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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이지만 첫아들인 너!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되다.

아들을 낳고 싶었다. 첫 아이를 임신한 순간부터 아들이기를 바랬다. 남아선호 사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나는 아들이랑 코드가 더 맞는 사람인 걸 알아서였다.


20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새내기가 되었을 때,

부모님을 따라 성가대에 들어가지 않고 4~5살 아이들이 예배를 드리는 유아부 선생님으로 자원을 해서 봉사를 시작했다.


2년간 봉사하면서 느낀 건, 좀 더 감정적으로 예민한 여자 아이들보단 덜 예민한 남자아이들을 돌보며 내가 더 편안함을 가진다는 거였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덜 세심한 사람이고, 꾸미는 거에 무심한 사람이고 몸을 써서 놀아주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다들 치마에 힐을 신고 화장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펑퍼짐한 바지에 화장을 안 하고 워커를 신고 다니던 나였으니까~


그런 내가 딸을 2명이나 내리 낳았다.

첫 딸을 낳고 머리를 어떻게 묶어 줄지 몰라 애는 항상 산발로 하고 다녔다. 그러다 알게 된 언니가 큰 아이를 앉혀 놓고 머리를 묶어주는 걸 지켜보곤 주야장천 그 머리만 해 주던 엄마였다. 


두 딸을 키우면서 아들을 가지고 싶은 갈망이 어찌나 간절해지던지 그 이쁜 여자 아이들의 옷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아들 옷만 눈에 보이는 증상까지 생겼었다.


그리고 셋째를 임신한 내가 초음파 검사로 아들임을 알았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질 않았었다.


그렇게 바라던 아들을 낳고 나는 아들을 가진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아들을 키우는 것이 딸과 다름을 절실히 느끼는 생활을 시작했다.


기저귀가 젖는 부분, 젖을 먹는 양 그리고 첫 뒤집기를 한 시기 등 아기 때부터 달랐던 아들은 학습적인 면에서도 누나들과 참 다르다는 것이다.


아들도 저마다 특성이 있는데 우리 큰 아들은 학습적인 면에서 조금 느린 편이고 운동 신경이 학습 쪽보다는 더 있는 아이라는 것을 알아가게 되었다.


네 발 자전거를 타다가 보조 바퀴를 떼 주었는데 일주일 동안 혼자서 넘어지고 연습을 하더니 일주일 만에 혼자서 두 발 자전거 타는 것을 습득했다.


네 명 중 유일하게 스케이트 강습 기초 과정을 들은 아이었다. 정식 레벨을 배우기 전에 이 기초 강습 시간 동안 얼음 위에서 넘어지고 일어서는 법, 두 발로 중심을 잡는 법, 조금씩 두발로 서서 걷는 것 등등 스케이트를 배우기 위해 아주 기본적으로 필요한 동작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기초 강습만 겨우 받고 시간이 맞지 않아 레슨을 시켜줄 수 없었다. 아빠랑 함께 퍼블릭 스케이트를 다니며 조금씩 익힌 스케이트. 제법 잘 타며 즐기고 있다.

이 과정을 함께 듣는 아이들 중에 가장 먼저 일어나서 걷기 시작한 게 우리 셋째였다.

말은 상당히 느린 편이었다. 35개월 때 처음으로 문장을 만들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단어만 몇 개 겨우 하는 정도였다.

그런 아이가 만 3살이 된 해, 9월에 Preschool(Kindergarten을 가기 전 만 30개월부터 만 4세까지 가는 어린이집의 개념)을 시작했다.


누나들과 다르게 외국인 교회 부설로 있는 곳을 보냈는데 한국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 의도치 않게 40개월에 영어만 하는 곳에 던져진 것이다. 한국말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어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네 명 중 한국어 발음이 제일 외국인스러운 아이이기도 하다.


약 2년 전, 이 아들이 1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 담임 선생님께 처음으로 전화를 받고 상담을 가게 되었다.

매년 9월에 하는 상담이랑은 다른, 특별한 필요성에 의해 직접 연락이 와서 하게 되는 상담이었다.


아이가 말을 너무 잘해서 선생님조차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테스트를 해 보니 생각보다 영어를 너무 못 읽는다는 거였다. 집에서 읽는 연습을 추가적으로 도와주길 바란다는 상담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셋째 이름으로 개인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일종의 동의서였다. 이 아이가 1:1로 읽기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사람을 붙여 준다는 동의서!


그렇게 선생님과 학교의 도움으로 1:1 개인교습까지 받아서 읽기 지도를 받았다.

내가 해준 건, 아이가 책을 들고 올 때마다 옆에서 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읽는 걸 연습하면서 2학년 때는 읽기 영역에서 제법 좋은 성적을 받아 왔다.

그런 아이가 이번에 3학년이 되면서 첫 성적표에서 "쓰기" 영역에서 부족하다는 선생님의 의견을 받아왔다.


말하기, 읽기 그리고 쓰기까지 언어와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부족한 평가를 받는 아들은 엄마의 걱정과 다르게 아직 맑은 영혼을 소유하며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나를 웃게 한다.


며칠 전, 이 맑은 영혼의 소유자와 대화를 했다.

"아들, 쓰기를 잘 못한다고 선생님이 성적표에 적어놓으셨네. 어떻게 생각해?"


"엄마. 알아 근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


"생각을 해야지 쓰는 건데 친구들이랑 대화를 하면 더 잘 쓴다고 선생님이 써 놓으셨던데?"


"몰라 엄마. 그냥 난 쓰는 게 어려워"


"아들, 읽기도 잘 못해서 오래 걸렸던 거 기억나?"


"응 엄마 기억나."  


"지금은 책 잘 읽잖아. 계속 연습하니까 더 잘해지는 거 같지 않아?"


"맞아 엄마. 이제 나 챕터 책도 읽어."


" 그럼 쓰기도 좀 더 노력하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응 그럴 거 같아."


" 그럼 조금 더 해 보면 되겠네. 할 수 있겠어?"


" 응 할 수 있어 엄마."


이런 정말 별거 없는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생각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해 내 갈 아들일 거라는 걸~


아이들이 어릴 때 우연히 본 육아서적에서 이런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아이들이 첫걸음을 떼기까지 수만 번을 넘어지고 일어선다'


이 문장을 읽은 다음부터 나는 우리 아이들이 좌절할 때마다 이 문장을 인용해서 격려해 주곤 한다.


"수만 번을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첫걸음을 띠고 너는 이렇게 잘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고 있어. 너는 그걸 해 낸 아이야. 한 번의 실패로 슬퍼하지 말자. 100번 200번 아니 수만 번의 실패 뒤 성공한 너의 첫걸음처럼 계속 계속 노력하다 보면 분명 조금 더 나아지고 잘하고 있는 널 보게 될 거야..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성취감을 못 느낀다면 그때는 다른 것을 시도해 보면 되는 거야."


나는 우리 아이들이 조금의 노력으로 큰 것을 얻는 아이들이 되지 않길 바란다. 세상이 조금 더 힘들고 어렵더라도 스스로 이겨내는 힘이 있는 아이들로 성장하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들도 이 쓰기의 산의 조금씩 정복할 거라 믿는다. 비록 그 정복이 정말 정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아이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정복이라 할지라도 이 아이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있는 거라면 나는 엄마로서 이 아이의 성취를 축하해 줄 것이다.

 

이제 만 8살인 이 아이가 앞으로 만들어 갈 시간을 위해 기도하며 받은 달라트에 맞게 잘 쓰임 받으며 살기를 기대해 본다.

어린 자녀들을 앞에서 이끌어 가야할 때가 많이 있지만 가끔은 뒤에서 지켜보며 위험할 때 붙잡아 줄 거리를 유지하는 믿음을 보여 줄 때도 필요한 거 같다. 과연 그 때는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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