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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젊음의 거리

2024년 가을 여행 이야기

by memory 최호인

1.


홍대입구역은 젊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중 하나다.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가게와 이벤트가 매우 집중된 곳이기 때문이다. 비록 젊은이가 아니라 해도 나는 거기에서 아마도 매일 경의선 숲기를 걷고 버스킹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작년에 한 달간 머물렀던 강남역도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긴 하다. 그런데 홍대입구와는 성격상 차이가 있다. 강남역 부근은 사실 직장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수많은 회사들이 강남역 부근에 있어서 주중에는 온종일 직장인들이 북적거린다. 퇴근 후에 수많은 식당과 술집에는 직장인들이 모여든다.


강남역은 교통도 편하고 식당들도 많고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 또한 가장 집중된 곳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천이나 공원이 없다. 다시 말해서 걸어 다닐 만한 거리가 없다. 경의선 숲길처럼 즐겁고 쾌적하게 ‘걷기’를 즐길 장소가 없는 곳이다. 가까운 양재숲길에 가려고 해도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한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나는 홍대입구 부근에 나흘간 머물면서 버스킹 공연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지역을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버스킹이 어디에서 벌어지는지 찾지도 못했다. 홍대입구역에서 가장 유명한, 차들이 다니지 않는 잔다리로(?)를 따라 ‘상상마당’이라는 곳까지 걸어가 보았지만 예상보다 행인들도 버스킹 공연도 없었다. 관광객들을 위한 액세서리 가게들만 많다고 할까.


사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팬데믹 전의 이야기다. 그때는 강남역이나 홍대입구나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밤에 홍대입구에 가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버스킹 공연이 많았다. 강남역 12번 출구 앞에 있는 주점은 거리에 수많은 간이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손님을 받았다. 그야말로 흥청망청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모든 것은 달라졌다. 작년 가을에 나는 팬데믹 후에 처음으로 서울로 와서 내심 많이 놀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 썰렁해졌기 때문이다. 주말 밤이 되어도 홍대입구나 강남역이나 모두 조용했다.


부산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을 보았다. 팬데믹 전에 서면과 광안리와 광복동에 몰려들었던 인파는 팬데믹 후에 신기하게 사라졌다. 오로지 날씨가 매우 좋은 주말 밤에 광복동 족발 거리에만 사람들이 좀 모인다고 해야 할까.


서울에서는 요즘 성수동 카페거리가 가장 ‘핫’하다고 한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그곳에 딱 한 번 가보았다. 내가 갔던 날은 수요일 저녁이었는데도, 정말로 많은 청년들이 모여들다. 과거에 가죽공장과 창고들이 있었던 곳이 드라마틱하게 탈바꿈한 곳이라, ‘한국의 브루클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비유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브루클린은 뉴욕의 맨해튼 동남쪽에 있는 보로이다. 보로는 서울의 5개 구 정도를 합한 크기에 해당하는 커다란 행정구역이다. 그곳에서 맨해튼 가까운 지역은 과거에 창고와 공장 등이 많았으나 지금은 고급 상가와 식당이 들어서는 등 상당히 개발되었다. 성수동처럼 작은 동네를 브루클린에 비교하는 것은 규모를 생각하면 걸맞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성수동에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창고형 카페와 식당들이 들어서고,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집중되는 것에 비해 성수역의 출입구는 네 개에 불과하다. 원래 성수역을 지을 때는 지금처럼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성수역은 출퇴근 시간만 되면 인파가 몰려 출입 자체가 지극히 어렵게 되었고, 그것이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다. 혹시라도 그곳에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20241009_191022.jpg 성수동 카페 거리


2.


말이 나온 김에…


아직도 경의선 숲길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한번 가보기 권한다. 숲길이 다 그렇지, 뭐 별다르겠냐고 하면 딱히 반박할 말은 없다. 실제로 철도 옆에 숲길을 조성한 것에 불과하니까. 내가 말하는 것은 꼭 나무나 풀이 아니라 그곳의 분위기다.


물론 굳이 가보지 않아도 이미 그런 곳의 사정을 잘 알고, 청년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을 잘 이해하는 ‘나이 든’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또 꼭 젊은이들의 문화를 알 필요가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한국 청년들의 생활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제한된 시간에 재빨리 한국사회를 이해하려다 보니 이렇게 그들이 모이는 곳이라도 직접 보려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갈 때마다 일부러 그런 곳을 가보려고 한다. 직접 가서 보면, 뉴스로만 보고 말로만 듣는 것과는 다른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강남역 근처도 마찬가지다. 그런 곳을 훑어본다고 해서 요즘 청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사는가를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위기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무엇을 좋아하고 또는 싫어하고,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최전선을 이해하고 향후 한국의 미래를 예상하기 위한 기초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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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는 그렇게 화려하고 시끄럽고 겉멋만 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곳만 가지는 않는다. 한국에 올 때마다 일부러 노량진에도 가본다. 요즘은 공시족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학원가다. 대치동도 가보았는데, 그곳은 대학입시 학원생들이 몰려들고, 노량진은 공시족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노량진 컵밥거리에는 이십여 개의 작은 노상 매점들이 줄지어 서 있다. 거기에서 3500원짜리 컵밥을 사서 그들 옆에 앉아서 먹어보는 것은 흥미롭다. 주로 공시족들만 오나 했는데, 의외로 그 근처에 있는 고등학생들도 자주 찾아와서 오후 간식을 해결한다.


하루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사는 공시생에 관해 들어보았을지 모르겠다. 그들이 혼자 가서 먹는 역전우동 식당도 괜찮다. 다만 예전에는 식당에서 먹을 음식을 고르고 종업원에게 “밥 주세요.”라고 하루에 두세 마디는 했는데, 요즘은 식당 입구에 있는 기계에서 메뉴를 정하고 지불해서 그런 말을 할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러니 온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혼자 다니는 공시족도 있지 않을까.


20241015_171919.jpg 노량진 컵밥거리


탑골공원에서 종묘에 이르기까지 주로 노인들이 모이는 공간도 가보면 좋다. 종로 3가 피맛골 좁은 골목은 특히 견학할 만한 곳이다. 거기에는 저렴한 이발소와 식당이 즐비하다. 돈 없는 노인들이 모이면 무슨 대화를 하는지, 할 일 없는 노인들은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죽이는지, 그곳에 가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탑골공원과 인사동 종로거리와 공평도시유적 (4).jpg 종로 피맛골


대림동 중앙시장은 어떤가.


아마 영화에서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지저분하고 어수선하고 살벌할 것 같은 시장 풍경. 그러나 그것은 영화일 뿐이다. 영화 때문에 그곳의 명예가 실추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는 다른 곳과 별 차이가 없다. 나는 밝은 오후에 대림동중앙시장에 가서 비교적 재미있게 돌아보았다. 아직도 버젓이 개고기를 판다고 커다란 글씨로 광고하는 식당도 여러 곳이다. 그야말로 조선족이 즐겨 먹는 온갖 식품들이 많다.


중앙시장에는 한국어와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상인들이 많다. 부러운 능력이고, 한국의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알고 보면, 강남역 일대에서 일하는 수많은 식당 종업원들은 대림동으로 퇴근한다. 직장은 소비가 풍성한 강남이고 주거지는 생활비가 저렴한 대림동 일대다.


과도한 비교일 수 있지만, 거기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로 출퇴근하는 것이 연상된다. 지금처럼 가자에서 이스라엘 군이 학살 전쟁을 벌이기 전의 이야기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국경 아닌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로 출퇴근한다. 그들의 모습을 담은 뉴스와 다큐를 보고 하는 말이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모습이다.


중앙시장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생각하고 갔지만, 입이 짧은 내 비위로는 그곳에서 먹을거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거기서는 먹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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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바꿔서 나의 진정한 고향인 대방동으로 가서 먹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졸업한 대방초등학교로 갔다. 십여 년 전에도 가보았지만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그 학교의 모습도 그새 이미 좀 변했다. 학교 정문을 지키는 수위는 일부러 학교를 찾아온 내 마음을 이해하지만, 규정상 교내로 들어가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굳이 꼭 교내로 들어가 봐야 할 이유가 없는 나는 그 앞에서 사진만 찍고 나왔다.


그냥 떠날 수는 없어서 나는 대방초등학교 앞에서 식당을 찾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학교 앞인데도 분식집이 거의 없음을 알게 됐다. 초등학교 학생 숫자가 옛날처럼 많지 않은 탓도 있고, 대방동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곳이라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금세 학교 정문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식당을 찾아냈다. 식당 안에는 테이블이 겨우 세 개 있었는데, 주인 할머니 친구 두 사람이 앉아 있다가 금세 일어났다. 나는 거기에 앉아서 마침 하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떡볶이와 잔치국수를 먹었다.


가게에서 거리 쪽으로 열린 공간에서 나의 까마득한 후배들이 오백 원짜리 동전을 내밀면서 튀김이나 꼬치 하나씩 사 먹는 것을 바라보려니, 어딘가 아련하고 뭉클했다.


나도 예전에 저랬던 때가 있었는데…


아니, 예전 저 나이에 나는 돈이 없어서 ‘아이스께끼’나 알사탕 하나도 사 먹기 어려웠는데…

중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어쩌다가 짜장면이나 만두를 사 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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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초등학교 입구와 옆길




https://www.youtube.com/watch?v=e3TC_9XKfSQ&list=RDGMEMECQexVIf8HjAQgdybEHXKw&index=11 Agnetha Fältskog - Past, Present and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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