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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Mar 21. 2024

진도 장전미술관

진도 여행 이야기 (14)

지나친 무더위 속에서 향숙과 희선이 땀을 흘리면서 바깥에서 걷는 것보다 그림과 글씨에 더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 확인되면서 여행 일정은 급속하게 변했다. 원래 가고자 계획했던 신비의 바닷길, 용장산성, 남도석성, 세방낙조 등 바깥을 걸으면서 구경하는 것은 모두 생략되었다. 한문에 능숙한 정상도 수묵화에 있는 글씨들과 서예들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8월 초 여행에서 날씨와 무더위는 역시 가장 중요한 복병이다. 겨우 하루 지나서 우리는 바깥으로 걸어 다니는 것에 지치고 있었다. 햇빛도 너무 강해서 가능하면 실내로 들어가고 싶었다. 게다가 산성이나 석성이라는 게 너무 오래되어서 원형은 사라진 채 산 위에 돌무더기 흔적만 약간 남아 있기 때문에, 굳이 올라가서 자세하게 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우리 스스로의 추측성 평가와 위로가 이어졌다.


신비의 바닷길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연중 특별히 물이 잔뜩 빠지는 썰물 시기에 바닥이 드러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바닷물이 빠진 때도 아니거니와 설사 바닷물이 빠졌다 해도 우리가 이 무더위에 물 빠진 길을 걸어갈 것도 아니라는 서로의 암묵적 동의와 지지 속에 신비의 바닷길은 우리의 여행 계획에서 빠졌다.


나는 차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물이 빠진 신비의 바닷길에서 수많은 사람이 떼 지어 걸어가는 사진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올해는 지난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나흘간 아침저녁 썰물 시간에 바닷길이 열렸다고 한다.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해 길이 2.8 킬로미터 폭 40미터 정도의 바닷길이 드러나는 것이다.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물이 갈라져서 지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겠지만, 요즘 세상에 그게 무슨 별일이라고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드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신비의 바닷길 (출처: 진도군 관광문화 사이트)


또한 세방낙조는 진도의 서남쪽 바닷가에서 바라본 일몰 풍경이 아름다워서 붙여진 이름인데, 낙조 풍경이 아름다운 곳은 이곳 말고도 많다고 말하면서 역시 생략하기로 했다. 나는 세방낙조 역시 사진을 보면서 만족하기로 했다. 마치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 올망졸망 떠 있는 작은 섬들과 그 위에 펼쳐지는 붉은 노을 모습은 사실 다른 곳에서도 본 적이 있기는 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전국에서 일몰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세방낙조, 또한 우리나라에서 석양이 가장 오래 머물고 가장 늦은 시간까지 해넘이를 볼 수 있다는 세방낙조를 코앞까지 와서 놓치게 된 것은 매우 아쉽다.


세방낙조라는 이름이 예뻐서 조사해 보니, 뜻밖에 세방(細方)은 예전에 그곳으로 가기에는 길이 너무 좁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전이라면 진도에서 어딘들 가기 쉬웠을까.


세방낙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일몰 (출처: 진도군 관광문화 사이트)


날씨만 받쳐주고 시간도 여유가 있었다면 우리는 물론 신비의 바닷길과 세방낙조도 보러 갔을 것이다. 용장산성과 남도석성도 마찬가지다. 시간만 많다면 산성과 석성을 걸어 다니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진도까지 가서 그 섬이 가진 역사 유적과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생각했다.

정상이 이곳에 살고 있을 테니, 나중에 언젠가 다시 와서 여유 있게 볼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그러고 나서 우리가 뜨거운 해를 피해서 가기로 한 곳은 장전미술관이었다.

거의 아무 생각도 사전조사도 없이 내가 차로 실려간 곳인 그 미술관은 뜻밖에 매우 만족스러운 곳이다. 미술관 규모는 작지만 예상외로 알차다는 느낌이 저절로 들었다.


이 미술관은 과거에 남진미술관이라고 불렸다.

서예가인 장전 하남호가 개인 재산을 들여 세운 미술관으로서, 그가 평생 모은 유명 문화재들과 더불어 그의 서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는 소전 손재형 (1903-1981)으로부터 글씨를 배웠으며, 예서와 행서에서 대단히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장전 미술관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남진문'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는 고풍스러운 입구를 들어가야 한다. 남진은 서예가 하남호의 가운데 글자인 '남'을 따고, 그의 부인의 이름에서 '진'을 따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남진미술관이라고 이름 지어졌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유명 가수 남진을 떠올리면서 그가 그림도 그렸나 하는 쓰잘데기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장전미술관으로 가는 길 왼쪽 높은 벽에는 담쟁이덩굴이 풍성했다. 그 길 끝에 고풍스러운 솟을대문과 같은 남진문이 있다. 미술관 입장료는 3천 원이었다. 우리는 이 낯선 미술관의 입장료가 약간 비싸다고 말하면서, "이 만큼 돈 내고 들어가도 후회하지 않을 만한 곳일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들어갔다.



장전 미술관 입구 남진문. 문 옆에 바투 붙은 벽에 담쟁이덩굴이 소담하다.


필경 입장료가 비싸다고 남진문 앞에서 떠드는 우리의 대화를 들었을 법한 안내인은, 우리가 남진문을 들어서자 곧바로 나와서 우리를 환하게 반겼다. 그 안내인은 우리의 입장료에 대한 의구심을 말끔히 털어낼 만큼 친절하고 자세하게 작품들을 보여 주고 설명해 주었다.


그 미술관 안에는, 후회 없이 굳이 일부러 그곳으로 가서 볼 만한 작품들이 많다. 남진문을 들어서면 작지만 예쁘게 꾸며놓은 정원이 있고, 그 위에 하남호 서예가가 앉아서 작업했던 기와 고택이 있다.


서예가 하나호 님이 글씨를 쓰던 공간. 고택 안에 붓과 벼루 등이 전시되어 있다.


친절한 안내인이 들어가 보라 해서 나는 신발을 벗고 고택 안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크고 작은 여러 붓들과 벼루들과 서예 작품들이 상 위에 놓여 있었다. 문을 활짝 열어두어서 그런지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방에서 나와서 안내인을 따라 미술관으로 갔다. 고택 옆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3층 미술관에는 5개의 전시관이 있었다. 삐걱거리는 가파른 나무 계단이 있는 또 다른 건물에는 더 많은 서예작품과 문화재들이 꽉 차 있었다.


서예와 그림을 잘 모르는 내 눈에도 서예가의 대단한 솜씨가 느껴졌다. 검은 글자들에서 풍기는 힘이 대단하다. 게다가 그 미술관에는 제갈량의 출사표 외에 송시열, 정약용, 김옥균 등의 서화 같은 역사적인 문화재도 있었다. 이 작은 미술관에는 무려 300 점이 넘는 서예, 서화, 도자기, 조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는 그렇게 훌륭한 작품들이 무덥고 습한 미술관 안에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더위와 습기로 인해 작품의 손상을 우려한 것이다. 게다가 미술관 건물이 낡고 작아서 전시된 작품들이 너무 촘촘하게 진열되어 있었던 것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가만히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긴 역사에 너무나 많은 훌륭한 역사적 유물들과 문화재들이 있는데, 그 많은 것을 어찌 다 공들여 전시하고 보관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진도만 해도 그 안에 열 개도 넘는 미술관이 있다.

그러니 남도 소리 (창)의 본고장인 데다 서화까지 훌륭하게 갖춘 진도를 진정 예술의 고향이라 부르지 아니할 수 없다.


나는 이번 여행 전까지 진도가 그 정도로 문화예술이 풍부한 곳인지 몰랐었다. 정상이 일찌감치 대학 시절부터 이러한 진도의 가치를 알아봤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그가 굳이 이곳에서 인생 말년을 보내려는 계획이 조금은 이해된다.


갯벌과 바다에는 해산물이 풍부하고, 진도의 산과 자연은 매우 아름답다. 사람들은 정감 있고, 음식도 맛있는 편이다. 정상은 경상북도 상주라는, 바다에서 아주 먼 산골에서 자랐다. 그러나 그는 해산물을 무척 좋아하는 까닭에 노인이 되면 어부로 변신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아름다운 해안 도로를 돌아다니고, 바닷가에 가서 낚시하여 물고기 잡아먹고, 갯벌에서 해산물 주워 먹고, 책 보고 글 쓰면서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내는 것은 부러워할 만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빈낙도.

가능하면 나이 들어 보낼 만한 멋있는 삶이다. 흔한 말로 인생이 뭐 별것 있는가.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건데. 나이 들어 욕심부리는 것은 추해 보일 뿐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우리는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폭염 속에서 온종일 이뤄진 여행으로 인해 우리는 모두 많이 지쳤다. 집으로 가는 길에 제법 큰 편의점에 들러 저녁 식사 거리와 정상의 집에 필요한 물품들을 샀다. 그 사이에 이번 여행에서 내내 운전기사로 수고하는 진태와 재관은 전기가 끊어져 어두워진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고치고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정상은 서망항에 잠시 들러서 오징어와 병어를 사 왔다. 오징어 찜과 병어 회를 먹고 싶었나 보다. 동백나무집에 도착하자 곧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진도에서 두 번째 밤이 찾아왔다.


<알림> 이 여행기를 쓰면서 진도군청에서 운영하는 관광문화 웹사이트(https://www.jindo.go.kr/tour/main.cs)에 나오는 사진들을 싣게 되어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잔뜩이다. 진도군청 웹사이트는 진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진도의 다양한 유형무형 문화재와 자연환경을 담은 풍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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