용은 내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정의롭지 않은 사회에 대한 공포가 배가된다. 그리고 더 자세한 전체 맥락을 얻게 된 관객들은 인물들이 속마음을 감춘 채 가식적으로 드러내는 발화의 허위성을 간파하게 된다. 그러한 허위들이 진실로 포장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욕망의 실체는 더욱 선명해진다. 결국 이 사회는 자기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타협으로 유지되기에 설사 그것이 부조리하다 해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이 극대화된다. 쿠키 영상을 보고 난 후에는 가슴속에서 메아리치는 패배감 때문에 극장 밖으로 얼른 도망치고 싶어졌다.


50분이 늘어난 감독판. 시간이 늘어난 것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의 울림은 확실히 더 깊고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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