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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Sep 01. 2016

양치기들

거짓말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요즘 즐겨보는 뉴스 프로그램이 있다. JTBC 뉴스룸의 간판코너 ‘팩트체크’인데, 정치 사회적인 이슈들의 사실 여부를 다룬다. 가끔 정치인들이 내놓은 발언을 검증하는 데서는 청량감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어떻게 저런 거짓말을 당당히 할 수 있을까? 조금만 들여다보면 누구나 거짓임을 알 수 있을 텐데 뉴스에서 검증까지 할 만큼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인가?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거짓말로 가득한 곳이 되었을까? 뉴스를 보면서 한탄과 의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김진황 감독의 ‘양치기들’은 바로 이런 거짓말의 유통 과정을 다룬다. 거짓말이 시작되고, 유지되며 진실로 가공되는 양상을 범죄 스릴러의 긴장감 속에서 흥미진진하게 그려 내고 있다.  개인의 차원에서 시작된 거짓말의 영향력이 이웃과 동료의 범위로 확장되면서 단순해 보였던 사건과 갈등이 심화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런 구조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양치기는 한 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양치기들이 우글거리는 세상. 그래서 거짓으로 지탱되는 욕망의 사회. 영화 ‘양치기들’이 보여 주는 우리들의 민낯이다.     


주인공인 완주(박종환 분)는 소위 빽 있는 자에게 배역을 빼앗긴 배우이다. 사회 부조리의 희생자이다. 그런 현실에 날을 세우고 연기를 그만둔 완주는 아이러니하게도 역할 대행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진실을 외면하고 누군가의 거짓말이 유지되도록 돕는 직업이다. 소심한 여성의 남자 친구 역할을 하거나 대머리 중년 아저씨의 나이트 부킹 도우미 일을 하면서 푼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완주는 살인 사건 피해자의 엄마라는 여인에게 사건의 가짜 목격자 역할을 의뢰받게 된다. 차원이 다른 거짓말이었기에 완주는 망설였지만, 가족의 병원비를 벌어야 하는 현실과 타협하면서 목격자 역할 대행을 수락하고 만다. 큰 보상금을 받고 경찰을 찾아가 완벽하게 거짓 진술을 마친 완주. 하지만 그는 자신이 협조한 거짓말이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낳는 것을 보고,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진실을 파헤쳐 상황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완주는 왜 외면했던 진실을 뒤늦게 파헤쳤을까? 거짓말의 결과가 자신에게 미쳤기 때문이다. 제삼자의 거짓말을 도운 것뿐이었는데, 그 결과가 결국 나에게 미치게 되는 현실. 애초에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한 죄 때문에 이후의 거짓말 앞에서 진실을 말할 수 없는 비겁함. 그 비겁함의 묵인 덕에 진실로 둔갑하여 횡행하는 거짓말들. 양치기들이 쏟아낸 거짓말이 물고 물리는 거짓말 게임을 통해 마주할 수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이솝 우화 속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양치기 소년 혼자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 결과 마을의 모든 양이 죽었다. 구성원의 다수가 거짓말을 하고 침묵으로 거짓말이 유지되는 것을 돕고 있는 우리 사회는 어떨까? 넘쳐나는 거짓말의 대가가 부메랑처럼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혼란 속에서 우리 모두의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걱정은, 거짓과 침묵의 끝에 무겁게 드리운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드러낸 연출력과 위태롭고 불안한 인물의 성격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 연기력 덕에 더욱 현실의 문제로 느껴진다.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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