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여행 이야기
1.
애틀랜틱 시티에서 카지노 게임이 벌어지는 영업장 풍경은 강원랜드의 그것과는 매우 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번에 강원랜드를 조사해 봤더니 미국의 카지노 영업장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인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애틀랜틱 시티의 카지노는 그곳에 카지노 영업장이 있다는 것만 빼면 일반적인 큰 호텔과 같다.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누구나 아무 때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
카지노 호텔에서 숙박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입장료도 없고 ATM에서 현금을 찾을 이유도 없다. 카지노 영업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또는 게임을 하기 위해 줄을 서는 일도 없다. 블랙잭이나 포커 테이블 뒤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다. 타인들의 진지한 카지노 게임을 보는 것도 재미있고, 그렇게 해서 게임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카지노 테이블과 슬롯머신은 무척 많아서 주말이 되어도 빈자리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카지노 호텔이 마음에 안 들면 보드워크를 걷거나 자동차를 몰고 다른 카지노 호텔로 가면 된다. 카지노를 자주 즐기는 사람들은 호텔마다 다른 특성까지 파악하게 된다.
카지노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은 참여하고 돈 규모가 가장 큰 게임은 블랙잭이다. 그것은 게임하는 방법을 잘 이해해야 하고, 테이블에 앉은 다른 사람들과도 눈치껏 잘 어울려야 한다. 딜러와 상대해서 돈을 잃거나 따는 게임이라서 옆사람들과 협동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가 잘못 끼어 앉으면 완전히 ‘물을 흐려서’다른 사람들로부터 눈치와 욕만 된통 먹게 된다.
테이블 게임에 참여하려면 머리를 잘 써야 한다. 일반적으로 베팅 규모도 크다. 테이블 게임들처럼 머리를 쓰는 일을 하지 않고 얌전히 혼자서 게임을 즐기려면 그냥 운을 좇는 슬롯머신 앞에 앉으면 된다. 버튼만 계속 누르면 자동으로 숫자나 그림이 돌아가서 돈을 따거나 잃게 된다.
슬롯머신을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눈을 정면에 고정한 채 거의 기계적으로 버튼을 누르고 있다. 슬롯머신에서 베팅 액수를 정할 수 있는데, 액수가 커지면 수백 달러를 잃는 것도 순식간이다. 슬롯머신 앞에 한참 앉아 있다 보면, 버튼 위에 얹힌 손가락을 반복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돈 액수가 변하는 것이 마치 느린 영화 장면을 보는 것처럼 흘러간다. 어떤 신비로운 비디오를 보듯이 정신까지 몽롱해지기 십상이다.
그렇게 버튼을 누르다가 문득 수백 달러가 사라졌음을 깨달을 때 자신이 기계를 잘못 골랐다고 한탄하면서 자리를 옮겨 앉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어떤 기계는 잭팟이 잘 터진다. 자신은 돈을 잃고 있는데, 주변 어느 기계에서 요란한 벨소리가 나면서 잭팟이 터지면, 불현듯 부러운 마음이 샘솟으면서, “에이, 나는 왜…”라고 한탄을 금할 수 없다. 그리고 조금만 더 하면 나도 잭팟이 터질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감이 부푼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되고 처참해진 몰골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슬롯머신의 승률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뉴저지 주정부에 도박을 규제하는 위원회가 있어서, 카지노 호텔의 슬롯머신 수익률을, 예를 들어 85% 정도로 통제한다. 수익률이 그렇게 정해지면, 그 말은 슬롯머신을 운영하면서 카지노 회사가 수집 자금의 85%를 참여자에게 지급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슬롯머신 참여자가 100만 원을 집어넣으면 85만 원을 지급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확률은 온라인 카지노에서 더 높다고 한다. 그만큼 참여자들이 쉽고 빠르게 카지노 게임에 빠져들기 때문일 것이다.
슬롯머신을 즐기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그 수익률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그 앞에 오래 앉아 있으면 돈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슬롯머신에 맛을 들인 사람들은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어느새 슬롯머신 앞으로 가서 앉는다.
나도 슬롯머신을 해보았다. '재수' 문제이긴 하지만, 수백 달러를 잃기까지 한 시간도 안 걸린다. 조금 하다가 혹시라도 잭팟이 터질 만한 기계가 있나 하면서 자리를 옮겨 다니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그럴 때 자리를 떠나지 말고 계속 더 해봐야 한다고 부추기기도 한다. 기계가 어느 정도 돈을 따다가 잃어주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것도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라 무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나는 그럴 정도로 도박에 빠져들지 않았다.
아, 여기 있으면 돈을 따는 것보다 잃을 확률이 대단히 높구나,라고 생각하고 자리를 떴다.
짧지만 쓰디쓴 경험을 가지고.
거기에서 “언젠가는 나도”를 속으로 외치다 보면 중독의 길로 가게 된다.
2.
나는 90년대 말에 회사 사람들을 따라 애틀랜틱 시티에 처음 가보았다.
거기서 지인을 따라가서 블랙잭을 해봤다. 그런데 나 같은 초짜는 옆 사람들에게 눈치만 보여서 테이블에 앉아 있기도 어렵다. 그들 말로는 “죽어야 할 때 안 죽고 안 죽어야 할 때 죽기” 때문이다.
비록 칩들로 둔갑되어 있지만,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이라 사람들의 신경이 매우 날카롭다. 게다가 베팅 규모도 슬롯머신보다 훨씬 높다. 그 첫 블랙잭에서 나는 3백여 달러 정도 잃고 일어났다. 불행한 첫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것이 꼭 ‘불행’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거기서 돈을 땄다면, 나는 그다음에도 지인들에게 블랙잭을 하러 가자고 졸랐을지 모른다.
그때 같이 갔던, 블랙잭에 경험이 많았던 지인은 그날밤 총액 8천 달러 규모로 블랙잭을 즐겼다고 한다. 그것도 소액이라고 하면서. 그의 연봉 규모를 생각할 때 그도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블랙잭에서 지속적으로 돈을 잃고 따는 경험을 하면서 기술도 늘고 배포도 커진 결과 점점 지갑에 가지고 가는 액수와 테이블에서의 베팅 규모가 커지게 된 것이다.
슬롯머신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니까, 20달러나 100달러만 가지고 즐겨도 된다. 기계에다 내가 지폐를 넣는 만큼만 게임을 즐기면 되니까. 거기서 돈을 따면 다행이고 잃으면 손을 털고 일어나는 게 좋다. 잃은 돈 되찾겠다고 게임을 더하면 수렁에 빠지는 꼴이 된다.
도박에서 가장 흔한 함정은, ‘본전’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본전이 아까워서 계속 돈을 집어넣는 것은 종종 성공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는 망하는 지름길이다. 자기 돈을 다 잃으면 열받고 본전 생각이 나서 가족이나 친구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는 하류인생으로 전락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금세 한 방 터질 것 같다는 자신의 ‘촉’을 과도하게 발동시킨다. 그때는 누구도 그를 말리기 어렵다. 그러다가 새벽이 되면서 제정신이 아닐 무렵에는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테이블이나 기계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집어넣게 된다.
마지막에는 올인.
그때는 돈이 돈 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테이블에서 블랙잭을 하는 사람들은 종업원에게 팁만 주면 음료수와 알코올도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카지노 영업장 벽에는 시계도 창문도 없다. 주변에는 온통 도박에 집중하거나 구경하는 사람들뿐이다. 일어나서 주위를 살펴보면 돈을 따려는 열기가 넓은 영업장에 가득 차 있다.
블랙잭은 딜러와의 싸움이다. 블랙잭에서 테이블 딜러가 만만해 보이면 선수들이 모여든다. 선수들이 힘을 합해 딜러로부터 돈을 딴다. 그러면 천장에 있는 카메라로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통제실에서 금세 딜러를 교체한다.
카지노를 애용하는 것이 인정된 사람에게 카지노 호텔은 방을 공짜로 준다. 무료로 방을 준다 해도 장기적으로 그들로부터 얻을 게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그래도 방을 거의 이용하지 않고 밤새 도박만 즐기기 때문에 방에서 자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런 사람을 친구로 두면, 연휴에도 매우 비싼 호텔 방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어서 수백 달러를 아낄 수도 있다.
물론 도박을 즐기지 않는다면, 또는 도박의 유혹을 이길 수 있다면, 나처럼 바닷가나 보드워크를 즐기고 식당이나 찾아간다는 기분으로 가면 된다. 그러나 이제 애틀랜틱 시티에 가본 것도 아주 오래전이다. 이미 수십 년 전에 나는 그곳에서 흥미를 잃었고 그곳을 떠났다. 혹시라도 당신이 도박에 깊은 흥미를 느끼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손을 털기를 바란다.
3.
사북 읍내에 가장 많은 가게는 전당사다.
과거에 전당포라고 불렀던 곳이다.
예전에는 그곳에서 개인들이 시계나 신분증 등을 맡기고 돈을 빌렸다. 전당포는 고객의 개인 귀중품을 헐값으로 쳐서 맡아놓고 돈을 빌려준 다음에 비싼 이자를 받는다. 고객이 자기 물품을 되찾으러 오기 전에 물품을 빼돌리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한 번도 전당포를 이용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 하여간. 요즘은 전당포를 보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사북에는 전당사가 매우 많다. 현재 100여 곳이나 된다. 전당사가 너무 자주 문을 열거나 닫아서 제대로 집계하기도 힘들 정도라고 한다. 전당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주로 외지인들이다. 카지노를 하러 왔다가 돈을 모두 잃고 그곳에서 전당사를 차린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전당사에서 돈을 벌어서 또 카지노로 돈을 잃기도 한다.
강원랜드에 와서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은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자신의 자동차, 골프채, 귀금속 등 값비싼 물건을 전당사에 맡기고 사채를 빌린다. 그렇게 한 후에 결국 다시는 자신의 물품을 찾으러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북에는 오랫동안 흙먼지 뒤집어쓴 자동차들이 많다고 한다. 모두 도박하러 왔다가 자동차까지 전당사에 잃은 사람들 때문이다. 사북의 자살률을 조사해 봤더니 이웃에 있는 태백에 비해 여섯 배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주로 허름한 단칸방이나 모텔에서 발견되는 고독사다. 사북과 고한 읍내에 있는 여러 숙박업소에서 장기투숙하는 많은 남성이 도박의 희생자라고 한다.
그래서 결론은, 적당하게 도박을 즐기자는 것이 아니다.
도박은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
자신은 결코 도박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신의 성격을 자신이 모를 때도 있다. 술이나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도 스스로 중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스로 잘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적당히 즐기는 것은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헛된 말을 하기도 한다.
나아가 도박 중독은 알코올이나 담배 중독에 비해 월등히 세다.
중독 경험자들과 그들을 상담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는 말이다.
그러니 도박에 손을 대는 사람이 있다면 술 담배를 끊었던 것보다 더 강한 노력으로 도박하고 싶은 마음을 끊어내야 한다. 도박은 그야말로 패가망신의 지름길이고, 자신의 자존감을 비루하게 낮추는 수단이다.
한국에서 도박 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강원랜드는 담배처럼 국가가 나서서 관리한다. 요즘은 온라인 도박이 너무 늘어나서 일부 청소년들까지 물들고 있다. 그런 문제는 사실 민간이 나서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국가가 적극 나서서 제한해야 마땅하다.
처음에는 폐광으로 낙후되는 고한과 사북 경제를 살린다는 취지에서 강원랜드를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그런 명분이 아직까지 유지된다고 할 수 있을까. 혹시라도 해외로 도박여행을 나갈 사람들을 국내에 잡고 싶어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거기서 나오는 세금 수입을 무시할 수 없어서 그러는 걸까.
https://www.youtube.com/watch?v=IiV9WTXeeHE
Brahms , String Sextet No.1 in B♭ Major, Op.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