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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영주 부석사로 가는 길 - 아는 만큼 보인다고?

2024년 가을 중부지방 여행 이야기

by memory 최호인

1.


챗GPT를 이용하는 재미를 다시 느끼면서 우리는 챗GPT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예를 들면, 영월에는 무엇이 유명한가? 부석사의 특징은 무엇인가? 부석사 무량수전의 정문은 남쪽을 향하는데 그 안에 있는 부처는 왜 동쪽을 바라보는가? 불교 사찰에서 그런 것은 흔한 일인가? 등등.


챗GPT를 사용해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그것이 하는 대답은 대체로 맞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모두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챗GPT가 집적한 정보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거대 정보’에 기초한 것이라 가끔은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결코 엄격하게 세부적이고 집중적으로 조사하여 밝혀낸 결과를 내미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챗GPT의 대답은 때로는 너무나 간단해서 충분하고 시원한 대답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아쉬울 뿐이다. 물론 챗GPT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다. 챗GPT 사용자는 질문을 잘 구성해서 전달해야 하는데, 해보면 그것이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다. 앞으로 더 많이 익숙해지면 챗GPT는 더욱 ‘좋은’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챗GPT 놀이에 흥미가 떨어지면서 우리는 음악을 듣기도 했다. 유튜브 유료 멤버로서 나는 유튜브 음악도 자주 듣는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어떤 음악을 선택하여 들으면 그 음악과 유사한 분위기의 음악이 연달아 나오는 것이다. 가만히 두어도 음악이 끊이지 않고 한참 동안 나온다.


이따금 혁국은 운전하면서 노래를 신청했다. 그것도 혁국이니까 하지, 재관과 상국은 그러는 법이 없다. 재관은 그렇다 치고 상국은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도 딱히 신청곡까지 내밀지는 않는다. 그게 그의 성격이다.


자동차 안에서 혁국이 어떤 곡을 신청했는지 제목과 가수를 잊었다. 그런데 내가 어떤 팝송을 들으면 혁국은 “그래 내가 그 곡을 신청하려고 했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와 나는 올드 팝송에 관해 언뜻 비슷한 취향이 있다. 동시대에 젊은 시절을 살았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대중음악에서도 비슷한 취향과 감성이 공유된다. 하여간 아직도 그런 노래들을 기억하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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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심규선이라는 가수가 마음에 들더라.”

나는 최근에 가끔 들었던 심규선의 노래를 떠올렸다.

“누군데? 여자 가수지?”

“그럼 여자 가수지, 남자 가수겠냐. 일단 들어봐.”


“좋아하는 가수”라고 표현할 때 우리는 ‘기본적으로’ 여성 가수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남성 가수라면 아마도 “노래를 잘하는” 가수라고 표현했을지 모른다. 그런 표현의 차이는 나이가 들어도 불가피하게 남은, 이성의 매력에 관한 관심의 표현일 뿐이다. 그러면서 나는 그녀의 노래 ‘부디’와 ‘어떤 날도 어떤 말도’를 틀어주었다.


그녀의 얼굴이 나오는 비디오를 본 이 중년의 남자들은 자신들의 주제를 생각하지도 않은 채 감히 무례하게도 얼굴 품평회를 한다.


“이런 스타일을 좋아해?”

“아니 좋아한다기보다는 젖은 목소리가 뭔가 사람을 끄는 분위기가 있잖아. ‘젖은 목소리’라는 게 뭔지 알지? 듣는 사람의 마음을 그윽하고 차분하게 해주는 목소리.”

“그런데 너무 오래된 가수 아니야?”

“아냐. 얼마 전에 심규선 유튜브 노래 아래에다 어떤 중년 남성이 쓴 댓글을 봤는데, 중학생 아들이 열심히 듣길래 누군가 봤더니 심규선 노래들이라는 거야. 10년 전에 많이 유행했는데 그것도 오래전이라 할 수 있나?”

“하여간 노래 처진다. 다음 곡.”

“그래. 그럼 신청해. 틀어줄게.”


그러면서 나는 이번에는 러브홀릭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또한, 지금은 제목이 생각나지 않지만 꽤 여러 팝송을 함께 들었다. 주로 수십 년 묵은 노래들. 콜드플레이처럼 비교적 최근 팝송을 들려주고 싶어도 친구들이 알지 못하거나 취향이 너무 차이가 날 듯해서 나는 아예 시도하지 않았다.


음악과 예술 취향은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맹세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선택한 곡들이 정말 좋았고 가수가 노래를 잘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니 노래가 발표된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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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렇게 음악을 듣고 대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어느새 부석사에 도착했다.


이 사찰에 관해 말로만 많이 들었지, 직접 와보는 것은 처음이다. 무량수전과 ‘배흘림기둥’이라는 표현을 무척 많이 들어서 꼭 한번 보고 싶었다. 다른 사찰과 뭐가 다른지 궁금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기록한 유홍준이 해서 더욱 유명해진 문장을 기억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문장은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 유한준이 남긴 명언을 유홍준이 고쳐서 사용했다고 한다.


유한준은 말하길,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하여간 유홍준의 이 문장을 처음 보았을 때는 대단히 통찰력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좀 달라졌다. 매우 교훈적이고 훌륭한 말이긴 하지만 완전히 맞는 말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아무렴 아는 만큼만 보일까.


몰랐다 해도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있는 법이고, 알아도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을 법도 한데…


음악을 예로 들어보자.

음악을 알고 즐겨 듣는 사람이 비슷하게 말한다면, ‘아는 만큼 들린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을 알면 더 잘 들을 수 있지만, 실은 들으면서 알게 된다. 비록 알게 되는 속도가 더디다 해도. 알지 못해도 듣는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그래서 듣는 만큼 알게 된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알면 더 잘 볼 수 있겠지만, 실은 보면서 알게 되기도 한다. 비록 알게 되는 속도가 더디다 해도. 알지 못해도 보는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그래서 보는 만큼 알게 된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선험적 지식만이 나에게 닥친 현실을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선택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무작위적 무계획적 경험을 통해서도 지식과 지혜는 축적된다.


또한 아는 것이 일정하다 해도, 같은 것을 두 번 세 번 다시 보면 볼수록 또 다른 맛이 난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다. 그것은 그것대로 아는 것의 생성과 변화를 말해준다고 할 수도 있다. 자꾸 듣고 봄으로써 아는 것이 변화하거나 생성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원래 아는 것만으로는 보이는 것이 이미 완성된 것은 아니다.


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 딱 고정된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변화하고 생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뭔가 결정론적인 유홍준의 말은 더욱 아쉽고 헷갈리기도 한다.


하여간 그렇다 해도 아는 게 모자란데, 특히 이렇게 유명한 사찰에 오게 되어서 안타깝다. 이런 사찰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역사와 종교와 건축과 미학에 관한 지식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런 지식이 없으면 그냥 겉핥기식으로 보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유홍준의 말이 옳기도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fzer60TnlMI

심규선 - 부디

https://www.youtube.com/watch?v=uYbns3auKyw

심규선 - 어떤 날도 어떤 말도

https://www.youtube.com/watch?v=41YLhEOKSRU

러브홀릭 - 인형의 꿈 + 그대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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