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오래 전 어느 겨울에
나는 대포항에 있었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저녁부터 눈이 내렸는데
숙소로 돌아오는 밤길이 눈에 묻혀 사라졌다.
다음 날 한낮이 돼서야 눈을 떴을 때도
창밖에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분첩을 두들기는 새색시 얼굴처럼 환한 유리창.
바깥세상은
폭설의 계엄령이 내린 비상사태였다.
나는 어찌할 수 없이
숙취에 절은 몸을 흰 침대에 누이고
하루를 꼬박 아무 일도 안 하고 보냈다.
세상으로부터의 완벽한 고립.
눈보라의 부지런함은
나에게 게으름을 선물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는
처음 느끼는 자유였다.
지금도 그 겨울의 추억이 황홀하게 떠오른다.
아이들의 끝없는 수다에 머리가 아파지거나
따뜻한 이불 속에 웅크리고
내일 회사에서 할 일들을 생각하다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