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게 되는 것

슈퍼우먼은 없다. 포기하게 되고 비우는 것

2015년 10월 중순.

10년간의 전문 주부직을 졸업하고 막내가 만 2살 되었을 때, 난 과감히 워킹맘의 타이틀을 달았다.... 고 말하면 너무 미화한 거다.


나는 내 선택이 섞인 워킹맘의 길을 등 떠밀리듯 가게 되었다. 2015년 3월, 직장에서 부상을 당한 남편의 통증이 심해진 관계로 갑작스럽게 5월 중순이 지나 신랑이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인생은 참 계획대로 되지도 않고 그렇게 흘러가지도 않는 듯싶다. 네 아이의 육아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막둥이가 만 3살이 되면 어린이집을 보낼 계획이라 1년만 더 버티자고 세뇌를 시키는 중이었다.


1년만 더 버티면 막둥이가 없는 2시간 30분의 여유를 나를 위해 써보자는 부푼 꿈을 안고 살았는데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직은 나에게 그런 단꿈의 작은 행복도 사치가 되는 일이 되어버린 거다.


신랑이 이렇게 집에서 오래 있을 거라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어쨌든 가장이 집에 들어앉게 된 순간 나는 내가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매달 버는 돈으로 살아가는 우리 형편에 돈이 안 들어온다는 것은 아주 큰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경력이 전혀 없는 내가 육아에서 벗어나 직장인이 되기까지 참 좌절하고 마음 아프고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당당히 캐나다에서 다들 아는 큰 캐나다 대기업 계열 마트에 취직을 했다.


처음으로 트레이닝을 받으러 간 그날의 자유함을 난 결코 잊지 못할 듯싶다. 24시간 한 번도 아이들과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는 나는 그 날 아이넷의 엄마가 아닌 내 이름 석자를 내건 나로서 불리는 그 시간이 믿기지 않았고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신랑이 쉬면서 아이를 봐주는데도 나는 완벽한 엄마이자 주부이자 아내이며 직장인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거 같다. 일을 하는 와중에도 이왕이면 집안일도, 육아도, 요리도 포기하지 못하고 다 하려 했으니 말이다.


아마 그 이면에는 남편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듯싶다.

아빠가 뭘 해주겠나 싶기도 하고, 엄마인 나 만큼 애들을 잘 봐주지 못할 거란 못 미더움, 그리고 나만큼 집안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 남편의 부족함 만이 눈에 들어와 항상 내가 나를 더 많이 혹사시켰던 거 같다.


내가 아무리 긍정적이고 기운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지내는 것은 오래갈 수가 없는 일인 게 당연했다.

나는 지쳐갔고, 힘들었으며 터져 나오는 불만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내 속에 넘쳐나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극에 치다르고 만 것이다.


2018년은 나에게 고비와 같은 한해였는데 지금까지 집에 있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 년을 견딘 거 같다.


이런 내 마음이 차츰 편해진 건 2019년 4월부터 새로 시작한 직장에서 만난 언니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남편을 남편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쁜 내 아이들 정말 안전하게 잘 봐주는 옆집 아저씨라 생각해봐. 그러면 너무 고마워서 가끔 저녁도 해주는 거고 말이야"


정말 웃음만 나오는 말인데 그 안에서 나는 위로를 받았고 포기를 얻었으며 고마움을 느꼈다.


'맞다. 아이가 넷인 내가 이렇게 커리어 우먼으로 계속 나아간다는 거 자체가 내 남편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싶은 마음이 드니까 아빠가 집에서 아이들을 봐주는 거에 대한 고마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감히 내려놓은 집안 살림들과 요리.


나는 선포했다.

"나 집안 살림하기 싫어. 가끔은 해도 이제 내가 다 맡아서 안 할래. 오빠가 하고 애들 밥도 오빠가 챙기고 해"


솔직히 이번에 이 계기로 다 내려놓은 건 아니다. 일을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할 수없게 되었고 끼니를 준비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아빠가 많은 것을 하게 되는 시간이 저절로 와 버렸고 그 와중에 나는 나만큼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해주는 남편에 대해 만족을 하며 완벽함을 바라온 나를 포기했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도 적고 포기하고 내려놓으면 스트레스를 덜 받는 거 같다.


그렇게 소용돌이치며 날 힘들게 하고 우울하게 했던 감정의 소모는 나의 포기와 함께 나에게 마음의 안식을 전해주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하는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듯이 내 남편도 그런 존재인 것을.


아이넷을 낳아 키우며 내가 이 사람과 함께 하는 이 모든 순간들이 흘러갈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보완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매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어느새 아이들도 아빠가 돌봐주는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기분이다. 며칠 전, 큰 딸이 옆에 있는 나를 보면 "아빠"라고 불렀다.


"엄마"가 입에 밴 아이들이였는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아빠"라니~


그 모습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그 모습이 왜 이렇게 바람직해 보이는지..


언제가 다시 나가 우리 가족을 위해 돈을 열심히 벌어 올 신랑의 모습을 기다리며.. 지금 이 시간 조금 더 나를 위한 경력을 잘 쌓는 소중한 시간을 후회없이 보내고 싶다.

청소를 포기했다. 치워도 끝은 없고 치워도 30분을 버티지 못한다.
스카이트레인 타고 다운타운 가는길이라고 사진을 보내준 신랑
일을 끝나고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추어 아이들이 마중을 나오곤 했다.
내가 일하는 동안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하이킹을 다녀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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