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주인공을 극한의 불행으로 몰아넣었을까?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영화 “로스트 버스”는 2018년 ‘캠프파이어’라는 실제 재난을 단순한 배경으로 소비하는 대신 주인공 케빈 맥케이(매튜 맥커너히 분)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촉매제로 활용한다. 의인화된 화마(火魔)의 점증하는 위협을 통해 과거의 실패와 무기력함에 갇혀 있던 한 남자가 현재의 재난을 극복하며 미래의 희망을 찾아가는 내면의 여정을 감독 특유의 다큐멘터리적 기법으로 생생하게 체험하게 한다.
불길 이전의 남자: 무기력의 초상
영화 초반부의 케빈은 인생의 최저점에 도달한 인물이다. 그는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삶에 짓눌려 있다. 영화는 불치병에 걸린 반려견을 안락사시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그의 삶에서 상실과 붕괴를 막을 수 없는 무력함을 상징한다.
가정은 이미 붕괴 직전이다. 15세 아들 숀(레비 맥커너히 분)과의 관계는 끊임없는 다툼으로 점철되어 있고 이혼한 전처는 양육 문제로 그를 비난한다. 스스로를 ‘아버지로서 너무 늦었다’고 느끼는 실패감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여기에 과거의 짐도 무겁다. 아버지는 “죽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고 이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는 그가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이제 그는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돌보는 유일한 부양자다. 직업적 안정도 무너져 저임금의 스쿨버스 운전사 일마저 해고 직전의 위기에 몰려 있다.
서사적 장치로서의 ‘과잉 설정’
이처럼 영화가 케빈의 불행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 방식은 다소 인위적이거나 불필요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케빈의 구원 서사에 깊이를 더하기 위한 의도적인 서사 전략이다. 케빈의 지독한 불행은 그가 기어 올라와야 할 심리적 구렁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그의 상태가 단순히 문제가 있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한 무기력과 실패의 상태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케빈이 결말부에서 얻는 구원의 크기를 가늠하게 하는 서사적 저울추 역할을 한다.
즉 지나치게 비극적인 인물 설정은 단순한 동정심 유발을 넘어 그가 거의 완전한 마비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기준선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불이라는 재난은 그저 영웅이 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완전히 정체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제시한다. 그의 내면적 절망이 만들어낸 관성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극단적인 외부의 위협이 필요했던 것이다.
불과의 대결: 내면의 혼돈을 마주하다
감독은 ‘불의 시점’에서 바라본 장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불을 능동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카메라는 마치 불 자체가 된 듯 맹렬한 속도로 숲을 집어삼키고 잿가루와 불티를 스크린에 흩뿌린다. 여기에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불의 굉음과 아이들의 비명이 뒤섞인 사운드는 불을 통제 불가능한 괴물로 변모시킨다.
이처럼 혼란스럽고 파괴적인 괴물로서의 불은 케빈 자신의 내면 상태를 물리적으로 구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감독 특유의 핸드헬드 카메라는 이 혼돈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온다. 거칠게 흔들리는 화면과 자욱한 연기 속에서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은 방향을 잃은 케빈의 내면을 완벽하게 그대로 보여준다.
재난의 상황은 케빈을 행동의 주체로 나서게 하여 그가 버스를 운전하고 생사를 가르는 결정을 내리며 아이들을 보호하는 등 외부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을 옭아매던 내면의 혼돈을 동시에 마주하고 정리하게 된다. 결국 산불과의 사투는 생존을 넘어 혼돈의 희생자에서 지배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편성하는 심리적 과정이 되는 것이다.
관계 속의 변화: 타인을 통해 완성되다
케빈의 변화는 교사 메리 러드윅(아메리카 페레라 분)과의 역동적인 관계를 통해서도 구체화된다. 그들은 위기 상황에서 서로에게 의존하게 되고 점차 서로의 특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질서 정연하고 절차를 중시하던 메리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대책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위험까지 감수하고 케빈은 아이들에게 아버지 같은 위안을 제공한다.
특히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을 안심시키려 노력하고 위험을 무릅쓰며 끝까지 버스를 지휘하는 케빈의 모습은 과거 아들에게 무심했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그의 내적 성장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이러한 두 인물 간의 융합은 케빈이 겪는 내면의 변화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그는 단지 무모한 운전사일 수만은 없다. 그는 메리가 구현하는 책임감과 보살핌을 내면화해야만 한다.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케빈의 원초적인 생존 본능과 더 높은 목적의식이 성공적으로 융합되었음을 보여주는 외적인 증표다.
불길 이후의 남자: 획득된 평온
결론적으로 케빈의 영웅성은 타고난 자질이 아니라 재난이라는 도가니 속에서 벼려진 결과물이다. 불길 속으로 들어간 남자와 그곳에서 나온 남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물이다. 외부와 내부의 모든 혼돈을 헤쳐 나온 그는 마침내 아들과 뜨겁게 포옹하며 평온을 얻는다. 재난 상황 내내 요동치던 카메라는 비로소 안정을 찾고 모든 소음이 잦아든 가운데 부자의 포옹을 고요히 비춘다. 재난을 마주한 그의 행동이 과거의 실패를 지우지는 못했지만 그의 미래를 새롭게 재정의했음은 분명하다.
이처럼 영화는 주인공 케빈을 극한의 불행으로 몰아넣음으로써 그가 소멸의 불길을 뚫고 나와 변모된 삶의 주체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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