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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Sep 05. 2016

굿바이 싱글

혼자이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김제동이 말했다. 지금까지 첫사랑을 사랑한다는 건, 그때의 여자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우리가 그리운 것이라고. 공감한다. 대개의 첫사랑은 순수한 감정 그 자체이다. 첫사랑의 장식 표지를 떼고 무수한 삶의 페이지들을 넘겨 온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모든 행동에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내 욕망을 채울 수 없다면, 쉽게 떠나고 쿨하게 보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가 없이 누군가를 사랑했던 첫사랑의 시절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한탄한다. 그 시절의 그 아이처럼 아무 조건 없이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은 이제 정녕 없는 것일까?

     

김태곤 감독의 ‘굿바이 싱글’은 절대적인 내 편을 만들기 위한 주연(김혜수 분)의 엉뚱한 발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주연은 연기보다는 스캔들로 대중에게 회자되는 여배우다. 자식뻘 되는 연하남에게 대시를 하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는다. 배역도 꽂아주고 갖은 선물을 줬는데도 배은망덕하게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것이다. 버림받고 혼자가 되어 버린 주연은 영원한 내 편을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선언한다. 아이의 엄마가 되겠노라고.

     

이 대목에서 주연에게 묻고 싶었다. “자식은 과연 영원한 내 편일까?” 자식인 동시에 부모인 입장에서 볼 때 주연의 생각은 이상적인 바람이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자식은 영원히 내가 편이 되어 주어야 할 존재’이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속담처럼 자식이 어렸을 때는 부모의 뜻을 따르지만 자라서는 제 뜻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 일이라면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는 존재가 부모인 것이다. ‘내리사랑’은 첫사랑처럼 무조건적이고 순수하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왜 자식을 보면서 그리도 행복한 걸까? 뼛골이 빠지도록 뒷바라지만 하면서 말이다. 그 이유는 자식이 부모에게 ‘존재감’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존재감이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고독하다. 관계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가 된다. 왜 살아가는지를 모르겠고, 삶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편이 되는 순간, 부모는 존재감이 충만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밤새워 일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홀로 깨어 있는 밤공기에 취해 금수저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확실한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닌 초라한 인생을 비관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옆자리가 허전해서인지 잠이 깬 아이가 울면서 내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나 없이는 편안히 잠도 못 자는 아이. 그 아이에게 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내 인생은 더 이상 초라하지 않았다. 아이를 위한 편이 되면서 나는 외롭지 않게 된 것이다.

     

영화 속의 주연도 좌충우돌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런 사실을 깨닫고 있다. 누군가 나의 편이 되어 주기만을 바랐던 주연은 진심으로 누군가의 편이 되어 주는 존재로 성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미 자신의 주변에는 통제 불가능한 자신을 위해 희생해 온 ‘내 편’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또, 배역을 따주고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있어 주는 것이 내 편을 위한 행동임도 알게 된다.

     

이런 주제만 놓고 보면 흔한 내용의 영화인데, 보면서는 지루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먼저 배우들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최근의 ‘시그널’과 ‘차이나타운’에서 보여 주었던 캐릭터와는 상반된 매력을 발산한 김혜수가 오랜만에 보여 주는 코믹 연기가 반가웠다. 또 상남자의 의리는 그대로 간직한 채 여성스러운 섬세함을 귀여운 몸짓으로 드러낸 마동석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이 지닌 양면성을 잘 활용하여 극 중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스토리의 단조로움을 극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또 하나의 이유는 주연이라는 인물의 상징성에서 찾을 수 있었다. 주연의 자리에 나 자신을, 우리 시대의 남성들을 대입해 보니 자기반성의 이야기가 아주 자연스럽게 써지는 것이 흥미로웠다. 20대부터 여러 이성을 만나고, 30대를 넘어서면 외로움에 떨다가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아 결혼 상대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아주 운 좋게도 짝을 만나고 아이를 꿈꾼다. 그러다 아이를 갖게 되면 처음엔 무슨 일이라도 다 할 것처럼 기뻐하다가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여자의 몫으로만 돌린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영화 속 주연의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뻔한 이야기가 내 인생처럼 피부로 다가왔고, 주연의 성장이 내 삶의 희망으로 비쳤다.

     

여러모로 생각보다 괜찮았던 영화 ‘굿바이 싱글.’ 혼자이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이 영화는 말한다. 누가 내 편이 되길 바라기보다는 누군가의 편이 되어 보라고. 그렇게 먼저 마음을 열고 손 내밀 때, 함께일 수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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