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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Mar 24. 2024

목포의 추억

진도 여행 이야기 (17)

진도에서 목포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괜스레 마음이 설레었다.

진도에 온 것만 해도 다행인데, 예상치 않게 목포까지 가게 된 것도 인연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원래 정상이 계획했던 대로 여행했다면 우리는 목포가 아니라 해남 녹우당으로 갔을 것이다. 거기에서 나주를 거쳐 광주로 가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것은 전라남도 가운데를 가로질러 올라가는 것이라서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한반도의 서남쪽 끝 최대 도시인 목포를 들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지도를 보면 목포 서쪽으로는 수많은 섬들이 복잡하게 놓여 있는 신안군이, 남쪽으로는 해남군과 진도군이 있다. 목포시는 영산강 하구에 있는데, 강의 북쪽은 목포시이고 남쪽은 영암군에 속한다. 진도에서 북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고하도를 거쳐 목포대교를 건너 목포 시내로 이어졌다. 고하도 역시 섬이지만 해남부터 다리로 쭉 연결되어 있어서 다리를 건널 때 바닷물이 보이기는 했지만 섬을 지나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상은 차를 타고 가다가 물을 볼 때마다 자꾸만 "아 저게 영산강인가 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나는 인터넷으로 지도를 보면서 "아니야 아직"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고하도에 이르기 전에 해남군에서 바다로 뻗은 반도들에서 금호도를 거쳐 가는 동안 바다 위에 설치된 다리들을 건넜기 때문이다. 정상은 빨리 영산강과 목포를 보고 싶은 듯했다. 나 역시 한 번도 본 적 없는 영산강을 보고 싶었다.


영산강은 전라남도 담양군에 있는 병풍산에서 발원하여 장성군, 광주광역시, 나주시, 영암군, 함평군, 무안군, 목포시를 지나 서해로 흘러들어 가는, 명실공히 전라남도를 꿰뚫는 강이다. 길이로만 따지면 영산강은 섬진강에 이어 한국에서 다섯 번째로 긴 강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절에 벌였던 사대강 정비사업에 섬진강이 아니라 영산강이 포함된 것처럼, 섬진강 유역은 주로 산골이고 수량도 적어서 영산강을 4대 강으로 꼽는다. (내 어릴 적 친구인 영종은 "섬진강이 다행히 살아남았다"라고 표현했는데, 사대강 사업에 포함되지 않은 결과 섬진강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여전히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달산에서 바라본 목포 시내 전경. 저 멀리 영산강이 흐른다.


목포가 가까워지면서, 새로운 도시를 보게 된다는 생각으로 약간 들뜬 친구들은 차 안에서 목포에는 무엇이 유명한가에 대해 떠들었다. 내 머리에는 목포에서 유명한 것이 무엇인지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언뜻 생각나는 것이라곤 최근 뉴스로 알려진 국회의원 손혜원의 목포 원도심 건물 매입 논란과 목포 시내에 유달산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침체된 목포 원도심을 부흥시키기 위해 나전칠기박물관과 공방을 만들려고 했다는 손혜원의 주장은 정치적 논란 속에 과도하게 뉴스거리가 되고 말았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쇠락하는 지방 도시의 구도심을 살린다는 명분은 옳은 것으로 들렸다. 지방의 건설사와 토호세력의 배나 불리는 허울 좋은 전시성 대규모 건설공사에 비한다면 훨씬 좋은 의도 아니었을까. 한편 유달산은 내가 수십 년 전에 목포에 잠시 들렀을 때 올라가 보았던 산이다.


정상은 인터넷을 뒤지더니 가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를 찾아서 틀었다.

그래, 그 노래가 있었지. 아주 오래된 추억의 노래.

가슴을 파고드는 묘한 감동을 주는 옛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아련한 추억으로 잠겼다.




오래전 추운 겨울에 목포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대학에 들어가기 바로 전이었다.

 

순전히 나의 죽마고우 중 한 명의 고향이 목포라고 해서 갔던 것이다. 당시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죽마고우들은 힘들었던 대학 입시 과정을 마쳤다는 홀가분함과 즐거움으로 여행을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부터 가까워진 우리 다섯 명이 함께 먼 거리 여행을 떠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먼 거리 여행 경험이 거의 없었던 우리는 충북 단양으로 갔다가 예상치 않게 목포까지 갔던 것이다.


몹시 매서운 겨울이었다. 당시 먼 거리 여행은 거의 그랬지만, 우리는 모두 배낭을 메고 버스를 타고 단양으로 갔다. '단양팔경''도담삼봉'이라는 말이 익숙해서였을 것이다. 거기서 겨우 도담삼봉을 보고 나서 우리는 맹렬한 추위를 피해 어느 여인숙에서 자게 되었다. 그날 저녁에도 다음날 아침에도 우리는 마당에서 밥을 해 먹었다. 날은 맑고 쾌청했지만 너무 추웠던 그 겨울에 아침 기온은 영하 20도를 기록했다. 그때 하필 내가 아침 식사 후에 설거지 당번이 되어서 찬물로 설거지를 했던 기억이 난다. 물이 어찌나 차가웠는지 코펠에 내 손가락들이 들러붙는 추위였다.


원래 계획했던 것은 아니지만 단양에서 딱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우리는 완행열차를 타고 목포로 갔다. 거기에서도 우리가 한 일이라곤 어느 논길에서 친구의 선배를 만나서 막걸리 한 사발 얻어먹고 유달산에 올라갔던 것뿐이다. 산 정상까지 올라간 것은 아니고 그저 시내를 내다보는 산 허리 어름까지만 갔었을 것이다. 그때 본 것은 그저 흐린 회색눈발만 날리던 황량한 겨울 풍경이었던 듯하다. 비록 아무것도 한 것은 없었지만, 우리는 서울에서 기차로 가기에는 가장 멀리 있는 목포까지 다녀왔다는 사실에만 만족했다.



그때 보았던 목포 시내나 유달산 전경은 기억나지 않는다. 수십 년이 지나서 다시 가게 된 목포에서 나는 유달산 중턱까지 올라가 보았는데, 막상 오르다 보니 제법 높은 산이어서 나의 과거의 기억이 의심스러웠다. 그때 우리는 어쩌면 겨우 유달산 발꿈치만 가보았을지도 모른다. 어깨에 큰 배낭을 메고 있었고 날이 너무나 추워서 굳이 높이 올라갈 엄두도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딱히 본 것도 없이 힘들게 돌아다녔지만, 사흘간 친구들과 낄낄거리면서 함께 멀리 여행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본 목포는 그때의 목포가 아니었다.

유달산도 의구하게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그새 수많은 건물과 도로가 건설되었고, 유달산 위에는 새로 세워진 누각들도 있었다. 우리는 목포에 들어가자마자 목포근대역사관을 찾아갔다.


지난봄 대한민국은 3.1 만세운동 백 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에 관한 관심이 특별히 뜨거웠다. 목포근대역사관에도 1919년 당시 목포에서 만세운동에 나선 사람들을 기념하는 자료들이 있었다. 역사관은 또한 일제강점기 당시의 목포역과 목포항 등 목포 시가지를 볼 수 있도록 모형을 꾸며놓았다.


목포는 개항 당시 건물을 지을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주로 갯벌 매립을 통해서 도시를 확충했다. 목포에서 명성이 높은 ‘삼학도’ 역시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진행된 간척공사를 통해 육지가 되었다. 삼학도는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던 여인이 기다리다 지쳐서 끝내 죽은 후에 세 마리 학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세 마리 학은 유달산 주위를 맴돌다가 하필 여인이 사랑했던 남성의 활에 맞아 유달산 앞바다에 떨어졌는데, 그곳에 세 개의 봉우리가 솟아올랐으며, 그것이 삼학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목포시는 2000년부터 복원사업을 통해 섬들 사이에 물길을 만들고 다리로 건너갈 수 있도록 조성했다. (이 섬이름을 딴 ‘삼학소주’가 1960년대에 유명했다고 한다. 박정희 정권은 1971년 김대중을 지원하는 삼학소주를 탄압하여 부도처리했다는, 이제는 믿거나 말거나 할 만한 ‘설’이 남아 있다.)


목포근대역사관은 1900년에 건립된 구 목포 일본영사 건물에 유치되었다. 언덕 위에 지어진 2층 건물인 역사관 앞 도로는 가파르고 좁아서 주차할 곳도 없었다. 그나마 재관이 조금 내려가서 길가에 주차하고 돌아왔다. 작년 여름에 군산을 방문하면서 보았던 역사박물관이 비교적 커서 그런지 목포근대역사관은 상대적으로 대단히 작아 보였다. 그만큼 군산항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중요한 항구였음을 의미하는 것일 터이다. 목포 역사관은 건물이 작기 때문인지 전시된 내용물도 빈약해 보였다.


목포 근대역사관 입구.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이 건물이 본관이고 별관은 따로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목포 역사관의 본관만 보았을 뿐이고, 정작 별관을 보지 못했다. 본관은 주차장도 없는 좁은 언덕 길가에 있지만 별관은 주차 사정도 좋고 건물도 번듯하게 꾸며져 있다고 한다.


별관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에 있다. 1920년 건립된 별관에는 주로 옛날 사진들이 있는데, 본관에서 낸 입장 티켓을 가지고 무료 입장할 수 있다. 목포시는 2023년까지 역사관 본관을 확대 이전할 계획이다. 나중에 이들을 통합해서 새로 역사관을 꾸민다면 더욱 크고 편리한 곳으로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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