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중부지방 여행 이야기
여행 사흘째 아침.
지난밤에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잤는데도 아침에 모두 잘 일어났다. 어젯밤에 안갯속에서 고요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던 사북은 날이 밝은 후에는 흰 구름에 푹 파묻혀 있었다. 맑은 가을 아침 하늘 아래 산들 속에 갇혀 있는 사북을 뒤덮은 안개 같은 흰구름은 풍경화와 같다.
그 조용한 아침의 흰 구름 또는 안개는 시간이 갈수록 마술처럼 금세 사라진다. 베란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고 공기는 신선했다. 태백산맥에서도 움푹 파인 산골에 있는 시가지라 그렇겠지만, 저런 모습이 매일 반복된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여행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속으로 감춘 채 우리는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여행을 위한 사무적인 일과 회계 업무는 모두 재관이 알아서 해준다. 그는 이런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놀라울 정도로 성실하고 매우 꼼꼼한 편이다. 운전사 옆에 앉아서도 줄곧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면서 길을 안내하고 끊임없이 대화를 할 수 있는, 그가 가진 에너지는 놀랍기만 하다. 숙소에서 내려오다가 재관은 숙소 열쇠를 돌려주고 계산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프런트데스크로 갔고 우리는 자동차로 향했다.
먼저 아침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우리는 사북을 떠나기 전에 식당을 찾았다.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시내에 널찍한 삼거리가 보였고 그곳에 장터국밥이라고 적힌 큰 간판이 보였다. 우리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국밥이나 설렁탕을 먹기로 했다.
사북 주위에는 온통 산들만 있다. 자동차를 주차한 곳에서 보니, 근처 건물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고 거기에 ‘별빛공원’이라고 적혀 있는 문구가 보였다. 궁금증이 생겼지만 굳이 올라가지는 않았다. 어느 건물 로비 앞인 듯한 그곳은 그리 넓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밤이 되면 하늘에 뜬 별을 보기 좋은 곳 또는 야외 카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2.
사북에 들어올 때부터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사북의 특징 중 하나는 호텔과 전당사가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모두 강원랜드와 관련된다. 즉 도박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숙소로 삼았던 하이캐슬리조트에서 나가면 바로 오른쪽에 강원랜드가 있다. 내국인들을 위한 카지노 장소인 강원랜드는 건물 외관부터 독특해 보인다. 주말이 되면 카지노를 즐기려고 매우 많은 사람들이 강원랜드를 찾아온다. 특히 서울에서 줄지어 온다고 한다.
그런데 강원랜드에서 잘 수 있는 방을 구하지 못하면 저절로 사북 읍내로 내려와서 잘 곳을 찾게 된다. 그것이 사북에 호텔과 모텔이 많은 까닭이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강원랜드에 왔다가 그 근처에서 숙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카지노를 즐기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금요일이나 토요일 오후에 와서 카지노만 하다가 새벽에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강원랜드 주변 호텔이나 상가나 식당의 매상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북에 있는 여러 고급 호텔과 리조트들도 적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겨울이 되어서 강원랜드 뒤에 있는 하이원리조트스키장으로 사람들이 많이 와야 사북, 고한, 정선, 태백 등에서도 장사가 잘된다고 해야 할까.
우리가 묵은 하이캐슬리조트도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호텔 중 하나로 보인다. 하이캐슬리조트는 고층 건물이고 강원랜드 바로 옆에 있으며 매우 고급스러운 곳이다. 그런데 우리가 갔을 때 로비에는 숙박객이 너무 없어서 나는 내심 놀랐다. 로비와 엘리베이터, 또 건물 안팎에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렇게 큰 호텔에, 그것도 강원랜드 바로 옆인데 이렇게 사람이 없다니!
원래 카지노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은 호텔 방에서 잠을 잘 새가 거의 없다. 그런 사람들은 거의 밤을 새워서 카지노 게임을 즐긴다. 그래서 호텔 로비만 봐서는 실상을 알 수 없다. 현재 강원랜드 카지노는 아침 10시에 시작해서 새벽 6시에 문을 닫는다. 즉 하루에 20시간 동안 영업한다.
물론 나는 강원랜드의 자세한 실상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말하고 싶지도 않다.
3.
카지노에 관해 내가 경험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미국 뉴저지주 애틀랜틱 시티에 있는 카지노호텔을 들렀던 것에 불과하다. 이 도시는 전형적으로 라스베이거스를 모방하여 만들어진 카지노 도시다. 즉, 미국 서부에 거대한 라스베이거스가 있다면 동부에는 허름하지만 애틀랜틱 시티가 있다. 유명세나 규모를 보면 라스베이거스가 압도적으로 크고 화려해서 애틀랜틱 시티는 명함을 내밀 수 수 없을 정도다.
카지노를 즐기지 않는 나는 라스베이거스에 가본 적이 없지만 애틀랜틱 시티에는 여러 번 가봤다. 뉴저지주 중부 지역에 있고 도시 바로 앞에 대서양이 펼쳐져 있다. 뉴욕시에서는 자동차로 두 시간 반 정도 거리다. 나무들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안 보이는 고속도로를 따라 대서양을 향해 한참 달리다 보면 갑자기 고층건물들이 보이는 도시가 등장한다. 그곳이 애틀랜틱 시티다.
고층건물들은 거의 모두 카지노 호텔들이다. 그 건물들 바로 앞에 있는 바닷가 해변에 보드워크가 있다. 사람들은 호텔에서 슬리퍼만 신고 걸어 나와서 보드워크를 돌아다닐 수도 있고 음식을 먹거나 쇼핑을 하기도 하고 모래사장으로 나가서 놀 수도 있다.
강원랜드와 달리, 그곳에 있는 카지노 호텔에 가는 것은 꼭 도박을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다. 나처럼 그냥 호텔 시설과 바닷가를 즐기기 위해서 가는 사람들도 있다. 거대한 대서양을 따라 펼쳐진 모래사장은 거의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길다. 그곳으로 카지노에 관계없이 남녀노소가 사시사철 놀러 온다. 물론 바닷가라서 여름이 성수기다.
카지노 호텔은 숙박을 하든 안 하든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물론 미성년자들은 카지노 게임을 할 수 없고 영업장에 출입할 수 없다. 그러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카지노호텔로 들어가서 프런트데스크나 호텔 방으로 가려면 불가피하게 카지노게임장 옆으로 지나갈 수밖에 없다. 건물 내 동선이 그렇게 짜여 있다. 그래서 가면서 슬롯머신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하여간 그 호텔로 아무나 들어갈 수 있고 구경도 할 수 있다. 성인들의 카지노 영업장 입출입에는 아무 제약이 없다. 강원랜드처럼 입장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신분증을 검사하는 것도 아니다. 강원랜드처럼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딸이 어렸을 때 나는 여름방학 기간에 ‘트럼프 타지마할’이라는 카지노호텔에 갔었다. 보드워크를 걷고 모래사장에서 놀고 호텔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호텔은 지금은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하여간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호텔에는 이태리식, 미국식, 중국식, 일본식 등 다양한 식당들과 실내 수영장도 있다. 우리는 그 실내 수영장과 바닷가와 보드워크를 애용했다. 팬데믹 시절 ‘호캉스’가 유행했다고 하는데, 그것과 비슷하다. 호텔에서 즐기는 바캉스 말이다.
내 경험으로 말한다면, 또한 일반적으로 말해서, 카지노에 간다고 해서 모두 도박에 중독되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끼리 고스톱 등 화투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중독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바둑이나 장기, 골프나 당구 등에서도 내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지만 중독이라는 표현을 들이대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카지노 도박의 중독성은 그런 것들보다 훨씬 강하다고 한다. 어느 글에서 보니, 도박보다 중독성이 강한 것은 마약밖에 없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이나 흡연 중독도 도박 중독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중요한 교훈은, 카지노에 가더라도 지나친 욕심과 유혹에 빠지지 않으면 되고, 너무 장시간 빠져들지 않으면 된다. 소위 ‘적당하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현실은 매우 복잡한 일이다.
4.
카지노 중독자들 중에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상담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자신이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식으로 말한다. 처음에는 마치 술을 마시거나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그야말로 친구 따라, 잠시 즐기러 카지노를 찾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가 한 번이 두 번 되고, 이어서 여러 번이 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어떤 사람들은 카지노와 도박에서 예상보다 재미와 스릴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가 한 번이라도 잭팟이 터지는 경험을 하면 그 맛을 결코 잊기 어렵다.
또한, 재미와 여흥을 즐기는 것에 관해 평균 비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다.
미국의 경우 여행지와 거리와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디를 놀러 가든, 일인당 하루에 100~300달러를 쓰는 것은 보통이다. 비행기를 타고 간다면 항공요금은 별도다. 그래서 차라리 돈을 딸 가능성도 있는 카지노에 가서 주말을 즐기겠다는 마음을 먹고 가는 사람도 많다. 예를 들면, 그곳에 간 김에 맛있는 식사도 하고 바다도 보고 100달러 한정으로 카지노도 즐기겠다는 심산 하에 말이다. 물론 그 100달러는 순식간에 날릴 공산이 크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100달러까지 잃으면 군말 없이 일어나겠다고.
그런데 카지노에 조금 익숙해진 후에는 그 100달러가 곧 1000달러가 되고, 더 시간이 지나면 1만 달러가 된다. 나중에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넣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그 액수가 올라갈 수도 있다. 거기가 인생이 파산에 도달하는 지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블랙잭이나 포커를 하면서 실력이 늘어난 사람은 금세 알게 된다. 한 게임에 적어도 수십 달러 또는 수백 달러가 오고 간다. 그즈음, 게임을 하다 보면 돈을 잃기도 하고 따기도 하는 것이 반복된다. 그러다가 점점 용기와 욕심이 얼룩지면서 하룻밤 도박 액수는 수천 달러로 증가하게 된다. 잃고 따서 본전이 되는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되면 판돈이 점점 커지게 된다. 오늘 잃더라도 다음에 따면 된다고 위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도박의 재미와 실력이 늘면서 돈을 잃기도 하고 따기도 하는 것이 반복된다. 그리고 어쩌다 돈을 왕창 딸 때 느끼는 쾌감을 잊기 어렵다. 자신에게도 ‘전설’적인 날이 생기는 것이고, 남들에게 언제나 자랑할 수 있는 '영웅담'이 생기는 것이다.
골프나 당구에 미친 사람이 당구장과 골프장의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카지노에서 손에 잡히는 칩들과 카드에 대한 손의 감각과 카지노 영업장의 분위기가 그리워지는 것도 그때쯤일 것이다. 당구에 빠져서 자꾸만 천장이 당구대로 보이는 것처럼 눈앞에서 카지노 테이블 모습이 그려진다.
그래서 그 맛을 잊지 못해 카지노로 갈 때마다 마음에 흥분이 일고 지갑에 든 돈의 규모가 자꾸 증가하는 법칙이 발생한다.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맛보는 것처럼, 블랙잭이나 포커에서 큰돈을 따는 쾌감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주말 오후만 되면 뉴욕에서 세 시간 정도 차를 몰고 기꺼이 애틀랜틱 시티로 향하는 자동차들이 많다. 그들은 새벽에 호텔에서 잘 때도 있지만 그냥 뉴욕으로 돌아올 때가 더 많다. 기쁘거나 우울해서 미친 듯이 차를 몰면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주말이 되면 서울에서 강원랜드로 향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으로 나는 짐작한다. 비록 애틀랜틱 시티나 마카오 등 해외 카지노에 비해서 강원랜드의 규모가 너무 작다 해도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FPSun30T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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