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중부지방 여행 이야기
1.
2025년 1월부터 동해중부선이 개통됐다.
동해중부선은 강원도 삼척과 경북 포항을 잇는 철도다. 이 철도가 개통됨으로써 동해안 철도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됐다. 이로써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인구 1400만이 일일생활권으로 묶이는 동시에 ‘동해안 초광역 경제권’이 탄생했다.
동해중부선은 강릉-동해-삼척–울진-영덕-포항-신경주-태화강(울산)-부전(부산)을 잇는 363.8km를 운행한다. 동해바다를 자주 보면서 달리는 철도라, 나중에 한국에 가면 반드시 한 번 타고 싶은 철도다. 부산으로 갔다가 강릉까지 올라오거나, 거꾸로 강릉으로 갔다가 부산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여행을 계획할 만하다.
동해중부선이 생겨서 그런지, 2025년 1월 강릉이 강원도 최대 관광도시로 급상승했다. 1월 한 달간 강릉을 방문한 관광객 수는 303만 명을 돌파했다. 강원도에서는 2위 원주(273만 명), 3위 춘천 (246만 명), 4위 속초(220만 명)를 앞서는 수치다. 이는 부산에서 강릉을 잇는 동해중부선이 생긴 후 첫 달의 효과일 수도 있으니 조금 더 두고 볼 일이지만, 강릉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확실하다.
친구들아, 자동차 가지고 가지 말고 버스와 기차로 여행해 보자.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강릉이나 속초까지 가서 둘러보고, 거기서 동해중부선을 타고 내려가면서 들르고 싶은 도시마다 내려서 대중교통으로 다니거나 걸어 다니는 여행. 결국 부산에 도착하면 그곳은 서울처럼 지하철과 버스 교통이 잘 구비되어 있어서 다니기에 더욱 좋은 여행. 부산은 걸어서 여행할 곳이 정말 많아요.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면, 또는 돌아오다가 경주나 대구를 들른다면 어느새 대한민국의 절반을 직삼각형처럼 휘감아 돌아오는 것 아닌가.
2.
묵호등대에서 강릉으로 갈 때 혁국은 탁월한 안목으로 해안도로 주행을 선택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줄곧 오른쪽으로 바다를 보면서 달렸다. 마침 뒷좌석에서 바다 쪽으로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창문을 통해 넓고 푸른 바다를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묵호에서 강릉으로 가기 전에 까막바위가 있어서 들렀다.
묵호등대 아래 바닷가로 내려가면 지붕이 가리비 모양인 가리비화장실이 있고 그 앞에 까막바위가 있다. 해안도로 바로 아래쪽 바닷가에 있는 거대한 직육면체 모양의 거대한 바위다.
바위처럼 생긴 해안도로 표지판에 이렇게 적혀 있다.
‘서울 남대문의 '정동방'은 이곳 까막바위입니다.’
남대문에서 정확히 동쪽으로 오면 이 까막바위에 이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까막바위에서 서쪽을 보면 남대문에 이른다는 말이라, 나는 바위 앞에 서서 서쪽을 바라보았다. 물론 거기서 남대문이 보일 리가 없지만 하늘 저 멀리 남대문이 둥실 떠올랐다.
까막바위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면 커다란 문어상 조각도 있다. 그 조각 아래에는 문어상에 얽힌 설화도 있다. 이 설화는 까막바위 설화와 맞물리는데 굳이 널리 알릴 만큼 의미가 있는 내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내막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용이 매우 황당하다. 이 동네와 특별히 관련이 있어 보이는 내용도 아니고, 억지로 만들어낸 설화인 듯하다.
다시 자동차를 타고 가다 보니, 아기자기하게 보이는 빨간 등대와 노란 등대가 나란히 바다 중간에 보이기도 했다. 등대라고 해야 크기가 너무 작아서, 어딘가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왜 그렇게 만들어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연파랑 하늘 아래 더 짙은 녹파랑 바다가 펼쳐져 있고, 그 둘 사이에는 아주 긴 직선이 그어져 있었다. 자동차가 달리는 동안 나는 하염없이 그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3.
강릉으로 가면서 배가 고파졌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논의했다.
“강릉에 순두부가 유명하잖아.”
누가 말했나. 내가 말했나 헷갈린다. 강릉에서 유명한 음식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채 나는 맛도 좋고 먹기에도 부드러운 초당순두부를 떠올렸다.
초당순두부는 간수 대신 바닷물을 이용하여 두부를 만든 것이다. 초당두부는 모두부와 순두부로 구분하는데, 틀에 넣어서 물기를 빼고 만든 두부는 모두부, 엉긴 두부를 그대로 빼면 순두부다. 강릉시 초당동에는 순두부를 파는 식당이 모여서 초당순두부마을이 형성됐다.
초당순두부는 씹을 것도 없고 심심한 맛만 내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초당순두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또 그런 이유로 그 음식을 즐긴다 강하고 매운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을 위해서 초당순두부 식당에서는 순두부짬뽕, 얼큰순두부, 해물순두부 등도 메뉴에 포함시키고 있다. 초당순두부에다 매운맛만 섞으면 되는 것이니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참고로, 강릉에는 초당순두부 외에도 막국수와 송어회, 감자옹심이 닭강정, 오징어순대와 곤드레밥, 한우숯불구이와 오삼불고기 등도 유명하다. 이렇게 적다 보니 먹고 싶어서 입에 침이 돈다.
친구들은 별말 없이 순두부로 점심을 먹는 것에 동의했고, 혁국은 곧장 초당순두부 식당 거리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라서 그런지 식당은 한산한 편이었다. 그러나 맛집으로 유명한 초당순두부 식당은 주차장이 만원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우리는 바로 그 옆에 있는 순두부 식당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맛이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바로 옆집은 이리도 한산한가. 옆에 있는 식당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럴 때 결코 고민하지 않는다. 맛집 앞 긴 줄에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사실 순두부는 우리가 모두 아는 그 맛이고, 반찬은 그저 그런 편이다.
하지만 매운맛과 부드러운 두부를 좋아하는 나는 짬뽕순두부를 맛있게 먹었다.
4.
식사를 마친 후에 우리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안목해변으로 갔다.
안목해변은 카페거리로 매우 유명한 곳이다.
서울에 있는 젊은이들도 강릉으로 가기만 하면 안목해변을 찾아간다. 우리가 갔던 그때에도 유난히 짧은 치마를 입고 걸어 다니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혁국은 이미 와봤다는 듯이 아주 능숙하게 카페거리 입구에 있는 한 카페를 찾더니,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마당 안쪽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마치 전문 영업 기사처럼 알아서 주차를 이렇게 잘해주니 우리 여행 회원들은 마음이 매우 편하다.
그렇게 주차해 놓고 우리는 카페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즉각 모래사장이 가득한 해변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서 바닷물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날이 약간 쌀쌀해졌고 바람까지 불었기 때문에 모래사장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여름도 아니고 어린아이도 아니라서 굳이 물에 손이나 발을 담글 형편은 아니었다.
‘안목커피거리’라고 적힌 커피 모양의 장식물에 앉아서 사진을 찍는 연인들이 많다. 사진 찍는 포즈만 취하면 사람들은 머리를 약간 기울이면서 손을 들어 V자 모양을 하거나 두 손으로 작거나 큰 하트 모양을 만든다. 그럴 때는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모두 즐거운 표정이다. 그렇게 사진 찍는 젊은이들을 괜스레 흐뭇하게 바라보는 내가 보인다.
예전에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그저 "김치"라고 말하고 이빨만 드러낸 채 가만히 있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꼭 손을 들어서 뭔가 표시하려고 한다. 한국 사람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내가 알기로는 미국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때때로 익살스러운 얼굴 표정을 짓기는 하지만 손을 들어 V자 표시를 하거나 하트 표시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안목커피거리 안쪽까지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 거리는 꽤 길어 보였는데, 정말로 늘어선 건물마다 카페가 보였다.
안목커피거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 거리에는 1980~90년대에 커피자판기가 많았다고 한다. 해변 풍경을 즐길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싶지만, 아직 카페가 없었던 이 거리에서 젊은이들은 자판기 커피를 마셨던 모양이다. 자판기 커피가 유행하면서 당시 이 거리에 자판기가 많을 때는 50대도 넘게 설치되었다고 한다.
이 거리에서 커피가 잘 팔린다는 소문이 크게 나면서, 1998년에 처음으로 원두커피전문점이 입점하더니 이내 거리 전체에 커피자판기 대신 카페가 들어섰다. 한국에서 커피가 크게 유행하면서 강릉 안목해변 커피거리는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어느덧 해가 조금씩 저물어 햇빛은 옆으로 잔뜩 기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해변에서 잠시 걷다가 돌아와서 카페로 들어섰다. 안목커피거리에 왔으니까 커피를 마셔야 하지 않나, 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다. 실내에 앉지 말고, 바다를 보기 위해 실외에 앉자는 말에 모두 함께 카페 앞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야외에다 그늘이라서 그런지 바람이 점차 서늘하게 느껴졌다.
보통 때라면 블랙커피(핫아메리카노)를 마셨겠지만 조금 추워진 탓에 나는 카푸치노를 마셨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맛이 목구멍으로 흘러내리는 느낌이 좋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 단순함으로써 어떤 감동을 전해주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나는 왠지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아리아'가 듣고 싶어졌다.
"I have no idea to this day what those two Italian ladies were singing about. Truth is, I don’t want to know. Some things are better left unsaid. I’d like to think they were singing about something so beautiful, it can’t be expressed in words, and it makes your heart ache because of it. " (영화 '쇼생크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중. https://www.youtube.com/watch?v=OtTCwH2mQTA )
이로써 사흘간의 여행은 모두 끝났다.
드디어 서울로 돌아갈 차례다.
이럴 때는 언제나 서울로 돌아가는 도로가 얼마나 막힐까를 먼저 걱정하게 된다. 상국과 나는 용인에서 내리고, 재관과 혁국은 더 서쪽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갈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dnWz8KqOnJg
Scene from 1976 Jean-Pierre Ponnelle's movie version of "Le nozze di Figaro, ossia la folle giornata" (The Marriage of Figaro, or the Day of Madness), composed by Wolfgang Amadeus Mozart (17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