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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Mar 22. 2024

진도의 두 번째 밤

진도 여행 이야기 (15)

저녁 식사는 오징어 찜과 병어 회, 그리고 나중에는 정상이 끓인 매운탕이 나왔다. 작은 상에 둘러앉은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 교사들이 있어서 그런지 학교와 교육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교사와 학생들 간의 사랑과 긴장과 갈등 등.


나는 학교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이제는 우리가 어렸을 때처럼 시험 점수로만 등수가 매겨지거나, 툭하면 몽둥이로 매 맞으면서 교육받던 시대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교육 시설과 제도는 지속적으로 변화했지만, 교사들과 학생들 모두 불만족은 여전하다. 사교육에 시달리면서 학교 교사를 우습게 보는 학생들과 공부와 거리가 멀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과 과도한 보호 본능을 가진 학부모들과 복잡한 학교 사무 행정 등으로 인해 교사들은 피곤하다고 한다.


그래서 OECD 국가들 가운데 교사들로서는 상위 소득권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교사들이 교육자로서 느끼는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낮고 교권은 바닥에 떨어졌다고 불만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과거에 비해 복잡하고 다양해진 지식을 습득해야 하고, 시험 성적뿐 아니라 과외 활동까지 대학 입학에 반영된다 하여, 힘들고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은 마찬가지다. 수많은 학교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존재했던 전인교육이라는 허울 좋은 목표는 이미 사라졌고, 교사는 스승으로서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위기에 처했다는 말들이 이어졌다.


이미 오래전에 '학생인권조례'가 선언된 후 요즘은 학생들이 잘못해도 교사가 절대로 때릴 수 없게 됐으며, 상벌 점수로만 평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 했던 우리 어릴 때와는 영 딴판이라는 것, 요즘 아이들은 선생 알기를 개떡같이 아는 아이들이 많아서 스스로 포기한 수업 시간에는 아예 대놓고 엎드려서 잔다는 것, 그래도 그런 애들을 결코 옛날처럼 나무라거나 때릴 수는 없다는 것, 잘못 건드렸다가는 학부모가 찾아와서 난리 치기 때문에 교사 생활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 학생들이 학교에서 자고 학원에서 공부하는 한심한 현실이라는 것 등, 교사 생활의 어려움에 대한 토로가 이어졌다.


재관은 물론 열심히 가르치려고 노력하지만,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속이 조금이라도 편하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듣기 싫다면서 대놓고 자는 학생들에게 억지로 가르치려고 노력해야 헛수고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학생들에게는 '자고 싶은 놈은 자라'는 식으로 포기하고 만다고 했다. 얼마나 교육 현실이 힘든지 잘 표현하는 말이다. 마음 아픈 일이지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러한 역경 가운데서도 교사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아이들이 이만큼 똑똑해졌고, 나라도 발전했다고 믿고 싶다. 교육은 시험 점수나 스펙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들 간의 인간적 상호작용으로 이뤄지고, 학교는 그들의 인내와 노력이 수행되고 성취되는 곳이며, 학교와 교육은 교사와 학생뿐 아니라 사회에도 여전히 절대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울러 급변하는 시대와 상황에 맞추어 학생들이 적응하는 것처럼 나이 많은 교사들도 세태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향숙아, 재관아, 힘내."




그 밖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나는 피곤해서인지 막걸리 기운 탓인지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식사 후에 친구들이 밤바다를 보러 나가자고 했다. 우리는 집을 나와서 달빛을 조명 삼아 바닷가로 걸어갔다.


직접 걸어가 보니, 바닷가는 집으로부터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였다. 바닷가에는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었고, 그 앞으로 검은 하늘 아래 갯벌이 길게 펼쳐졌다. 그러나 도로 앞쪽으로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것이 아니라 검은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바라보아도 어디에서 갯벌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지, 또 바다와 하늘은 어디서 구분되는지 알 수 없었다. 바다 쪽으로는 불빛 하나 없고 온통 컴컴하기만 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드넓은 어두운 공간의 군데군데에서 별이 뿌연 빛을 발했다. 맑은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신 향숙은 그런 하늘을 보고 감탄하면서 "서울에 비해 별이 훨씬 많네."라고 말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때 나는 어린 시절에 보았던 밤하늘을 생각했다.

그 시절에는 정말 지금보다 별이 훨씬 훨씬 많았는데...


중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 교회에서 수양회를 갔을 때 남한 강가 어딘가에서 보았던 밤하늘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검은 하늘 가득 반짝이는 모래알처럼 깔려 있던 수많은 별들을. 강가 모래사장에 누워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들이 너무 많아서 하늘로부터 흘러내리거나 쏟아질 것만 같았다. 수많은 별들로 인해 하늘 천장이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그 기억을 얘기하자, 향숙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릴 때 하늘은 다 그랬지" 하면서, "그래도 아직 여기는 서울보다 낫다"라고 말했다. 하긴 경북 깡촌 시골에서 자란 향숙 앞에서 내가 하늘의 은하수를 보았다는,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전설을 말해봤자 무슨 감동이 전해지기나 할까. 대학에 오기 전까지 늘 '전교 1등'이었다는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인가 시골에서 벗어나 도시로 유학 나가기 전까지 언제나 자연에 속해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까맣게 어렸던 시절의 추억이 늘 가슴속에 남아 있다.


그녀는 두 손을 모아 눈 옆을 망원경처럼 감싸서 하늘을 올려보았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해보라고 했다.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다고. 어린아이들처럼 우리는 향숙을 따라서 양손을 그렇게 감싸고 두 눈 옆을 가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에 비치는 전기 불빛을 가려서 그런지 하늘의 별들이 조금이나마 더욱 밝아 보이는 듯했다.


어두운 여름밤 습기 먹은 대기가 두텁게 깔린 바닷가에서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웃고 재잘거렸다. 8월의 진도 바닷가 날씨는 그렇게 바깥에서 수다 떨기에 알맞았다. 바다냄새가 실린 바람은 우리 얼굴과 팔과 다리를 부드럽게 감싸며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까지 들먹이면서 그 별밤을 하나의 추억으로 쌓아갔다. 캄캄한 바다를 바라보면서 웃고 떠드는 가운데 길지 않지만 감미로운 시간이 흘렀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여행의 마지막 밤이 아쉬운 마음에 다시 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다. 대학 시절 만났던 친구들인데, 이제는 모두 많이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태의 앞머리 탈모가 심해 보였다. 그래서 그는 재관이 그런 것처럼 늘 모자를 쓰고 다닌다. 재관의 탈모는 진태보다 더 심해서 머리 옆부분에만 머리카락들이 남았고, 앞과 위는 거의 대머리에 가까웠다. 그래서 재관도 항상 모자를 쓰고 다닌다. 나는 그가 교사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모자를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정상은 원래 대머리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스스로 사찰 스님처럼 머리를 아예 빡빡 밀었다. 그의 탈모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대머리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그 역시 평소에 모자를 쓰고 다닌다. 모자를 쓰는 사람들의 공통점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언젠가 그가 '민머리 예찬'에 관해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머리를 완전히 밀고 살면 머리카락을 가꾸거나 치장할 필요가 없고, 세수할 때 머리까지 깨끗하게 씻을 수 있어서 위생에도 좋다고 했다. 해학적으로 쓴 그 글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면, 그는 민머리 예찬론자다. 어릴 때부터 워낙에 숱이 많은 나도 예전에 비해 정수리 부분 머리가 좀 빠졌다고 생각하지만, 이들 앞에서 머리에 관해서는 말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의 둘째 밤이 깊어갔다. 몸이 여행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첫째 밤에 비해 덜 피곤한 듯했다. 그래도 다음날 서울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일찍 자기로 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전국이 휴가철이라 서울로 가는 도로에 차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긴 하루가 지나갔다. 나는 또다시 잠을 설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누웠다. 하지만 다행히 그날 밤 나는 눕자마자 금세 잠에 빠져들었고, 새벽닭 울음소리도 듣지 못했다.


삶은 고단하고 힘들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적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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