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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태백산맥: 사북에서 도계로

2024년 가을 중부지방 여행 이야기

by memory 최호인

1.


어느덧 여행 사흘째. 여행의 마지막 날.

아주 맑은 날이어서 여행하기 딱 좋은 날씨다.


사북의 시원하고 맑은 공기를 가슴에 깊이 들이마시면서 생각했다.

오늘 사북을 떠나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이틀 밤이나 묵었던 만큼 약간 정이 들었는데, 이제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태산준령이나 깊은 산골보다 넓은 평야나 바닷가를 여행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탓에 이곳으로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 그러자 마음속으로 아쉬움이 감돌았다. 사북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묘한 연민도 떠올랐다.


아주 오랫동안, 때로는 대대손손 이토록 깊은 산골에 사는 사람들, 탄광의 발전과 폐광의 역사를 함께 했던 사람들, 검은 석탄으로 돈을 크게 벌기도 했고 몰락하는 탄광업도 경험한 사람들, 주위에는 온통 높은 산들이 가려서 넓은 평야나 바다를 볼 기회가 없이 사는 사람들, 그리고 이곳으로 카지노 게임을 하러 오는 사람들, 또 그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사는 사람들, 카지노로 인생 몰락을 경험한 사람들, 그렇게 몰락한 인생들을 보며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도 소박하고 무심하게 욕심 없이 사는 사람들.


이 산속 사람들도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아무 곳으로나 여행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하겠지만, 내 마음에 떠오르는 연민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북탄광 사태 이후 무려 사십여 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그 옛 사건을 기억하는 나 같은 사람이나 이런 연민을 느끼는 것이라고, 나는 나의 시대착오적인 관념을 애써 탓하기로 했다. 아마도 이곳 산천은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의구하지만, 어쩌면 옛사람들은 이미 거의 다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났다.


내가 카지노에 중독된 사람들을 가련하게 보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착각 또는 오만일지 모른다. 어쩌다 오든 자주 오든, 카지노 게임을 하러 오는 그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가련하게 생각하지 않으려니와, 또한 이곳에서 그들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도 그렇게 카지노로 먹고살 방편이 마련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런 정도의 방탕과 여유와 오락을 탓하거나 가련하게 바라볼 만큼 도덕적이고 신성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된단 말인가. 그렇게 도덕적이지도 않고 특별한 지혜와 능력도 없는 나는 어쩌자고 카지노를 둘러싼 부정적 관념들을 떨치지 못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박에 관한 수많은 부정적인 에피소드와 불행한 각종 이야기들을 듣고 보면서 나는 또 그에 관한 공포와 두려움을 없앨 수는 없었다.


2.


따뜻한 설렁탕을 먹은 후 전당사들이 즐비한 거리를 떠나면서 나는 다음 행선지가 어디인지 물었다. 혁국은 미리 계획해 둔 대로 강원도 종합박물관으로 간다고 했다.


강원도 종합박물관 역시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 박물관도 있었나.

종합 백화점이나 만물상도 아니고.


대부분의 박물관은 특정 주제를 가지고 유물을 전시한다. 그렇게 해도 유물이 너무 많아서 한꺼번에 전시할 수 없으니 중요한 것들을 뽑아서 ‘돌림 전시’할 때가 많다. 유물을 때에 따라 필요에 따라 바꿔 가면서 전시한다는 것이다. 유명 박물관에서 일반인이 볼 수 있는 유물이란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박물관 창고에 훨씬 더 많은 유물을 보관할 수밖에 없다. 더러는 다른 박물관으로 순회 전시를 보내기도 할 것이다.


도대체 세상에 유물이 얼마나 많은데 종합 박물관일까.


지도에서 보니, 사북 읍내에서 강원종합박물관까지는 52킬로미터 거리에 불과했지만, 산골 도로를 가는 것이라 거의 한 시간이나 걸린다. 38번 도로를 달리면서 사북에서 고한읍과 태백시를 지나고 도계까지 통과하면서 우리는 태백산맥 한가운데를 달려야 한다.


3.


큰 산맥 속에서 높은 산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다니는 것은 나에겐 묘한 느낌을 준다. 산이 많은 한국에서 이런 것은 당연해 보이겠지만 오랫동안 산이 거의 없는 평지에서 살아온 나는 도로 옆으로 산들이 즐비한 게 익숙해 보이지 않는다.


미 동부 해안지역에서 산들 사이에 난 좁은 도로를 달릴 일은 거의 없다. 동북부 지방에 있는 산악지대 대공원이나 미 대륙 동부를 세로로 가로지르는 애팔래치아 산맥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은.


뉴욕시로 한정해서 말한다면 맨해튼에서 한 시간 내 거리로는 높은 산을 구경할 수 없다. 이곳에도 등산을 즐기는 산악회가 있는데, 그들이 높은 산으로 가려면 아무리 적어도 한 시간 이상 차를 몰고 나가야 한다.


오래전에 미국 동북부에 있는 버몬트 주와 뉴햄프셔 주를 수차례 여행한 적이 있다. 거기에 화이트마운틴 국립공원이 있다. 또한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마운트 워싱턴도 있다. 그 산의 높이는 1920미터.


마운트 워싱턴 정상까지 자동차를 타고 올라간 일이 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는 정상까지 자동차로 올라가면 초록색 긴 스티커를 구매해서 자동차 뒤에 붙일 수 있었다. 스티커에 적힌 문구는 ‘이 차는 마운트 워싱턴 정상에 올랐다’ 정도로 기억한다. 그 당시만 해도 아무나 그 산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서 나도 한동안 그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는데, 나중에는 지저분해 보이고 창피한 듯해서 떼어냈다. 그랬더니 희뿌연 자국이 오래 남았다.


아무튼 그 높은 곳까지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산비탈을 따라 빙글빙글 도로를 만들어 놓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설악산 대청봉까지 도로를 만들어서 자동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 비슷할까.) 높은 곳이라 그런지 그 산비탈 도로 가에 나무들이 거의 없어서 무서움이 더했다.


자동차를 타고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은 아주 스릴이 있는 일이다. 한쪽은 가파른 산비탈이고 다른 쪽은 엄청난 낭떠러지다. 그럴 때는 누군가 늘 이런 말을 한다.


“여기서 굴러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리겠다.”


아무렴 뼈도 못 추리게 될까 생각했지만 하필 그때 운전하고 있었던 나는 공포를 느끼면서 겨우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그 산 정상 부근에는 꽤 넓은 평지가 있었다. 더욱 특이한 것은 6월 초인데도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며칠 전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


새파란 하늘과 눈부산 태양 아래 산 정상의 눈이 믿기 어려울 만큼 하얗게 빛났다. “이 하얀 눈 봐. 이건 분명히 먹어도 되는 눈이야”라고 한 화사 동료가 말하면서, 손으로 눈을 떠서 먹었다. 다른 동료도 그렇게 해보더니, "시원하네, 이 눈으로 라면 끓여 먹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곧 버너에 불을 붙이고 냄비에 흰 눈을 잔뜩 담아서 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냄비 바닥에만 물이 조금 고일뿐 한참을 끓여도 라면을 끓일 수 있을 만큼 눈이 녹지는 않았다. 그렇게 해서는 눈이 잘 녹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고지대라 압력이 달라져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냄비에 물을 붓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로써 높은 산에서 눈을 녹여서 라면이나 찌개 등을 끓이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애팔래치아 산맥은 북미 대륙 동부를 세로로 가로지른다. 총길이는 2400 킬로미터. 북쪽으로는 캐나다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까지, 남쪽으로는 앨라배마 주까지 뻗어 있다. 산맥의 평균 높이는 1천 미터라고 한다.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은 생각보다 높이가 낮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미첼 산인데 2,037미터라고 한다. 이 산은 미시시피강 동쪽에서는 가장 높다.


애팔래치아 산맥의 일부 지역이지만 산등성이를 따라 드라이브할 수 있는 도로가 있다. 이 또한 오래전 일이지만, 워싱턴 DC로 여행하는 길에 그곳으로 자동차를 몰고 갔었다. 그야말로 양쪽으로 산들이 내려다 보이는 길이 한동안 이어졌다. 사슴이 무척 많은 지역이었다. 도로에 사슴이 너무 많이 출현해서 어두울 때는 매우 위험한 길이었다.


애팔래치아 산맥 정상을 가로지르는 그 도로에서 어느덧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붉은 석양빛이 수많은 산들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드넓게 펼쳐진 대지가 붉은 기운으로 물드는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세상은 너무나 넓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은 많지만 그곳을 모두 가볼 수는 없다. 세상의 끝까지 찾아가서 모두 보고 싶어 하는 모험심 강한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이제 그렇지 않다. 이제는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세상을 돌아다니는 게 맞는 듯하다.


4.


도계읍은 태백시 옆에 있지만 행정구역상 삼척시에 속한다. 황지와 장성이 태백시로 편입되었지만 도계는 삼척시에 남은 결과다. 그러나 거리를 보면 도계는 태백시에 훨씬 가깝다. 바닷가에 있는 삼척과는 기후마저 매우 다르다. 산골 깊은 내륙에 있는 곳이니 오죽할까.


탄광산업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도계의 인구는 한때 6만을 구가했다. 그때는 황지 등 인근 탄광촌들이 대체로 잘 나가던 시절이어서 도계에 있는 개들까지 입에 만원 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좋은 때는 어느덧 지나가고, 1986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도시가스 사업이 장려되고 탄광으로 부유했던 지역은 급속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그 거센 몰락의 물결에 사북과 태백과 황지와 도계 모두 휩쓸렸다.


지난 6월 말에는 마침내 국내 최대 탄광인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 문을 닫았다.

장성광업소는 1939년부터 88년간 운영되면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석탄 생산지가 되었다. 1989년에는 228만 톤을 생산해 연간 생산량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장성업소가 폐광하면서 태백시의 지역 상권이 무너지고 지역인구 소멸도 가속화 위험에 처했다.


황지와 태백과 사북과 도계를 지나가면서 나는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 지역의 기울어가는 산업에 아련한 감정이 들었다.


한때는 번성했지만 이제 기울고 있노라.


그런 것을 보면, 어디서든 그저 열심히 산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사회적 역사적 격랑은 개인적 능력을 넘어서는 운명으로 작용한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대사처럼,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우연으로 나타나고 그것을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종종 그 운명은 한 개인의 노력이나 우연을 넘어서서 사회적 역사적 격랑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태백을 거쳐 도계로 가다 보니, 그야말로 태백산맥 한가운데를 이어 이어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좁은 나라에 깊은 산골이 많기도 하다.


도로 옆에는 그 산맥 안에서 조용히 사는 농가들이 이따금 보였다.

그렇게 외딴곳에 있는 농가들을 보니, 그들은 또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상업이나 공업 시설도 발전하지 않은 곳에서 그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먹으면서 살고 있을까. 좁은 나라에서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살고,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마련이겠지만, 이곳을 처음 지나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떠오르는 궁금증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그들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공기도 안 좋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대도시, 벌집처럼 똑같이 생긴 작은 상자 안에서 바퀴벌레들처럼 우글우글 모여서 사는 도시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9IWxocGm21U

Bread - Aub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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