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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May 30. 2016

철원기행

아버지를 향한 이해의 여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우가 낭송한 시다. 웃음을 기대하던 순간에 갑자기 접해서인지 허를 찔린 심정이었다. 정확히는 평생 동안의 죄책감 때문에 잠시 숨이 턱 막혔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나는 그래야 되는 줄 알았던 나.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몰염치함에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김대환 감독의 ‘철원기행’은 당연히 그래도 되는 줄 알았던 아버지가 그러지 않는 것에 반응하는 식구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평생을 철원의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한 아버지(문창길 분)가 정년퇴임을 하는 날, 각자 떨어져 살던 어머니(이영란 분)와 큰아들 내외(김민혁, 이상희 분), 막내아들(허재원 분)은 눈발이 휘날리는 한겨울의 철원으로 향한다. 초라한 퇴임식에 이어진 불편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는 “이혼하기로 했다.”라고 덤덤히 말한다.

    

갑작스러운 폭탄선언의 피해자가 된 어머니는 철원을 떠나려 하지만 때마침 쏟아진 폭설 탓에 발이 묶이고 만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억지로 함께 지내게 된 가족들. 함께 머무는 2박 3일 동안 서로에게 무심했던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부대끼며 서로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각자가 경험하는 여러 갈래의 여정 중, 이 작품의 중심으로서 가장 와 닿았던 것은 큰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간다는 메시지는 짧은 여행이 안겨 준 뜻깊은 선물이었다. 그 따뜻했던 여정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본다.     


‘눈’은 가족들 간의 갈등을 상징한다. 눈이 내릴 때 바로 치우지 않으면 눈은 쌓여 사람들을 고립시키거나 빙판이 되어 사람들의 소통을 어렵게 한다. 성근의 가족들도 사소한 갈등을 해소하지 않고 방치해 둔 덕에 위태로운 빙판 위에서 서로를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각자는 넘어져 다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게 되고 자기 한 몸 건사하는 데 온 신경을 쓰게 된다. 그래서 결국 개인으로서의 삶에 집중하여 가족은 해체되는데, 그렇게 뿔뿔이 흩어지는 가족들을 한 곳에 붙들어 매는 매개체가 되는 것 또한 ‘눈’이다. 눈은 따뜻한 손길에 한 덩이로 뭉쳐져 고운 눈사람이 되지 않는가? 그리고 또 ‘눈’은 사람들을 서로 기대고 의지하게 한다. 술 취한 아버지가 눈길에 넘어질까 봐 부축하여 돌아오는 두 아들의 모습은 어려운 생활 속에서 결국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가족의 존재를 부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늘 혼자서 눈을 치우던 아버지와 함께 큰아들이 눈을 치우는 장면에서는, 가장으로서의 동질감을 바탕으로 갈등 해소의 역할을 다하려는 큰 아들의 변모를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 ‘눈’은 사건의 전개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차갑고도 따뜻한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하며 인물의 심리와 관계를 형상화하는 시각적 요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철원

‘철원’이라고 하면, 먼저 군부대가 떠오른다. 거기서 유추된 것이겠지만, 철원은 개인생활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임무를 받아 근무하는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곳에서 가족과 떨어져 정년 때까지 근무한 아버지. 이런 설정은 개인의 욕망을 억누르고 가족 부양이라는 임무를 다한 아버지 인생의 척박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정년퇴임 이후에도 그 척박한 공간에서 머물겠다고 한다. 거기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그처럼 소박한 꿈을 고백하듯 큰아들에게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가족의 거처에 자신의 욕망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는 오늘날 아버지들의 처지를 보여 주는 듯해서 씁쓸했다. 가끔씩 면회 오는 가족들이 들렀다가 떠나는 철원처럼 아버지는 늘 거기에 똑같은 모습으로 있으면서 해야 할 일을 묵묵히 다하는 존재인 것이다.     


선생님, 그리고 아버지

아버지는 평생을 평교사로 살아온 인물이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정년퇴임식. 그보다 더 초라하고 굴욕적인 사은회(謝恩會). 아버지가 평생을 바깥에서 어찌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기 목적 달성을 위해 자신을 괴롭히는 제자에게 “이제 그만 좀 하지.” 하며 역성을 내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는 평생을 다른 사람들의 욕망 아래에서 살아온 피로감이 느껴졌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그 억눌린 피로감을 피부로 느끼며 아버지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니 술 잘 마시고 잘 놀겠다는 식의 조롱을 받으면서 평생 동안 굴욕을 참아 온 아버지의 삶에 연민과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제자와 아들의 꿈을 이루는 데 기여하는 삶. 그 노역(勞役)에서 벗어나는 순간의 욕망을 아버지는 “이혼하기로 했다.”라는 말로 선포한 것이 아닐까?     


감자

아버지는 감자 농사가 잘 되었다며 감자를 건넸지만, 큰아들은 먹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아들은 감자탕의 감자를 좋아하는데도 말이다. 이런 시퀀스들을 연결해 보자면, 감자는 ‘아버지의 정(情)’을 상징하는 소재이다. 감자는 아버지의 삶처럼 초라하다. 자라면서 바라보는 아버지의 초라한 삶을 외면하고 싶었기에 큰아들은 어머니의 기억처럼 원래 좋아했던 감자를 멀리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짧았던 ‘철원기행’ 이후에는 아버지의 삶에서 잘 삶아진 굵은 감자알처럼 뜨끈한 사랑을 느꼈기에 껍질도 벗기지 않고 찐 감자를 먹었으리라.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 가는 아버지의 삶이 감자처럼 소박하지만, 그 덕에 식구들은 뜨끈한 양식으로 배를 채우고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큰아들. 자신도 그런 아버지가 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아내와 함께 버스 안에서 감자를 먹으면서……     


평소 영화는 여행과 같다고 생각했다. 둘 다 겪어 보지 못한 세상을 체험하게 해 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철원기행’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여정이었다. 배경으로 펼쳐지는 철원의 설경(雪景)은 따뜻하기도 하고 차갑기도 한 가족의 양면을 도드라지게 하였다. 머리와 가슴이 넘치게 채워지는 여행이었기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픈 여행지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 제격인 곳이라는 추천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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