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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정착기-ep 3.

라디오랑 친해지기

약 17년 전, 영어를 조금 더 배우기 위해 온 이곳 캐나다에서 마주친  첫 시련은 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깨닫는 일이었다.

한국 사람들만이 모여있는 어학원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어학원에 앉아 있으면 "자만심"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콕 박힌다.


나 그래도 나름 알아듣는데~ 말이 좀 부족할 뿐이지 생각하며 받았던 테스트 결과는 레벨 3.

레벨 3 수업을 처음으로 참여했을 때 느꼈던 멘털 붕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정리되어 나타나면 한국어로 풀이가 되고 그걸 또 영어로 바꾸는 작업이 머릿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한 가지를 표현하고자 할 때 시간이 꽤 소요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발음 좋은 선생님의 말씀은 그나마 알아들을 만 한데? 같이 수업 듣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억양이 제각각이라 알아듣기 힘들다는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그래도 사람은 익숙해지고 적응을 한다고 몇 주 수업을 같이 들으면 그 사람들의 억양에도 익숙해지고 선생님의 말이 정말 잘~~ 들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잘 적응된 나에게 내려지는 상은 레벨업!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선생님! 그렇게 또 바뀐 환경에 내 귀를 적응해가며 영어에 익숙해지는 시간들을 쌓아가는 게 어학원 시절인 거 같다.


의욕과 열정이 불타던 그때, 잘 들리지 않는 이 귀를 뚫어 영어를 알아듣겠노라 열정에 기름을 쏟아붓던 그때, 내 눈에 뜨인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라•디•오!!!


홈스테이를 하며 머물렀던 내 방 책상에 있던 검은색의 큰 라디오를 부여잡고 앉아서 열심히 Local 주파수를 돌려봤다.

AM과 FM을 오고 가며 주파수를 맞추어 보던 나의 귀를 파고들었던 라디오 채널 News1130 AM!!


말 그대로 캐나다와 미국의 주요 뉴스 내용이 나오는 곳, 이 곳 현지 유일하게 10분 간격으로 날씨와 교통상황을 생중계해주는 채널, 노래는 없고 앵커의 목소리를 24시간 내내 들을 수 있는 채널을 발견한 것이다. 유레카!!


그때부터 나는 집에 있을 때마다 이 채널을 틀어놓고 내 귀에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처럼만 들리는 앵커의 목소리를 강제로 넣어대기 시작했다.


외국인이 말하는 소리가 "쏼라쏼라"라는 느낌을 제대로 주었던 라디오 채널. 사람 입술은 보이지 않고 오직 소리로만 알아들어야 하는 고난도 공부였다.


아는 만큼 들린다고, 내가 아는 단어만큼만 들리는 것도 절실히 체험을 했던 시간.

참 우스운 것은, 이번에 시민권 시험을 보기 위해 캐나다 역사와 정치에 대해 공부한 뒤로는 이 채널에서 나오는 정치 이야기가 저번보다 더 잘 들린다는 것이다.


그만큼 어휘력이 강할수록 듣기도 말하기도 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것을 현재도 체험하며 지내고 있다.


외계어처럼 들리던 라디오 소리에도 익숙해지자, 계속 반복되어 나오던 광고가 들리기 시작했다.

London drug 광고 음악과 반복되어 나오는 광고 문구.


그리고 더 익숙해지자 매 10분 별로 나오는 날씨와 교통상황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100프로 내용을 인식하는 게 아니라 현재 나오는 내용은 대충 뭘 위한 시간인지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을 보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이 흐름에 이 곳 생활에 익숙해진 나는 예전보다는 조금 더 내용을 인식하며 뉴스를 듣고 있다.


여전히 운전할 때마다 틀어놓는 News 1130에서 나오는 사건 사고.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할 만큼의 듣기는 되어가고 있다.


여전히 영어는 나에게 올라야 할 산이다. 갑자기 들려오는 말들을 빨리 이해하기 힘들고, 유머는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문화 차이에서 오는 말들은 또 다른 어려움이다.


그래도 무식하게 뉴스를 듣던 나의 시간이 쌓여감을 느낀다. 결코 그 시간이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던 거 같다.


아주 단순한 진리, 아주 당연한 이치지만, 매일의 노력은 조금씩 쌓이는 게 확실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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