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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Jul 14. 2015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일상은 의외로 평범하지 않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딱히 오늘과는 다를 것 같지 않은 권태로운 날들……. 그 속에서 생(生)의 감각은 무뎌지고, 무뎌진 감각을 흔들어 줄 채송화 무더기를 찾아 우리들의 그림자 몇몇은 일상의 울타리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네요. 어릴 적 한번쯤 가출을 꿈꿔 봤던 심정으로 이제는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꿔 보는 것이겠죠. 그런데 여기서 더 서글픈 건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러한 ‘상상일탈’마저 일상의 한 부분으로 포함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누가 볼까 두려워 허름한 자물쇠라도 채워놓은 비밀일기장 속의 욕망인 셈이죠. 하루하루 일기는 늘어나지만, 써놓고 잊어버리는 그런 일기들……. 일상은 뒤로하고, 모호한 대상을 동경하며 그리워하는 욕망의 실체는 과연 정당하며 해소될 수 있는 것일까요? 


미키 사토시 감독의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龜は意外と速く泳ぐ)'는 우리의 일상이 그리 평범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정관념은 거북이를 느리고 지루한 존재로 규정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거북이는 물속에서 아주 빠르게 헤엄을 치는 존재이지요. 이와 같은 제목의 의미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우리의 일상도 관점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철학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즈메(참새)’라는 지극히 평범한 이름처럼 존재감 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 지루하게 살아가는 젊은 주부가 있습니다. 그녀의 주요 일과는 해외 출장 중인 남편 대신 남편의 애완동물인 거북이에게 사료를 주는 것입니다. 자신보다 거북이를 더 챙기는 남편의 전화를 받으며 그녀는 평범하다 못해 존재감마저 없어 보이는 그녀 자신에 대해 회의감을 품게 됩니다.


그런 그녀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외출하고 돌아오던 그녀는 손수레에서 사과가 쏟아지는 것을 피해 계단에서 납작 엎드리게 되는데, 그 순간 난간에 붙어 있는 코딱지만한 ‘스파이 모집 광고’를 보게 됩니다. 따분한 일상을 살아가던 그녀에게 스파이 활동은 대단한 일탈인 셈이죠. 그녀는 설렙니다. 거기다 무려 500만 엔이라는 거금을 활동자금으로 받게 되었으니 “휏휏휏휏” 하는 웃음소리만큼이나 그녀의 일상은 활기차고 특별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녀에게 주어진 지령은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일상이 이 세상에서 제일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그녀였지만, 평범함을 지령으로 소화하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스파이 선배들의 능숙한 일상 연기들에 비하면 본인의 일상은 너무도 특별하고 눈에 띄는 것이었죠.


그렇습니다. 개개인의 일상은 개성에 따라 특별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개인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활동하는 공간이나 수행하는 업무가 획일적으로 규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어느 순간에서도 개인의 개성은 어떻게든 일상의 빛깔을 고유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나’의 일상은 너무도 평범하고 ‘나’의 존재는 지극히 하찮다고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 일탈을 꿈꿉니다.


스즈메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일상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파이가 된 후 그녀는 그저 전과 같은 일상을 살아간 것이었지만, 스파이로서 일상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일상은 특별한 것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일이나 학업 그 자체로서의 일상에 너무 매몰된다면 우리의 삶은 감옥과 같이 지겨울 것입니다. 하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나’의 꿈과 우리의 가족을 위한 수단으로서 일상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감당할 만한 대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평범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비범하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느리게 걷는 거북이일 수도 있지만, 빠르게 헤엄치는 거북이일 수도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그 작은 인식의 변화가 여러분의 삶을 외롭지 않게 책임질 가장 확실한 해결책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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