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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Apr 06. 2016

대배우

성공을 꿈꾸는 그대에게

아내의 수영 선생님은 연극배우이다. 낮에는 수영장을 다니며 수영을 가르치고, 밤에는 극단에서 연기를 한다. 선생님의 고된 일상이 상상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치열하게 살면서 꿈을 지켜 나가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늘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오랜 기간 준비한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와 나는 극장에 갔다. 30석 정도의 소극장이었다. 허술한 무대, 빈약한 스토리. 조금은 민망할 정도였다. 혹시라도 그 마음을 들킬까 봐 연기자들의 눈치를 살피던 중, 그들의 눈에서 불빛을 보았다. 어두운 무대에서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 마음속의 뜨거운 열정이 고스란히 비쳐 나는 것 같았다. 볼품없는 극장이어서 오히려 그들은 더욱 빛났다. 그 열기에 현실 속에서 얼어붙은 내 마음도 조금씩 녹고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무대에서 선생님과 인사를 나눌 때, 나는 두 손을 건네 그와 악수했다. 내가 받은 감동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꿈이 온전히 유지되며 더 자라나길 빌었다.

     

이렇게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석민우 감독의 ‘대배우’에서 소개되고 있다.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고, 낮에는 연기를 하는 사람들. 생계유지와 연기에 대한 열정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하는 사람들. 그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대책 없고, 무능력해 보이는 20년 차 무명배우 장성필(오달수 분)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장성필은 예전에 극단 생활을 함께했던 설강식(윤제문 분)이 국민배우로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자신도 영화계에 진출하여 성공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면서 장성필은 좌충우돌하며 배역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과정에서 성공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가 엿보였다. 처음에 짐작했던 영화의 내용은 무명배우의 성공기를 다룬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시사회를 본 이들이 ‘억지 감동’이라는 공통적인 반응을 보인 탓이기도 했다. 실제 영화를 본 후에 내용을 곱씹어 보니 이 영화는 성공을 꿈꾸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첫 번째 이야기

‘시간에 속지 말라’

장성필은 자신의 연기 경력을 소개하며 ‘20년’이라는 시간을 강조한다. 연기를 20년 동안 해 온 것보다 지금 연기를 얼마나 잘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데도 말이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려 보자. 거기서 소개되는 인물들은 손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물건을 만들거나 안 보고 던져도 물건이 제자리에 놓일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선보인다. 한 가지 업의 전문가로 인정받으려면 적어도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 정도의 실력을 본 후에야 우리는 그 일에 공들인 시간을 존중하게 된다. ‘저런 경지에 오르기까지 20년 동안 정말 열심히 노력했겠구나.’ 하고 말이다. 성공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나는 어느 위치에 이르렀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주 많은 시간 동안 그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은 착각이고, 자위다.

     

두 번째 이야기

‘성공하려면 가족부터 챙겨라’

꿈을 좇는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에 쫓기는 장성필. 아내가 내미는 각종 고지서에 마음이 무겁다. 자신은 성공을 향해 훨훨 날고 싶지만, 가족이라는 짐 때문에 현실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고 푸념한다. 어디서 많이 본 레퍼토리다. 먹고사는 일에 힘겨운 가장들이라면 익숙한 술안주가 아닌가? 꿈과 점점 멀어지고,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처지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기제다. 그런 자기변명에서처럼 가족은 우리의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일까? 미국을 대표하는 톱 CEO 50명 중 43명은 가족에 충실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건강한 가정생활이 주는 기쁨과 심리적 안정을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영화 속 장성필도 마찬가지다. 그가 변변한 돈벌이도 못하면서 대학로 극단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책을 팔러 다니는 아내의 수고가 있기 때문 아닌가? 또 아빠의 연극을 홍보하는 아들의 덕에 극장을 가득 채울 수 있지 않았나? 그런 가족의 도움과 희생에 감사하고, 가족의 믿음에 부응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씩씩하게 걸어갈 때 성공의 길이 열릴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

‘기회는 남이 줄 수 있지만, 증명은 내가 해야 한다’

장성필은 결국 설강식의 도움으로 배역을 따낸다. 드디어 기회를 잡은 것이다. 우리도 장성필처럼 인맥, 혹은 운으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그 기회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자에게만 성공은 미소 짓는다. 장성필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무기로 절실함을 내세웠다. 엉망이 되어 버린 삶을 복구해야 하는 절실함에서 나오는 열정. 그는 열정의 망치로 신체를 훼손하면서까지 기회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미 세상이 변했다. ‘열심히’ 보다는 ‘잘 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시대다. 나만 절박한 게 아니고, 누구나 다 열심히 하니까.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기 위해 꾸준히 자신을 단련하며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준비가 되어 있을까? 기회를 바라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영화의 군데군데에서 등장하는 신파조의 배경음악이 거슬렸다. 그래서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로 영화를 보다 보니, 장성필에게서 성공을 위한 반면교사(反面敎師)의 메시지를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뻔한 자기계발서에나 등장할 법한 메시지들을 말이다. 평소 같으면 그와 함께 울고 웃으며 공감하는 부분이 더 많았을 텐데, 아쉬운 연출 덕에 낯선 경험을 하게 되었다. 코미디와 드라마가 매끄럽지 않게 뒤섞여 있는 가운데 그나마 자연스러워 보인 것은 ‘천만 요정’ 오달수의 연기였다. 그는 주연도 훌륭히 소화할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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