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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Dec 11. 2015

2015년 여름

펄펄 끓는 바닷물에 통으로 삶아진 바지락과 길바닥에서 프라이로 익어 가는 달걀을 보며 폭염으로 인해 지구가 어떻게 되어 버리지는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지난여름.

유행병이 번져서 사람들이 외출을 삼가고 마음의 빗장까지 걸어 잠그며 수술실에서나 쓴다는 마스크를 용케도 하나씩 구해서 시위하듯 덮어쓰고 침묵 속에 지내던 지난여름.

정수리에 구멍을 낼 듯한 햇살의 인두질은 그치질 않고, 앓아누운 환자의 입김처럼 뜨겁고 축축한 공기는 더욱 끈끈해져서 급기야 나는 피서 행위를 일절 포기하고 물먹은 이부자리처럼 무기력한 포로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울긋불긋한 단풍의 대규모 공습이 펼쳐지고, 지난여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비로소 여름의 속박에서 벗어난 나는 겨울의 채찍에 비위를 맞추며 민첩하고 유연한 처세술로 새롭게 겨울의 포로가 되어 눈송이 같은 웃음을 흩뿌리고 있다.

계절이 가고 올 때마다 호들갑을 떨고 제 몸 하나 보전하는 길에 온 정성을 다하는 나는 지난 일은 빨리 잊어버리는 장점 덕분에 포로로 지내는 일이 부끄럽지 않다.

그래서 상식이 사라지고, 독선과 아집이 유례없는 폭력으로 집권하는 이 세상이 여름이었다가 겨울이었다가 물벼락을 퍼붓다가 꽁꽁 얼어붙더라도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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