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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Jul 14. 2015

플란다스의 개

닫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

언젠가 신문 가십란에 이런 기사가 실렸었다. 어떤 사람이, 이사가는 이웃집의 개를 보고 "×개야, 너도 이사가니?"라고 말했다가 개 주인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애완견에 대한 개 주인의 지나친 사랑이 빚어 낸 해프닝이었다.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단절된 인간 관계로 인해 생겨난 외로움이 동물들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봉준호 감독은 이와 같이 뒤틀린 우리 사회의 모습을 '플란다스의 개'를 통해 그려 내고 있다. 


왜 "플란다스의 개"인가? 


'플란다스의 개'라고 하면 어릴 적 보았던 만화가 생각난다. 거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소년과 '파트라슈'의 우정은 많은 이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그러나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 설정된 상황은 이와 너무도 상반된다. 주인공은 개짖는 소리를 못 견뎌 결국 이웃의 개를 납치하여 살해하고 만다. '파트라슈'를 제몸처럼 아끼던 예전의 소년은 우리 사회에서 사회인으로 자라면서 일상에 지쳐 사소한 일에도 과민 반응을 보이게 되는 병적인 존재로 변모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영화 속에 등장하는'개'는 소외되고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신경증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매개가 된다. 
이러한 영화적 문맥을 우리 사회 전체에 확장시켜 적용해 보면, 가난하더라도 서로 간에 정이 넘치던 예전과 달리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며 밀폐된 자기 공간을 유지하려는 오늘날의 모습이 씁쓸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볼 때, '플란다스의 개'라는 영화의 제목에는 동화 시절의 풍부한 정서가 메말라 가는 현재의 닫힌 사회를 우의적으로 풍자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열림과 닫힘의 대립적 공간성 

영화 속에는 열림과 닫힘의 두 가지 공간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공간성은 아파트 단지와 그에 인접해 있는 숲의 대비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 등장인물 중 다수인 사회화된 인간들은 닫혀 있는 공간 속에서 타인의 끼어듦을 허락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외부와 단절되어 있으며, 그 결과 개인은 소외되어 외롭다. 
그러나 그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자리하도록 설정된 숲이 그것을 말해 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산 속으로 놀러가는 현남의 여유로운 모습은 커텐이 쳐지는 강의실 속에서 창 밖의 숲을 바라보는 윤주의 외로움과 대비되면서, 우리가 각박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 개인을 보호하는 동시에 개인을 타인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역설의 벽. 그것을 부수고 열린 공간으로 향할 때,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인간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만화적 상상력과 웃음 

자칫 무겁게 읽힐 수 있는 영화의 주제는 인물과 상황에 대한 만화적 묘사에서 느껴지는 웃음을 통해 지루하지 않게 다가온다. 특히, 변 경비가 '보일러 김씨'에 대한 너스레를 떠는 부분에서는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과장된 화면 구성이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또한 중요한 순간이면 모자끈을 조여 묶는 현남의 모습이나 현남이 '순자'를 구출할 때 똑같은 노란옷을 입은 수많은 응원부대가 옥상에서 꽃가루를 뿌리며 환호하는 장면 등은 만화적 재미를 쏠쏠하게 안겨 주었다. 이와 같은 영화적 장치들은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구성을 형성하며, 그것을 통해 감독이 발견한 현실적 문제는 코미디라는 포장 속에 담겨 관객에게 전달되고 있다. 
윤주의 처가 편의점에서 휴지를 풀어 굴리는 장면을 보면서 불현듯 누군가에게 닿고 싶은 우리의 외로운 욕망이 느껴졌다. '나는 타인들과 얼마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영화를 보고 난 후부터 내내 잊혀지지 않는 질문이었다. 혹시 주변에 마음을 터놓고 가까이 지내고 싶은 이가 있다면 함께 이 영화를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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