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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항과 숙소

2024년 가을 여행 이야기

by memory 최호인

1.


9월 말 어느 날 새벽.


비행기가 어느덧 인천공항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마음이 약간 설렜다. 좌석에 앉아서 내내 자던 승객들은 내릴 준비를 하느라 부산해졌다. 14시간이 넘는 활공 끝에 사람들은 거의 지쳐 있었고 빨리 땅을 밟고 싶어 했다.


뉴저지 주에 있는 뉴왁 공항에서 자정 무렵 비행기가 이륙한 후 비행기는 한국에 이를 때까지 내내 어둠 속을 뚫고 날았다. 이런 식으로 비행하는 항공기에 살게 된다면 우리는 영원히 밤에서만 살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아침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갈 때는 내내 밝은 낮이었다. 한밤중에 출발한 비행기는 한밤중에 도착하고, 한낮에 출발한 비행기는 한낮에 도착한다. 그것이 뉴욕과 서울의 항공 여객 관계이다.


승객들은 자정에 비행기를 탄 후 곧 잠이 들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그들은 그날 낮부터 짐을 가지고 먼 거리에 있는 공항까지 오느라고 긴장했을 것이고, 검색대를 통과하고 탑승 수속을 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며, 그러다가 어느새 자정이 넘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쳐 눈을 감고 자다가도 기내에서 제공하는 두 차례 식사가 나올 때마다 그들은 깨어나서 밥을 먹었고 그 후에는 곧 다시 잠이 들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내내 잠을 자는 사람들이 나는 부럽다. 비즈니스 좌석이라면 모를까. 편하게 누울 수도 없는 코치 좌석에서 어떻게 저렇게 편하게 잠을 계속 잘 수 있을까.


서울은 뉴욕보다 14시간 빠르다. 뉴욕과 서울을 오갈 때마다 시각 차는 신체에 큰 영향을 준다. 낮과 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소위 ‘시차 적응’에만 한 주일 정도 걸린다. 서울 시각에 내 몸을 빨리 적응시키려면, 미국에서 밤 비행기를 타면서 최대한 잠을 안 자고 있다가 비행기가 서울에 도착하기 수시간 전부터 눈을 붙이는 게 낫다. 그래서 나는 착석 후 처음에는 책을 읽고 자주 일어나서 몸을 계속 움직이려고 했다.


좁은 복도를 오가면서 승무원들은 두 번이나 식사를 제공했다. 튜브에 고추장이 담긴 비빔밥이 나올 때 나는 늘 비빔밥을 선택한다. 닭고기나 소고기가 나오면 소고기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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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교적 자주 온다 해도 국제공항으로 오고 신체 검색대 등을 통과하는 것은 매우 번거롭고 신경 쓰이는 일이다. 드디어 기장의 도착 안내 방송이 나오면서 승객들은 화색이 돈다. 드디어 그토록 지루한 열네 시간의 비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승객에게 끼치는 심리적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다. 기대와 설렘의 정도가 큰 사람에게는 더욱 큰 행복과 기쁨이 전해진다. 다시 지루하거나 공포스러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공항 도착은 그리 설렐 이유가 없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의 마음은 그 양 극단의 중간 어디엔가 있었다. 어두운 새벽의 공항 모습은 그리 설레거나 반갑지 않았고, 그리 슬프거나 힘들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어둠 속으로 주황색 불빛들이 보임으로써 나는 그저 지루한 비행에서 벗어나고 드디어 분주한 서울의 일상에 참여하게 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을 뿐이었다.


활주로를 서서히 움직이던 비행기가 마침내 정지하면 수많은 승객들은 재빨리 일어나서 짐을 챙긴다.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여봤자 밖으로 나갈 때까지는 한참 걸릴 것이 뻔한데도 승객들은 기내 복도에 늘어선 긴 줄에 서서 나갈 순서를 기다린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나가야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내 옆사람이 나가고자 했으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머리 위 짐칸에서 있었던 가방을 내렸다. 내 발아래에는 등에 메는 가방이 놓여 있었다.


모든 승객이 나갈 때까지 승무원들은 미소를 머금은 채 쉴 새 없이 인사를 거듭했다. 좁은 복도를 지나다니면서 언제나 밝고 친절하게 서비스하는 그들에게 나는 경탄한다. 작년에 비해 승무원들이 더욱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어프레미아 항공사는 승무원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그들이 이다지 밝게 웃으면서 승객들을 대할 수 있을까. 미국이나 다른 나라 항공사 승무원들에 비해 한국의 승무원들이 친절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다른 어느 직업군을 생각해 봐도 저들처럼 친절하게 손님을 대하는 직원들은 많지 않을 듯했다.


친절은 대단히 중요한 덕목이지만, 승무원들이 소비자들에게 지나치게 저자세로 대하는 것을 나는 반가워할 수 없다. 그들은 단지 등가교환 과정에서 자신들의 노동력을 파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인식이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어야 한다. 소비자로서 또 승객으로서 자신이 상위 지위에 있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드물기는 하지만, 승무원이나 연약한 세일즈맨을 때리고 무릎까지 꿇게 만들어 사과를 받는 몰상식한 사람들이 가끔 뉴스에 등장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부디 등가교환의 상거래를 이해해야 하고, 더 중요하게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말을 되새겨야 한다. 허위적 개념의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서 하는 말이다.


나는 드디어 공항 대합실로 나왔다. 깨끗한 인천공항을 보는 것은 나를 즐겁게 한다. 교회 친구인 광현이 공항으로 올 때까지는 거의 두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한국에서 전화기를 사용하기 위해 심카드를 사서 바꾸고 인터넷을 위해 무제한 데이터를 산다. 한국에서 전화와 인터넷만 사용할 수 있다면 거의 무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환전소까지 갈 필요는 없다. 내 지갑에는 작년에 바꾼 한국돈이 조금 남아 있었다. 더 필요한 돈은 공항이 아니라 시중 은행에서 환전하면 된다.


이제는 혼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숙소도 정하지 않은 채 왔으므로 나는 친구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와 함께 홍대입구 쪽으로 가서 숙소를 찾기로 계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에 올 때는 미리 숙소를 정하고 그냥 기차를 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


숙소만 정해져 있다면 혼자서 찾아가는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다. 실제로 한 달 후 서울을 떠날 때 나는 강남역에서 인천공항까지 지하철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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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나는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예전이라면 당연히 먼저 숙소를 잡아두고 왔지만, 이미 서울 숙박 사정에 조금 익숙해진 나는 한 달간 머무를 고시텔을 한국에 온 당일에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번에는 작년처럼 강남역이 아니라, 홍대입구 부근에서 숙소를 찾기로 했다. 그것을 위해 나는 이미 예약하고 싶은 프리미엄 고시텔 후보들을 조사했고 적어서 가지고 왔다.


아침 7시 조금 넘어서 교회 친구인 광현이 왔다. 그가 굳이 주차할 필요까지 없었으므로 나는 연락을 받자마자 주차장으로 갔다. 반가운 인사 후에 우리는 아주 잠시 인천 청라 지역을 드라이브한 후에 홍대입구로 향했다. 송도와 청라 지역은 신도시로 매우 유명해서 나는 그저 그곳이 어떤 곳인지 직접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곳은 그저 넓은 도로에 높은 건물들만 있어서 대충 둘러보았지만 딱히 어떤 감흥도 받지 못했다.


홍대입구 근처에 도착하여 우리는 먼저 아침을 먹고 나서 숙소를 찾기로 했다.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식당이 거의 없었으므로 우리는 빵집에 들어갔다. 이른 아침에 전화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으므로, 나는 조금 기다렸다가 10시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후보 리스트에 있는 고시텔들로 전화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빈 방이 없었다. 난감했다. 겨우 한 군데에서 일요일에 방이 나니까 그때 와보라고 했다.


그럼 오늘밤에 어디에 가서 자야 하나.

당장 숙박할 곳을 찾아야 했다.


광현은 할 일이 있어서 늦어도 정오까지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11시에 떠나야 했으므로 나는 재빨리 숙소를 결정해야 했다. 고시텔에 빈 방이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작년처럼 에어비앤비에서 먼저 숙소를 찾기로 했다. 에어비앤비에서 숙소를 찾는 것은 당일이라 해도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에어비앤비 숙소는 여러 곳이 나왔는데, 나는 홍대입구역과 합정역 중간 지점에 있는 숙소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웹사이트에서 곧바로 3박 예약을 하고 숙소를 찾아갔다. 광현은 나를 숙소 앞에 내려놓은 후에 바로 떠났고, 가방을 들고 내린 나는 더 이상 선택이 남지 않았다.


숙소는 서교동교회 옆에 있는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였는데 2층에 여러 개의 방이 있었다. 별로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이미 전화로 예약하고 돈까지 지불했으므로 그냥 들어가야 했다. 다행히 숙소 주인이 마당에 있다가 나를 맞았고, 숙소와 주변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요즘에는 숙소 예약과 입실이 주로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있어서, 이렇게 주인을 만날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직접 그의 얼굴을 보고 대화하니까 조금 더 사람 사는 맛이 들기는 했다.


드디어 방에 들어가서 혼자 남게 됐을 때 나는 겨우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 서울이구나.’


침대 옆 창문으로 환한 햇빛이 비쳤다. 그러나 창밖으로는 옆집 벽만 보일 뿐이었다. 낯선 방에서 풍길 만한 냄새가 났고, 창밖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여행을 갔다가 숙소에 들어갔을 때 이런 낯선 분위기는 이상하지 않았지만, 햇빛이 환한 한낮에 방에 앉아 있으니까 다소 어색했다. 사실 방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주인은 괜찮아 보였고, 특히 위치가 좋은 곳이니까 식당과 거리의 여흥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기대했다.


‘겨우 나흘이니까 참고 지내자. 그 사이에 괜찮은 한 달 숙소를 찾으면 되겠지.’


숙소 위치는 홍대입구역과 합정역 사이에서 딱 중간 지점인 듯했다. 숙소 밖으로 나가면 식당들이 있었고 금세 대로인 양화로로 나갈 수 있었으며, 거기서 두세 블록만 걸어가면 지하철 2호선이 다니는 홍대입구역이나 합정역이었다.


내가 굳이 홍대입구역 근처로 숙소를 정하려고 했던 것은 경의선 숲길 산보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경의선 숲길은 작년에 처음으로 걸어보았는데 마음에 들었다. 이 숲길은 경의선 철도를 가좌동부터 용산까지 기다랗게 공원으로 만든 것이다. 사람들이 주로 찾는 숲길은 연남동부터 공덕역 부근 정도인 듯 보였다.


숲길을 이렇게 긴 직사각형 또는 거대한 지렁이 모양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좋은 아이디어다. 도시에서는 정사각형 모양보다 직사각형 모양의 공원이 더 가치가 있다. 시민들의 접근도와 활용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맨해튼에 있는 센트럴파크가 좋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그것은 너무나 넓은 장방형 모양이어서 시민들이 공원을 충분히 즐기기 어려운 모양새다.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이 공원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지만, 설사 간다 해도 공원 중간까지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공원이 너무 넓어서 가운데로 가로질러 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시민들은 주로 공원가만 이용할 뿐이다. 맨해튼의 공기청정기로서 역할하기도 하니까 중요하기는 하지만 센트럴파크의 공원 활용도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의선 숲길은 폭이 50~80미터 정도에 불과해서 시민들이 숲길을 가로질러 다니기가 쉽고 여기저기서 접근하기도 쉽다. 숲길을 따라 조성된 매우 긴 상가 거리가 생겨서 주변에 카페와 식당 등 상가들이 발전했다. 시민들은 아무 곳에서나 숲길로 들어와서 산보를 즐길 수 있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행인들이 이렇게 오가면서 서로 교통 할 수 있다는 것은 복잡한 도시에서 사람 냄새나는 공동체를 조성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넘기 힘든 담으로 둘러싸인 아파트 단지처럼 꽉 막힌 곳은 그곳에 사는 주민들끼리만 소통하게 되지만 (또는 그곳에서도 더 불통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 개방된 공간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마주 보고 교류하게 됨으로써 서로 직접 얼굴을 확인하고 공동체적 분위기를 더욱 증가시킬 수 있다.


따라서 원자화된 도시의 소외감은 줄어들고 주민과 행인과 상인들의 교류가 증가하게 된다. 그런 교류로 인한 안전문제를 탓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의 치안은 양호한 상태이고, 서울은 특히 CCTV 카메라가 많고 개방된 공간이 많으며 보는 사람 눈도 많아서 그만큼 자동적으로 안전이 점검되고 통제되는 장점이 있다.


상가주택이 인기가 있고 발전하는 것은 그만큼 주거지와 상가가 가깝기 때문에 편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직장까지 바로 근처에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주거지역을 별도로 구획하고 아파트 단지로 박음질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 주거 상황은 주택과 상가와 일터가 서로 완전히 분리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도시 계획 단계에서 근로지역과 주거지역과 쇼핑지역과 공단지역을 완전히 분리시키는데 그게 문제다. 주거와 근로와 쇼핑 등 도시의 복합적인 내용을 고루 섞어서 분산배치했다면 도시민들이 느낄 소외감이나 배타적 감정, 또 지역 간 이동에서 생기는 시간과 에너지 낭비와 같은 불편함은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1huDQv13gng

Rod McKuen - Long, Long Time

https://www.youtube.com/watch?v=hgFng1pZM_k

Long long time - Linda Ronsta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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