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5. 아, 이러한 박물관이 있다니... 강원종합박물관

2024년 가을 중부지방 여행 이야기

by memory 최호인

1.


우리는 고한에서 태백을 지나 왼쪽으로 급회전하여 도계로 향했다.


대한석탄공사 삼척 도계광업소는 올여름 (2025년 6월) 폐광을 앞두고 있다. 이를 두고 도계읍 주민들은 지역을 되살릴 대책도 없이 광업소 문을 닫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폐광’이란 곧 생존권 문제이다. 도계 광업소는 지난 90년간 석탄을 생산해 왔다. 이곳 주민들은 대한석탄공사의 폐광 계획이 도계읍을 몰락시키고 한국 광물 산업의 종말을 가속화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와 자연 에너지와 양자컴퓨터 등 21세기의 신기술을 생각할 때 석탄과 광산 같은 단어들은 매우 고색창연하게 들리고 우리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그래서 도계 주민들이 이렇게 생존권을 내세워 반대한다 해도, 그들의 미래 전망은 결코 밝지 않아 보인다. 그것이 또한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삼척시 도계읍을 지나 강원종합박물관으로 가면 이제 산악지대는 거의 다 지난 셈이다. 강원종합박물관은 삼척시 신기면에 있다. 거기서부터 삼척 시내나 동해시까지는 바다로 가는 길이라 높은 산이 없다.


강원종합박물관은 ‘강원’이라는 글자가 들어가서 언뜻 상상되는 것처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곳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이 박물관은 “도를 아십니까?”로 유명했던 대순진리회가 운영하는 박물관이다. 이 사실부터 알고 나서 박물관에 들어가려고 하니,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들어가게 될 수도 있지만, 나는 최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고 입장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박물관을 보았지만, 이렇게 종교기관이 유물과 자료를 모으고 거대한 박물관을 지어서 전시하는 곳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굳이 따진다면 바티칸시티에 있는 세인트폴 대성당을 여기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건 아닌 듯하다. 도저히 그렇게 비교할 수는 없다. 종교의 대소를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세인트폴 대성당은 그냥 성당이지 박물관이 아니다. 기독교 성당이라 기독교 유물이 많기는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박물관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또 굳이 다른 비교 대상을 찾는다면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대순진리회의 강원종합박물관과는 너무나 다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박물관이 아니라, 영국국교회의 대성당이며 영국 왕족과 위인들의 공동묘지이기도 하다.


도대체 강원종합박물관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니 말 그대로 ‘종합 박물관’이라고 할 수밖에.


20241005_103802.jpg


2.


강원종합박물관은 정말로 예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전시물들로 가득하다. 대순진리회 성주회라는 곳에서 도대체 왜 이런 박물관을 차렸는지 나는 도저히 헤아릴 재간이 없다.


하여간 이 신비로운 박물관은 2002년 5월에 착공하여 2004년 12월에 개관하였다. 지붕은 거대한 기와 형식으로 만들어졌지만, 내부는 동서양 건축양식을 종합하여 건립했다.


편견을 버리고 내부로 들어가서 돌아보면, 입이 벌어질 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유물과 자료가 ‘널려’ 있다. 품위 있게 잘 전시됐다고 보기는 어렵고 종합백화점처럼 잔뜩 쌓아놓았다고 표현해야 할 듯하다.


대순진리회는 한때 “도를 아십니까”로 유명했었다.

그러나 정작 교주였던 박한경은 생전에 ‘길거리 포교 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1996년 그가 사망한 후에 대순진리회는 여러 분열을 겪었고, 그 분파들이 경쟁적으로 길거리 포교를 일상화했던 것이다.


2013년 대순진리회를 중심으로 분열 사태는 일단락되었고, 종단 대순진리회는 공식적으로 재차 길거리 포교를 금지했다. 그러나 대진성주회, 용화대미륵선도, 대미륵봉심회, 구천미륵회 등 대순진리회에서 파생된 여러 군소 종파들은 여전히 길거리 포교를 하고 있다.


하여간 그 대순진리회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어떤 편견도 배제하고 싶은 나는 한국에서 비교적 크지 않은 종교기관이 이렇게 많은 유물과 자료를 모은 것도, 이런 방식으로 전시하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박물관에는 입구에서부터 여러 직원들이 안내를 하고 있었다. 의외로 그들의 표정은 굳어 보였다. 그날따라 토요일이라서 사람들이 많이 와서 그럴 수도 있지만, 종교기관에서 일하는 인력이므로 또는 다른 박물관들처럼, 조금 더 밝은 얼굴로 환하게 입장객을 맞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박물관은 1층에 자연사 전시실, 2층에 도자기 전시실, 3층에 금속공예 전시실이 있다. 또한, 본관 1층에는 실내 동굴 및 종유석 전시장이, 있고, 별관 1층에도 세계민속전시실과 목공예전시실이 있다. 나아가 박물관 야외에도 폭포와 석공예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다.


20241005_114828.jpg


나는 이 박물관에서 1층 자연사 전시실과 2층 도자기 전시실에 볼거리가 가장 많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1층 전시실에서 내가 놀란 것은 그런 자료들을 늘어놓은 자연사 박물관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맨해튼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은 규모에서나 내용에서나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강원종합박물관의 자연사 전시실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런데도 강원종합박물관의 자연사 전시실에는 깜짝 놀랄 만한 자료가 많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이토록 많은 광물 전시물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이곳에는 정말 엄청나게 많은 화석들과 광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 자연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단지, 땅에 저토록 많은 희귀한 광물이 묻혀 있구나 하는 것, 그리고 도대체 대순진리회 사람들은 또는 그들이 고용한 사람들은 어떻게 이 많은 희귀 광물을 모을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아름답기도 하고 신기해 보이기도 하는 수많은 광물 표본들은 너무나 가깝게 붙은 채 전시되고 있어서 안타까울 정도였다. 광물뿐 아니라 이 박물관에 있는 모든 것이 그렇다. 자료들의 수준은 둘째 치고, 모두 너무나 촘촘하게 붙어서 전시되어 있다. 그것은 어떤 느낌이냐 하면, 진열대와 벽에 상품이 너무 많이 전시된 매우 큰 가게, 또는 벽에 촘촘히 그림들이 붙어 있는 미술관과 같다. 양옆에, 위아래에 표본들이 모여 있어서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게다가 광물 표본의 크기가 대단히 큰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눈길을 끄는 광물들의 표본들이 대단히 큰 크기로 잘려서 우리 눈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런 광물이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 그 자연 역사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설명은 전혀 없다. 나는 박물관 측이 이 광물들을 어떻게 모았는지 궁금했지만 알 수는 없었다. 그곳에 전시된 수많은 광물들이나 도자기들은 분명히 해외에서 들여온 듯한데 그 모든 것을 돈을 주고 구매했다는 것인지, 그 규모는 얼마나 될지, 또한 그 나라들에서는 그런 것들을 국외로 그렇게 자유롭게 방출할 수 있었는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굳이 차이를 밝혀서 말한다면, 광물 박물관으로서의 구실은 전혀 못하고 광물 전시실로서의 기능만 가지고 있다.


2층 도자기 전시실 또한 대단히 놀랄 만한 전시실이다. 고대 도자기들부터 현대 도자기들까지 포함한다. 한중일을 포함하여 유럽의 도자기들도 있다. 심지어 구석기 사냥도구들까지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그렇다 치고 일본과 중국의 근대 도자기들은 어떻게 들여왔는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설마 가품을 갖다 놓았다고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그 모든 것이 진품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도자기들은 제작시기만 표시된 채 그저 촘촘히 붙어서 전시되고 있었다.


3층 금속공예실에는 각종 금속생활공예품, 불교 공예품들이 많았는데, 특히 옥으로 만든 공예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면 어느 동굴에서 잘라온 것인지 각종 종유석, 석순, 유석, 석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 것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좋지만, 도대체 저런 것들을 동굴에서 저렇게 잘라서 가지고 와도 되는지, 그것은 누구 소유인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나는 이 박물관이 그런 것들을 불법적으로 가지고 와서 전시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이라서 놀라서 하는 말이다.)


인공 동굴을 만들어서 직접 자연적으로 동굴에 간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소도 있는데, 내 눈에는 매우 가짜 같고 낭비스러워 보였다. 디즈니월드에서 볼 수 있는 다채로운 놀이를 위해 차린 전시를 모방했다고 해야 하나. 차라리 그 공간에다 지나치게 밀집된 전시물들을 여유 있게 나눠서 전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별관 1층에도 세계민속전시실과 목공예전시실이 있었다. 각국의 목공예 조각들을 모두 갖다 놔서 그야말로 중구난방 느낌이 들었다. 이밖에도 석불과 공룡전시실도 있었다. 그것 또한 매우 쓸데없는 전시실이라고 생각되었다.


실내 전시실을 모두 돌고 나오면 야외에도 정체를 알기 어려운 설치물들이 있다. 종유석처럼 생긴 구조물과 폭포도 있고 물이 흐르도록 했으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들도 있고 돌조각이나 돌 공예품들과 야외 종유석들도 마련했다. 나는 그것들이 통합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주 작은 워터파크도 아니고, 그랜드 캐년의 극소 모형도 아닌 희한한 설치였다.


3.


하여간 이 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에서 들여온 유물 2만여 점이 소장되거나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말해서 아쉬운 점이 많은 박물관이다. 너무 많고 잡다한 유물과 자료들이 너무 촘촘하게 밀집되어 있는 것도 아쉽고, 주제를 이해하기도 어려운 전시 시설들도 낭비적이고 아쉬운 대목이다.


그 모든 유물과 자료를 모으려고 기획하고 실천한 것, 그리고 그런 사업을 종교기관이 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해서 대순진리회가 신앙대상으로 하는 상제들과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20241005_115926.jpg


강원종합박물관 사이트에는 이 박물관의 설립 목적이 제시되어 있다.


“강원종합박물관은 대진성주회의 3대 중요사업인 구호자선사업, 사회복지사업 및 교육사업 중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대진교육재단을 설립하였고, 대진교육재단은 “평생문화교육의 배움터”로서 강원종합박물관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말해서, ‘평생문화교육의 배움터’라는 말이다.


박물관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앞에는 아주 맑은 천이 흐르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물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았다. 나로서는 가장 희한한 박물관을 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대순진리회는 대진대학교와 같은 대학도 설립하는 등 “해원상생의 원리에 입각한” 인재 양성을 추구하고 있는 만큼 이런 박물관을 마련하는 취지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개신교파와 불교 종단에서 자기들의 종교이념에 맞게 대학들을 설립하는 등 다양한 사립대학들이 있는 마당에 이런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비난하거나 차별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아쉽고 불안한 마음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성과 과학의 전당이라는 대학들을 종교기관들이 나서서 건립하고 그 이념에 맞는 인재들을 육성하는 것은 나로서는 어지러워 보이는 현상이다. 하도 탐욕스럽고 부정한 짓을 많이 하는 사학재단들에 관한 여러 뉴스들을 보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한국의 사학재단에 관한 불편한 인상이 매우 진하게 남아 있다. 대진대학교는 부디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eF9sbVGOEFs

Mozart: Laudate Dominum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