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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Nov 06. 2024

세 번째 세계 (1)

대방교회의 추억

1.


“사는 곳이 어디야?”

“아파트에 방이 몇 개인데?”

“어떤 자동차 몰고 다녀?”


요즘 사람들은 이 정도 질문만으로도 상대방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곧 그 사람의 경제적 형편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사회에서는 누군가에게 어디에 살고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 묻는 것은 그 사람을 평가하는 핵심적 질문이다.


그런데 만약 '학교'가 그런 질문에 더하여 가족 상황, 부모의 직업과 학력, 자동차와 냉장고 등의 소유 여부, 취미 등까지 조사하려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학교에서 그런 내용을 조사하기 위해서 학생에게 설문지를 보낸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내가 어릴 때 학교는 그렇게 했었다. 아마도 정부가 국민의 문화 수준 실태를 조사할 목적으로 각 학교로 하달된 업무인지 모르겠지만, 학교는 매년 학생들의 가구 경제 및 문화생활 상황을 조사했다. 학생들에게 가정 조사 설문지를 주고 다음날까지 작성해 오라고 했는데, 그 설문지에는 이런 질문들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에 자동차가 있느냐, 냉장고가 있느냐, 텔레비전이 있느냐, 전화가 있느냐, 신문을 보느냐, 집은 자가냐 전세냐 월세냐, 부모님의 직업과 최종 학력은 뭐냐 등. 이렇게 개인과 가족의 세세한 사적 상황을 샅샅이 뒤지는 일은 요즘에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겠지만 예전에는 학생들의 사생활 보호는 가당치도 않았다. 학생들의 교복과 교모에서 소속 학교와 학년이 대충 드러나는 데다 가슴에 이름표까지 딱 달고 다녀서 누구에게나 자신의 신분과 이름을 드러내고 있어야 했다.


모든 것을 드러내도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는 아이들이야 이런 가정조사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집에 자동차도 없고, 냉장고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고, 전화도 없고, 신문도 보지 않고, 월세로 살고, 부모님은 무직이거나 한 부모 가정에서 사는 아이들은 이런 조사를 당하는 것이 싫고 대답도 엉터리로 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 영화에서도 형태는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상황을 본 적이 있는 듯하다. "아부지 뭐하시노?" "..." "아부지 뭐하시냐 말이다.""건달입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아버지가 건달이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는데, 실제로 학생이 선생님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설문조사는 학생들의 가족사항을 묻기도 했다.

부모와 형제자매의 숫자 그리고 나이.


나 어릴 때 대방동 우리 동네에는 언덕을 넘어서 멀지 않은 곳에 고아원이 있었다. 나는 고아원의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 알지 못했지만 아침에 가끔 초등학교로 가는 고아원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 이십여 명에 이르는 그 애들은 누가 봐도 티가 나는 모습으로 서울공업고등학교와 강남중학교를 잇는 높은 담 옆으로 두 줄로 서서 지나갔다. “티가 난다”라고 말하는 것은 혹시라도 내가 절대로 그들을 비하하여 말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기 바란다. 이 말은 단지 그들이 입은 옷이 제복이 아닌데도 모두 비슷하고 머리 모양까지 단발로 비슷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더욱이 군인들도 아닌데, 거리를 걸을 때 그렇게 줄을 맞춰서 다니는 것도 그 당시 그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학교에서 주는 가정조사 설문지를 보면서 생각했었다.

그때 그 고아원 아이들은 그 질문들에 뭐라 대답했을까.


그들은 자기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 구분할 수 있었을까. 자기 집에 텔레비전이나 냉장고가 있는지 신문을 보는지에 관해 그들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고아원이 필경 전세나 월세가 아니라 자가이고, 그 집에 텔레비전과 냉장고가 있으며 신문도 보고 있었다면 그들은 그 질문들에 모두 긍정적으로 대답했을까. 그러나 부모나 가족 상황에 관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모두 ‘없음’이라고 대답해야 했을까. 아니면 모두 고아원 원장님을 어머니라고 대답했을까.


그들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어쩌면 나 역시 일부 질문에 비슷한 고민을 했다. 가족의 학력을 묻는 질문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일제강점기에 깡촌 시골에서 어쩌면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상상했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설문지에는 언제나 아버지 학력을 ‘고졸’이라고 적었다. 당시 우리 세대의 부모님 가운데 대학을 나온 사람은 거의 없었으므로, 대졸이라고 쓰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고졸보다 아래로 쓰는 것은 그 설문지를 보게 될 선생님이나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괜히 창피한 듯했다.


그러나 그 시절 괴산 산골 마을에 과연 고등학교가 어디에 있었을까. 일제가 중국과 전쟁을 일으켜 동북아가 온통 어지러웠던 시절이었고, 나중에는 태평양전쟁까지 벌어졌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지독하게 궁핍했던 시골에서 내내 살다가, 그곳에서 먹고 살 방편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고 17세에 출가했다고 하는데 그가 어떻게 고등학교를 졸업했겠는가. 하지만 나는 언제나 당당하게 아버지는 '고졸', 어머니는 '중졸'이라고 적었다. 물론 그 대답이 진짜인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이렇게 사생활에 관한 조사를 실시했었다는 사실에 관해 이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당시에는 국민의 경제문화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겠지만, 설마 아직도 그런 조사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희망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중고등학생 시절에 교사들로부터 당했던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한 폭언과 폭력을 생각할 때, 이런 가정조사 질문들은 아주 사소한 추억거리에 불과하다. 그 시절 학교에서 벌어졌던 비인격적이고 잔인한 ‘짓’은 훨씬 더 많았으므로, 사실 이 정도는 약과 중에서도 약과다.


그것은 그저 마치 중세 봉건시대의 수도원과 같았던 학교와 권위주의적 군사 정부가 학생들의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무시하던 시절에 있었던 아주 작은 초상화일 뿐이다. 설문지를 받은 다음날 혹시라도 설문지를 잊고 안 가지고 가서 선생님에게 두드려 맞는 것만 아니라면, 아이들은 자신의 사생활 정도는 아무렇게나 적어서 제출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2.


지금 내 이야기의 초점은 과거의 그러한 비애와 폭력을 되새기는 데 있지 않다.


그런 가정조사 외에도 교사들이 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조금 더 의미 있는 개인적인 질문사항도 있었다.

특기나 취미, 장래희망, 감명 깊게 읽은 책 등……


나는 그 설문조사에 적은 것 중 특히 감명 깊게 읽은 책에 관해 말하려고 한다. 그 당시 책은 맨날 학교 시험만 걱정하고 다니는 우리에게 고단한 삶의 위로가 되었고, 사색의 통로가 되었으며, 거칠고 어두운  바다에서 밝은 미래를 향해 가기 위한 등대가 되었다.


해서, 당신은 그때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라고 대답했는가.


취미에 대한 아이들의 대답은 음악감상, 독서, 우표 모으기 등 대체로 비슷했다. 실제로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빈칸으로 놔둘 수는 없었고, 별다른 취미가 없는 아이들도 ‘군것질’ 또는 ‘골목에서 축구하기’라고 적을 수는 없었으므로, 조금 더 있어 보이는 고상한 취미를 적었으며 옆 친구는 그 내용을 보고 따라 적었다. 우리가 어떻게 적든, 선생님은 학생이 적은 그 취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증명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장래희망 또한 대통령, 장군, 외교관, 판사 등 아이들에게 영웅이나 위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어차피 그때 아이들이 알고 있는 직업이나 실제로 될 수 있는 직업은 매우 제한적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좀 더 다양한 제목들이 나오곤 했다. 아이들이 실제로 읽은 책이 서로 다르기도 하거니와, 읽지 않은 책을 읽었다고 적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 대해 나는 중학생 초기에는 심훈의 [상록수]를, 조금 더 지난 후에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나중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적었다.


[상록수]라는 소설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후 첫 한 달간 읽은 책이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중1이 된 후  3월 내내 나는 그 책을 가방에 넣고 학교에 다녔다.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마다 나는 그 책을 꺼내어 읽곤 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개학 후 아직 처음이라 아직 다른 아이들과 신나게 떠들 일이 별로 없었던 데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나는 어릴 때와 달리 조금 더 ‘어려운’ 또는 ‘수준이 높은’ 소설을 읽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책들은 주로 ‘아동문학’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되어서, 소설의 문장이나 구성이 어린이들의 수준에 맞게 만들어졌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더 이상 그런 소설들을 읽는 대신 본격적으로 한국 문학, 한국 소설들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 첫걸음으로, 당시의 독서 문화 추세이기도 했지만, 한국의 근대 소설을 손에 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다 보니, [상록수]는 아동문학에 비해 매우 두껍고 문장도 어려워서, [쌍무지개 뜨는 언덕]이나 [톰 소여의 모험] 등 아동문학을 읽을 때처럼 빠르게 읽기는 어려웠다. 약간 이상한 계획일 수도 있지만, 그때 나는 그 책을 학교에서만 읽기로 계획했다. 방과 후에는 소설을 읽지 않고 학교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만 읽어도 그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독서 속도는 예상보다 더디었다. 글의 구성과 문장이 아동문학에 비해 어렵고, 성인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으며, 소설 속의 시대적 문화적 배경도 거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3월에 그 책을 끝내기로 계획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3월의 마지막 며칠을 남겨두었을 때, 결국 남은 수십 페이지를 집에서 몰아 읽음으로써 다행히 그 책을 끝낼 수 있었다.


농촌계몽 소설이면서 연애소설이기도 한 그 책은 내가 읽었던, 더 이상 아동이 아니라 성인을 위한 첫 장편소설이었다. 단순히 책의 두께로만 따지면 초등학생이었을 때 읽었던 각종 동화 전집이나 영웅전과 신화 등도 [상록수]에 버금가는 책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책들은 모두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었으므로 [상록수]와는 차원이 달랐다. [상록수]를 읽음으로써 나는, 어린이일 때와 달리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는 것처럼, 독서에 있어서도 내가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 청소년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자각할 수 있었다.


중학교 후반과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읽었던 [데미안]과 [죄와 벌]이라는 두 소설은 나에게 막상막하의 비중으로 다가왔다. 이 책들을 통해 나는 어린이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사랑에 관해 성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아동문학은 매우 의도적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거나 지향하고 도덕적으로도 착하게 살라고 하는 교훈적인 이야기들로 꾸며졌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새로 읽기 시작한 소설들은 삶이 결코 만만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는 사랑과 희생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기만과 억압과 폭력이 난무한다는 것이며, 때로는 폭력과 살인과 전쟁까지 아우르는 것이 현실이라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공격과 무시, 개인이 느끼는 고독과 좌절, 인간들 사이의 투쟁,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시기와 암투, 이익과 명예와 권력을 얻기 위한 기만과 술수 등 아동문학에서 보기 힘든 주제와 내용들이 ‘성인 문학’에서는 비일비재했다.


이 책들 이전에 읽었던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무척 감명 깊었고 연애편지를 쓸 때도 많이 인용했었다. 그 책은 소년으로 거듭나는 우리들의 마음에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향한 애정 어린 꿈을 꾸게 했고, 어른들과 구별되는 소년으로서의 감수성과 정체성을 자각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성인용 동화’와 같아서, [데미안]이나 [죄와 벌]처럼 좀 더 무겁고 고뇌가 뒤섞인 현실적 삶의 문제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데미안]과 [죄와 벌]은 모두 나에게 깊은 충격과 감명과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데미안]은 인간의 성장에 관하여.

[죄와 벌]은 인간의 고뇌에 관하여.


그 두 권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심리 상황과 그 본성 및 변화와 타인과의 관계에 관하여 생각하게 했다. 더 이상 혼자 남은 개인 또는 따뜻한 정으로 엮인 인간관계가 아니라, 때로는 적대적이면서 폭력적이고 때로는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인간관계와 애증의 욕망으로 뒤얽힌 인간들의 상호작용에 관하여 생각하게 했다. 그 두 책을 읽고 나서, 나는 헤세와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다른 소설들까지 연이어 찾아 읽었다. 그럼으로써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와 같은 삶에 던져진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그 저자들이 떠난 여행길에, 나도 함께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 나에게 독서는 진정코, 아직 가족과 학교와 교회라는 테두리에 갇혀 있었던 내가 그 세 개의 세계 바깥에 있는 냉혹한 사회와 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일깨워주는 간접적인 체험이었다. 고단한 학교 생활 가운데 그러한 상상과 사색의 세계로 나래를 펼 수 있었던 것은,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남 모르는 행복이었음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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