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은 어디로 도둑맞은 기분 이건만, 눈 앞에 아이 넷은 어느새 훌쩍 커서 눈 앞에 서 있는 걸 보니 내 시간도 이 아이들과 함께 흐르긴 했나 보다 싶다.
막내가 태어난 2013년의 겨울 어느 날, 네 명의 다 끌어안고 살았던 30대 초반의 나의 시간
작년 생일, 축하 전화를 주신 아빠는 "네가 벌써 마흔이네" 하시며, 축하인지 안타까움인지, 알 수 없는 헛헛함을 자꾸 주셨더랬다. 그래서 "아빠, 아직 만으로는 39살이라니까요"라며 의미 없는 반항을 날렸었다.
그렇게도 아직 30대라며 선 넘기를 거부하는, 등 떠밀리는 아이처럼 버팅긴 일 년이 또 이렇게 후딱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앞자리의 숫자가 올라가 버린 나이가 되고 말았다.
생일 며칠 전, 막내가 밥을 먹다 말고 툭 내뱉는 한 마디,
"엄마 이제 40 되는 거야?"
밥 먹다가 지긋이 아이를 바라보며 "그래, 고맙다 자꾸 알려줘서"라며 퉁퉁 거리는 나에게..
"엄마, 그래도 아빠보단 어리잖아." 이런다. 그저 웃을 뿐이다.
이 녀석이 벌써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컸으니, 내가 진짜 나이가 든 게 맞나 보다. 넷째 임신을 알고, 몇 년을 키워야 좀 살만해 질까 계산했던 목표 나이가 40이었으니, 그 나이가 정말 왔다는 것에 또 절절히 실감이 든 잠시간의 대화를 꼽씹으며 또 혼자 40이 되는 것에 안타깝다.
그렇게 맞이한 생일 전날, 신랑은 딸 둘을 데리고 데이트를 나갔다 들어오며, 안 하던 행동을 해서 사람을 당황시켰다.
아이들은 엄마의 반응이 기대 이하라며 섭섭해했다. 근데 솔직히, 너무 받아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
아빠랑 나가서 함께 사들고 온 꽃, Orchids, 엄마가 좋아하는 색으로 골랐단다.
한 손에 화분과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 온 신랑의 행동에 며칠 전 투닥투닥 다퉜던 서운했던 마음이 좀 녹아들었다. 분명 이걸 노리고 이렇게 한 거다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
정작 생일 당일은,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며, 생일 다음날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에 정신이 홀딱 날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신랑도 한 살을 더 먹었다. 하루 차이 생일의 장점은 생일 축하가 길게 간다는 거다. 어제도 내 생일 같고, 신랑 생일도 내 생일 같은 그런 기분~
계획에는 없었지만, 마트에서 싸게 건져 온 다진 고기를 가지고 가족 모두가 앉아서 손만두를 만들었다. 만두소를 만든다며 준비하는 내 옆에 와서 열정적으로 간을 하며, 재료를 섞어준 신랑 덕분에, 그리고 함께 앉아서 그 작은 손들로 열심히 만들어 준 아이들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완성된 만두를 저녁으로 먹을 수 있었다.
네모난 피를 사왔더니 모양 잡기가 쉽지 않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도와준 아이들 덕분에 대량으로 생산된 홈메이드 만두
나이가 드니 생일은 나의 날이 아니라, 부모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가 문득, 매일매일 부모로서만 살아가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 작년 생일은 느닷없이 온천을 갔더랬다.
이번엔 코비드 덕에 집에서만 보내는 이 생일이 만두를 만드는 시간 덕에 빛이 났다. 이렇게 가족 모두 모여 앉아 서로의 만두가 더 이쁘다며 열정을 다해 만두를만든 덕에 금년 생일은 더 기억에 남을 듯하다.
40이 되면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어진다는 소리를 몇 년 전부터 들어왔다. 확실히 30대와 다른 체력의 차이를 느끼지만, 그럼에도 매일매일 바쁘게 살아가는 내 삶이 참 좋아서, 앞의 숫자가 바뀌는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시작된 나의 40대를 또 열심히 살아보고자 한다.
누군가 페이스북에 축하 메시지를 달아놨다.
" Welcome to the forty club"
나의 40대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10년의 시간이 더 빠르게 지날 갈 거라는 의심의 여지없이 겸허히 이 시간들을 채워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