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라서가 아닌 내가 부모니까
고개 숙이는 부모를 보여주는 이유
여느 날과 같은 수요일 저녁.
여느 날과 같이 일을 끝내고 귀가하는 길.
여느 날과 다르게 역에서 집까지 걸어가기 싫었던 그 날.
역에서 내려 터벅터벅 걸어갈 20분 넘는 시간이 싫어서 신랑한테 전화를 했는데 대답 없는 전화기.
'저녁 해 먹이느라 바쁜가?'
이 날 저녁부터 시작할 '큰 아들의 축구 연습 때문에 준비하느라 정신이 더 없나?'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카카오톡으로도 전화해 보고 그냥 핸드폰으로도 전화해보고 하는데 아무 답도 없고 카톡도 확인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터벅터벅 걷는 내 걸음은 점점 집으로 가까워진다. 5분 정도 거리가 남았을 때였나? 드디어 신랑이랑 연결이 되었다.
"뭐해?"라는 질문 뒤로 들려오는 지쳐있는 목소리는 우리의 큰 아들이 사고를 쳐서 뒷수습을 하고 오느라 전화를 못 받았단다.
겨우 만 8살인 이 아이가 어떤 큰 사고를 쳤길래?
내용인 즉,
여느 날과 같이 옆 동네에 놀러 간 큰 아들.
(옆 동네는 울타리 개구멍만 빠져나가면 있다.)
여느 날과 같이 옆 동네 친구와 놀고 있던 아이는 놀이터 옆 잔디밭에서 유리 거울을 실수로 밟았단다.
그리고 함께 있던 친구도 반대편을 밟게 되어서 산산조각이 난 거울.
(이 거울은 왜 아이들 놀이터 잔디밭에 있었던 걸까?
집에 와서 신랑에게 들어 본 이야기로 이렇게 추측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유리 거울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통 안에 버린 게 아니라 쓰레기통 옆에 세워놨다.
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그 동네 1학년 아이가 쓰레기통 옆에 세워져 있던 그 거울을 주워서 잔디밭에 옮겨놨다.
그걸 미쳐보지 못한 우리 아들과 그 친구는 그 거울을 밟고 부셨다. 그리고 이 두 아이들은 그 거울에 대해 주위 어른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서 놀았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바로 옆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3살 여자아이가 맨발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그 아이의 엄마가 화가 나서 우리 집에 쳐들어 온 거다.
그리고 완전히 화가 나서 흥분한 상태로 우리 신랑한테 소리를 지르며 우리 아들이 거울을 산산조각을 내어 놨으니 우리 신랑한테 깨끗이 치우라고 하면서 다시는 우리 아들을 자기네 동네로 보내지 말라고 하고 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신랑과 거울을 같이 밟은 다른 아이의 엄마와 산산조각 난 유리를 치우고 왔단다. 그래서 나의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 우리 신랑한테 이렇게 말을 해 주었다.
"고생했네. 유리조각 치우느라. 우리가 8살밖에 안된 아이를 보고 있지 않고 그냥 혼자 놀게 해 둔 건 우리 잘못이야. 그러니 우리가 부모로서 잘못한 거야. 우리 자식이니 자식이 해 놓은 거 부모로서 치워야지. 잘했어. 그리고 고생했어. 아이랑은 내가 이야기해 볼게"
그 상황에서 내가 우리 신랑을 무례하게 대한 여자를 욕해주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저렇게 우리 신랑한테 이야기해주는 걸 선택했다.
나의 판단을 이랬다.
첫째 문제는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쓰레기통의 위치임을 알면서도 유리 거울을 옆에 버린 어른의 잘못!
둘째 문제는 그것을 옮겼던 1학년 짜리 아이를 알지 못했던 어른의 잘못!
셋째 문제는 실수로 지만 거울을 깼는데 그 자리를 그냥 떠나서 방치했던 내 아이의 잘못이다.
넷째 문제는 맨발을 신고 노는 아이를 방치만 엄마의 잘못. 그곳이 아무리 자신이 사는 곳이라 해도 밖은 위험한 물건이 많은 곳인데 아이가 그렇게 논다고 내버려두는 그 엄마의 잘못도 있다. 비록 유리 때문에 그 아이가 다치진 않았지만.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우리 신랑한테 막말을 했던 부모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었다며 우리 아이의 실수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을 했더니 우리 신랑한테 너무 흥분해서 말을 막 한 자신에 대해 사과를 하는 여자.
우선 이해한다고 말을 해놓고 당분간 우리 아이를 보내지 않도록 하겠다 이야기했다.
집으로 돌아와 큰 아들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며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아이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듣고 싶었다.
자신은 그곳에 거울이 있는 몰랐다고 일부러 밟은 게 아니라며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아이에게 나는 이야기했다.
"맞아. 실수야. 네가 모르고 밟은 건 정말 실수야. 하지만 너의 실수로 인해 사람이 다치면 그건 실수가 아닌 게 되어버려"
그러면서 나는 우리 아이가 종종 하는 행동을 지적하며 혼냈던 일을 아이에게 예로 설명을 해 주었다.
종종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며 길에 있는 돌을 발로 차는 아이를 항상 혼내던 나.
"엄마가 돌을 찰 때마다 왜 너를 혼냈을까?"
라는 질문에 아이는 대답한다.
"밑에 있는 사람이 돌에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 이거다. 이 아이는 알고 있다. 왜 내가 못하게 하는지 정확하게! 기특한 녀석!
"그래 맞아. 만약에 네가 장난으로 찬 돌이 지하 주차장 계단으로 떨어져서 밑에 있는 누군가의 머리에 잘못 맞으면 그 사람은 크게 다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어.
그럼 너는 장난이었을 뿐이지만 그 결과는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무서운 결과를 주는 거지.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장난은 장난이 아닌 게 되는 거야"
그렇게 알려주며 비록 실수였지만 실수가 아닌 게 되는 결과가 올 수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미 밟아서 부서진 유리를 알고 있었는데 그것에 관해 주위의 어른들이나 집에 계신 아빠한테 알려주지 않았던 게 우리 아들의 잘못인 거라고 말해 주었다.
이 아이에게 내가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의 잘못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먼저 더 돌아보는 아이가 되길 원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그 여자 아이의 엄마에게 가서 부서진 유리에 대해 알고 있었으면서 미리 이야기하지 않은 거에 대해 사과를 하러 가자하며 손을 잡고 옆 동네로 갔다.
우리 아이는 그 엄마를 보자마자 제대로 사과조차 하지 못하고 나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그걸 보는 그 엄마는 우리 아이를 달래주며 괜찮다고 넌 참 좋은 아이라고 하면서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나는 다시 한번 이해해줘서 고맙다 이야기하고 우리 아이는 이 동네에 당분간 보내지 않을 거라 확실히 말을 해주고 왔다.
정말 당분간은 그곳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나는 그 엄마를 이해한다. 솔직히 100프로라고는 말을 못 하겠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이가 맨발로 다니게 방치한 부모의 잘못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땠을까?
팔이 안으로 굽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3살짜리 철없는 아이라도 맨발로 노는 것이 위험함을 내 아이에게 알려주는 걸 선택했을 거 같다.
우리 아들을 데리고 사과를 하러 갔을 때에도 그 집의 3살짜리 아이는 여전히 밖에서 맨발로 놀고 있었고, 그 부모는 전혀 개의치 않아하는 듯 보였다.
각자 부모의 역할을 하는 방법이 다르고 교육 방식이 다르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식이 소중하듯 남의 자식들도 그 집에서는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내 아이가 먼저가 아니라, 이 아이의 부모가 되려 노력한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내가 부모이기 때문에 내 아이로 인해 일어난 일에 대한 사과가 중요하고 부모로서 자식을 위해 고개를 숙이고 먼저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이 명백히 내 아이의 실수나 잘못이 있을 때가 전제함은 물론이다. 아무 잘못 없는 내 아이가 일방적인 괴롭힘이나 폭력에 당한다면, 나도 엄마로서 가만히 있지 않을 일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내가 일을 하고 신랑이 아이를 키우는 지금의 상황이 참으로 감사했다. 계속 신랑이 일을 하고 내가 집에서 육아를 했으면 우리 신랑은 이런 일을 한 번도 겪어볼 일이 없었을 테지.
밖에서 일하고 오면 아주 잠시 아이들과 얼굴 보고 하루가 끝나곤 했는데 이렇게 서로의 위치가 바뀌니 나는 나름대로 일하며 고생했던 신랑도 이해되고 아이 키우는 게 일하는 것보다 쉽지 않은 일음을 다시 새삼 깨닫게 된다.
집에서 살림하며 육아하는 신랑 또한 나처럼 나의 시간을 이해해주고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과 하는 매 순간이 시련임을 퇴근하고 집에 온 나를 붙잡고 아이들 이야기하며 재잘거리는 남편의 투덜거림에 예전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곤 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순간들..
이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현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이렇게 몰아왔던 과거의 모든 순간들이
어쩌면 나와 우리 신랑에게는 서로를 좀 더 제대로 생각해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했던 그분의 배려인 듯싶다.
그래서 지금은 매일매일 일을 가는 피곤한 일상도 감사하다.
내가 없는 모든 시간들을 아이들과 함께 해주는 이 사람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