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중부지방 여행 이야기
1.
이렇게 해서 우리는 태백산맥 안에서의 여행을 마쳤다.
자세히 보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또 재관이 올라가 보자고 했던 태백산 정상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마침내 태백산맥 깊은 산골을 떠나 동해 바다로 가기로 했다.
강원종합박물관에서 나온 우리는 즉시 동해시로 향했다.
동해시로 가는 길 오른쪽에 삼척시가 있는데 그곳은 우리의 행선지에 포함되지 않았다. 2018년에 그곳을 방문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았지만 갈 수 없는 안타까움을 삼킨 채 나는 그때의 모습을 마음속으로만 그렸다.
어느새 동해 바다가 가까워지고 있었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코 끝으로 바다 냄새가 풍겨 오는 듯했다. 짙푸른 바다와 둥그런 수평선이 눈에 그려지기도 했다. 수평선은 세상에서 내가 보았던 가장 긴 선이다.
드디어 동해시 근처에 도착했을 때 나는 동해시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말로만 들었던 도시였다. 그러나 우리는 동해시로 들어가지 않고 곧바로 묵호 등대로 갔다. 아쉬운 마음이 조금 들었지만, 어차피 크지 않은 도시라서 높은 곳에 있는 묵호등대로 가면 모두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동차가 점차 묵호등대 가까이 갔을 때 갑자기 혁국이 말했다.
“오른쪽 산 위에 등대가 있어. 자동차는 산을 돌아서 올라가야 하니까 지름길로 걸어가고 싶은 사람은 여기서 내려서 가도 돼.”
“여기서부터 걸어 올라간다고?”
“그래. 여기서 올라가면 바로 등대야.”
“그래. 그럼 여기서 내리지.”
재관이 묻고 혁국이 대답했다.
“같이 내릴 사람 있나? 걸어서 올라가고 싶은 사람.
“나도 걸어갈게.”
이번에는 재관이 뒤에 앉은 상국과 나를 향해 물었고 나만 대답했다.
“나는 아니야. 그냥 차 타고 갈래. 나중에 봐.”
상국은 그렇게 차를 타고 가겠다고 대답했다.
탐구심이 강하고 용감한 재관이 걸어간다고 했으므로 나는 기꺼이 따라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구문소에서도 재관은 굳이 구문소 뒤까지 보겠다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었다. 그때도 나는 그를 따라서 걸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를 따라 걸었다. 동해시라서 구문소를 걷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2.
그리하여 혁국과 상국은 그대로 차를 타고 갔고, 재관과 나는 언덕을 걸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약간 가파르기는 하지만, 산길은 아니었다.
그곳에는 ‘논골담길’이라는 유명한 언덕길이 있다. 비탈길이 꼬불꼬불 이어졌는데, 예쁘게 꾸민 난간과 계단들이 많았다. 70년대 대방동 해군본부 아래쪽 언덕에서 신길동으로 넘어가는 비탈에 있던 골목길이 생각나는 듯도 했다. 또는 마치 부산에 있는 감천문화마을 언덕을 연상케 했다. 그 언덕들에도 작은 골목길 사이로 수많은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다 힘들기도 해서 우리는 주변을 돌아볼 겸 바람도 쐴 겸 잠시 쉬곤 했다. 거기서 바라보면 산 아래 풍경이 넓게 펼쳐졌고 저 멀리 동해시까지 보였다.
논골담길은 그냥 비탈길 좁은 골목이 아니다.
거기에는 옛 묵호항을 담은 역사의 향기가 깃들어 있다.
동해시는 2010년 동해문화원이 주관한 ‘어르신생활문화전승사업 묵호등대담화마을’의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통해 논골담길을 아름답게 뒤바꿔 놓았다. 도로를 포장하고 예술가들을 동원하여 골목마다 벽화를 그리고 골목마다 각종 소품을 장식함으로써 묵호의 삶과 예술이 어우러진 마을이 되도록 꾸며놓았다.
논골담길은 등대오름길, 논골1길, 논골2길, 논골3길 등 4개의 골목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하는데, 부지런히 오르다 보니 나는 어느 길로 올라가는지도 모르면서 걸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찍은 사진을 보니 ‘논골2길’이라는 표지가 길바닥에 쓰여 있다.
그렇게 재관과 내가 가파른 오르막길을 한참 가다 보니 갑자기 골목길을 벗어나 산등성이를 달리는 차도가 등장했다. 어느새 논골담길을 통과한 것이다.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묵호등대가 있다. 우리는 자동차로 오는 혁국과 상국보다 먼저 묵호등대에 도착했다.
3.
동해시 동문산에 있는 묵호등대는 유인등대이며 1963년 6월 8일에 처음으로 점등됐다. 백색 원형 등탑의 높이는 26미터. 내부는 직경 3.5m의 3층 구조이며 나선형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이 계단을 따라서 뱅글뱅글 돌면서 올라가다 보면 벽 중간에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동그란 창문들이 있다.
그 창문들은 마치 거대한 크루즈 또는 잠수함에 있는 둥그런 창문을 연상시킨다. 그러니까 이 등대를 옆으로 눕힌다고 가정하면 거대한 잠수함이 되는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 잠수함의 창문에서 나는 동해 바다와 동해시를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등대 상층부 등롱 아래에 외부로 나가는 전망대를 만들어서 등대를 찾아오는 관람객들이 전망대에서 바다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투명한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거기서 사방을 멀리까지 모두 전망할 수 있다.
사실 등대 자체는 볼 게 별로 없다.
바닷가에 있는 높은 굴뚝과 같다고 할까.
그러나 등대라는 단어 만으로도 묘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굴뚝처럼 연기를 내뿜는 게 아니라 불빛을 내뿜으니까. 다만 굴뚝 연기는 사용가치가 소모된 찌꺼기지만 등대는 거기서부터 사용가치가 발현된다.
등대 안에서 바깥을 보는 것과 등대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등대 안에서 바깥을 보면 내가 바다로 빛은 내뿜는 등과 같은 시점을 갖는 효과를 준다. 내 눈의 빛이 미치는 저곳까지 또는 더 멀리까지 등대는 불빛을 보낸다.
등대는 단지 밤에 불을 밝힘으로써 어두운 바다를 다니는 배에게 여기가 육지다, 또는 섬이다, 또는, 암초가 있다고 알려준다. 마치 길을 잃고 헤매는 산골에서 멀리 민가의 빛이 보이는 것처럼 어쩌면 등대는 넓은 바다를 헤매고 다니는 배에게 생명의 빛이 되기도 한다.
등대만 보면 사람들은 가능하다면 거기까지 가보고 싶어 한다. 그러니 등대는 낮에는 관광시설이며 그 지역의 유명한 볼거리가 된다. 특히 묵호등대처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매우 높은 등대는 더욱 그렇다.
유인등대를 생각하면 아련한 외로움도 떠오른다.
‘등대지기’라는 유명한 노래도 있지 않은가.
(양희은, https://www.youtube.com/watch?v=zqUtxilTl7U )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한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유인등대에서 어두운 바다에 불을 밝히기 위해서는 누군가 밤새 등대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등대에 여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등대가 멀리 있어서 오가는 것이 매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등대지기를 생각하면 고독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날 묵호등대는 너무나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우리가 갔던 날과 같은 연휴 기간에는 특히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강릉에서 묵호등대까지는 자동차로 40분 정도면 올 수 있다. 그래서 서울에서 동해바다로 놀러 오는 사람은 강릉으로 왔다가 정동진을 거쳐 묵호와 동해시를 보고 어쩌면 삼척까지 여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거꾸로 묵호에서 강릉으로 올라갈 계획이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lzFeH-ITpZA
양희은 - 한계령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