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가는 귀중한 여행을 헛되이 하지 않기.
남용되는 여유와 식탐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기.
못 먹고 못 마시고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먹고 마시는 것이 최대 목적인 것처럼 다니는 여행객이 지나치게 많다. SNS든 브이로그든, 온통 맛있고 풍성한 음식 사진과 비디오로 도배되는 것을 너무 자주 본다. 누가 더 멋진 음식을 먹었는지 경쟁적으로 탐닉한다. 비싼 집, 비싼 차, 비싼 옷을 과시하다 못해 먹거리 가지고 장난치고 자랑질이다.
이 과도한 '먹방의 시대'에 여행의 품위와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여행에 앞서 여행을 떠나는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보고, 그에 못지않은 호기심과 관찰력을 가지기를 바란다.
호기심이 있다면 새로운 것을 알 수 있고, 관찰력이 있다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남다른 작은 차이가 모이면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알렉산더 훔볼트 (1769~1859)는 자연지리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프로이센 시대에 베를린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서 지리학자, 자연과학자, 박물학자, 탐험가가 되었다. 그는 광산학교와 괴팅겐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프로이센 정부의 광산관리국 공무원이 되었다. 어머니 사후에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훔볼트는 공무직에서 사퇴하고, 1899년부터 1904년까지 스페인령 아메리카를 탐험했다.
5년간의 탐험 여행 후에 훔볼트는 자연지리학의 효시로 인정되는 대작 [코스모스](Kosmos, 총 5권)를 발표했다. 그는 카나리아 제도에서 유성우 관측을 시도했고, 남미 대륙으로 건너가서 오리노코강과 아마존강의 동식물을 탐사하고, 콜롬비아세 안데스산맥을 넘어 페루까지 탐험을 거듭했다. 그는 에콰도르에 있는 참보라스 산(6263미터)까지 올라가서 위도, 경도, 기후 등 자연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동식물 분포에 관해서도 조사했다.
훔볼트는 남다른 호기심과 관찰력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한없이 느리게 변하는 자연을 보면서 지루해하거나 아름다운 경관을 보면서 경탄만 하는 여행가가 아니었다. 그는 남달리 특이한 흥분과 설렘으로 동식물을 바라보았고, 그들이 자연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했다. 그러한 관찰력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질문은 단순한 데서 시작된다.
어린 시절 베를린의 자연에서 보았던 식물은 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가, 따위의 간단한 질문과 같은 것이다. 그런 호기심은 그가 참보라스산으로 올라가면서 치밀한 관찰력으로 구현된다. 베를린에서부터 품어왔던 질문의 사슬이 참보라스산 위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저서 [식물지리론]에다 이렇게 적었다.
“해발 5076미터인데도 눈 위로 바위 이끼가 보였다. 이끼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800미터 아래에서였다.” 그는 또한 그의 동료가 해발 4500미터에서 나비를 한 마리 잡았으며 거기에서 500미터를 더 올라가서도 파리를 보았다고 적었다.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서 재인용)
훔볼트는 스스로 주변 자연환경을 관찰하고 의문을 가졌으며, 주변 동료들의 관찰 결과를 허투루 듣지 않았다. 그가 본 것과 동료들이 말해준 것은 모두 귀중한 정보가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호기심을 갖지도 않고 관찰을 수행하지도 않는다. 그저 눈과 귀로 흘려보낸다.
수백 미터를 더 올라갔을 때 파리나 바위 이끼가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가를 구별해 낼 수 있을 때 중미의 기후와 고도와 동식물 성장의 차이를 적시할 수 있는 자연과학 서적 [식물지리론]을 쓸 수 있는가 없는가가 결정될 수 있다.
보통 여행자들에게는 안타깝지만 그런 의문과 질문이 떠오르지 않는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그저 아름다운 꽃들과 호수를 보면서 감탄하고 길거나 험난한 곳에 이르러 지루해하고 기피하고 불평한다. 어떤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나 경탄스러운 역사적 유물을 보고 그저 관찰력을 발휘하여 정확하고 사려 깊게 기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언제나 왜?라는 질문에서 비롯된다.
질문은 호기심에서 시작되며 그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저기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 거기로 가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는 방법 외에 어떤 것이 있을까. 거기로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도 될까...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질문은 오늘 가지고 있다가 내일이면 완전히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질문과 기억은 당신의 인식 속에서 긴 사슬로 이어져서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새로운 호기심과 관찰력으로 살아난다. 그것은 적어도 당신 안에서 호기심과 질문의 역사가 된다.
당신은 오늘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럼 이렇게도 생각해 보라. 어디로 왜 가는지, 가는 방법은 무엇이 좋은지, 가다가 무엇을 볼 수 있는지, 당신이 본 그들, 즉 사람들과 동식물은 어떻게 그곳에서 살고 있는지,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 나아가 그들의 삶과 생존방식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등등.
여행이 언제나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삶이 너무 지루해서 좀 더 신나는 뭔가를 찾는다거나, 거꾸로 일상이 너무 바빠서 지쳤으므로 아주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싶다거나, 그냥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여행을 갈 수도 있다. 아니면, 가고 싶지 않지만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구가 가자고 해서 반강제로 끌려갈 때도 있다. 그들의 강요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인생은 언제나 의미 있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인생이 그래야 한다고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모든 시간에서 가치를 얻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당신의 인생이 언뜻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그런 순간은 때때로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그런 빛나는 순간이 왔을 때 당신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다. 그런 빛나는 순간은 언제 올지 언제 지나가는지 정해져 있지 않다.
어쩌면 여행에서 조금 더 정확히 구체화된 그러 순간을 마주칠 가능성이 많다고 믿는다.
여행은 습관에 젖은 일상에서 멀어져서 낯선 타인의 일상을 보고 이해하는 동시에 당신의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행의 순간순간을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삶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당신 옆으로 아주 중요한 인연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그저 예쁜 먹거리에 만족하고 배 터지도록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바보 같은 생각으로 다니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