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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Apr 16. 2016

독수리 에디

미래를 지원하는 방법


오래전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덱스터 플레처 감독의 ‘독수리 에디’를 본 후에 생각이 나서 찾아봤다. 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하던 아들은 등수와 상관없이 해맑게 웃고 있다. ‘운동회 달리기’ 하면 손등에 찍은 등수 도장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나로서는 아들의 미소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중에 함께 사진을 보며 물어봤다. 왜 웃었냐고. 아들은 그냥 친구들과 뛰는 게 재미있어서 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뛰는 것 자체가 재미있을 뿐, 등수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웃는 아들을 보니,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다짐했다. 아들의 그 순수한 마음과 소박한 행복을 지켜 주겠다고. 적어도 옆에서 아들의 경쟁심을 부추기거나 생존을 들먹거리지는 않겠다고.


‘독수리 에디’에는 그 순간에 들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주인공 에디(태런 에저튼 분)는 한쪽 다리에 장애를 지니고 있는 아이였다. 그런 그에게 꿈이 있었으니, 바로 올림픽 대표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운동에 소질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표선수의 꿈을 위해 다양한 종목에 도전했다. 육상선수에서 알파인 스키선수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영국에서 유일한 스키점프 선수로 종목을 바꾸며 대표선수의 꿈에 접근해 간다. 그러는 과정에서 에디는 다리에 찬 보조기를 떼어 낸다. 꿈을 향해 달리다 보니, 현실의 장애도 조금씩 극복하게 된 것이다. 꿈이 확실한 비전으로 작용할 때, 개인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전략을 수정한 에디. 하지만 처음 해 보는 스키점프는 어렵기만 하다. 15미터 점프대에서 점프를 한 번에 성공하자 자신감을 갖고 40미터에 도전했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넘어지고 구르기만 할 뿐 제대로 착지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에디를 비웃으며 스키점프는 어린 나이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2세의 에디에게는 너무 늦었다고 말했지만, 에디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착지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왕년에 미국대표팀 유망주였던 피어리(휴 잭맨 분)를 어렵게 설득하여 착지법을 배우고 만다. 그리고 마침내 70미터 점프대에서 점프를 성공한다. 에디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해법을 찾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실력 없고 나이 많은 에디였지만, 꿈에 다가서는 모습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그렇게 묵묵한 걸음으로 두드리고 또 두드릴 때, 비로소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는 것. 꿈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이렇게 에디가 꿈을 향해 달려가는 데 든든한 지원자가 있었으니, 바로 엄마다. 그녀는 다소 황당한 에디의 꿈 이야기를 들어주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엄마라면 당연히 그런 것 아니냐고? 어느 부모가 자식을 끔찍하게 사랑하지 않을까마는 대체로 사랑의 표현은 에디의 아버지처럼 하고 있지 않나 싶다. 내 자식이 사회에 나가 변변한 직업도 없이 자리를 못 잡으면 어떻게 하나? 그러니 내가 없어도 살아남을 수 있게 자립하는 길을 열어 주어야겠다. 이런 식으로 자식에 대한 사랑이 표현되는 일이 내 주변에는 많다. 영화 속에서는 에디의 아버지가 에디에게 미장일을 가르치려 한다. 가능성도 없는 꿈에 매달려 사는 아들의 현실적 미래가 심히 걱정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에디가 아버지의 제안대로 미장일을 계속 배웠다면 어땠을까? 터져 나오는 기쁨에 독수리 춤을 신바람 나게 추는 에디를 볼 수 있었을까? 자신의 평생 꿈을 이루어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사나이를. 신이 주신 재능으로 충만했던 피어리도, 스키점프 세계 기록 보유자도 에디보다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아버지로서 고민한다. 내가 바라는 것이 자식의 행복이라면 진정 자식이 바라는 꿈을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자식의 미래를 걱정한다고 했지만, 그 미래는 결국 내 머릿속에서 설계한 것이 아닌가? 내가 지어 놓은 세상에서 자식이 과연 행복하게 웃으며 살 수 있을까? 아마도 굶지는 않겠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하게 지내지 않을까 싶다. 에디의 엄마는 현명했다. 아들을 믿고 지켜보며 그가 필요한 것들을 아무 말 없이 지원해 주었다. 그 덕에 에디는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온갖 시련을 극복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기쁜 웃음도 함께. 에디는 헤아릴 수 없는 영혼의 재산을 가진 진정한 부자가 되었다. 이런 결과로 볼 때, 에디의 엄마는 자식이 경쟁에서 이겨 잘 먹고 잘 살라고 학원에 보내는 우리네 부모보다는 훨씬 효과적인 투자를 한 셈이다. 자식의 미래를 지원하려면 자식의 꿈에 투자하기를 권한다.


경쟁보다 즐기기를 좋아하는 아들의 여유를 지원하겠다는 페이스북의 글을 다시 본다. 고백하자면 그 날의 다짐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본 시험 점수를 들으면, ‘다른 아이들은 몇 점이야?’를 꼭 물었다. 경쟁에서 아들의 위치를 꼭 확인하려 했다. 그리고 그 위치가 항상 높은 곳에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들의 여유에 조바심을 내고 아들을 닦달했다. 그런 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나는 아비로서의 부족함을 반성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뿌듯하고 재미를 느낄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무겁고 부끄러웠다. 그렇게 심각해지고 있을 때, 함께 영화를 본 딸아이가 다가와 한 마디 외쳤다. “난, 비둘기 이한이야!” 독수리 에디를 패러디한 딸아이의 세리머니까지 보면서 온 가족은 웃음꽃을 피웠다. 바로 이 순간의 웃음, 그것을 아이들이 늘 간직하고 살 수 있도록 든든하게 지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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