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아메리칸의 지역사 연구에 관한 작은 고찰
1.
이미 역사 공부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된 내가 역사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얼마전에 우연히 뉴욕시 비영리기관인 ‘아시안아메리칸 / 아시안 조사 연구소’(Asian American / Asian Research Institute)에서 실시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날 다섯 시간에 걸친 세미나의 주제는 주로 서남 아시아인들의 미국 이민에 관한 지역사(localized history)였다. 그 세미나에는 학생 연구원들이 조사한 지역사와 경험담, 그리고 이민사와 이민자들의 연대 방안과 이민자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드러내는 예술적 접근 등이 포함됐다.
이번 세미나는 주로 청년 그룹에서 연구된 결과를 발표하는 내용으로 이뤄졌고, 시간적으로도 길지 않아서 연구 발표 내용이 풍부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의 이민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는 매우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에게 아시안 아메리칸 (미국에 사는 아시아계 사람들)이라 하면, 주로 동북아에서 온 아시안들이 먼저 떠오른다. 즉, 중국인들과 일본인들과 한국인 출신 이민자와 그들의 후손 말이다. 중국인들은 19세기 초에 유럽인들이 중국을 침략하던 시기부터 백인사회로 이민이 시작되었고, 일본인들은 미국과 교역이 시작된 후 이민이 시작되었다. 한국인들은 1902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나면서 미국으로의 이민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니 미국에서 아시안 아메리칸 역사는 주로 중국인 이민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나는 오랫동안 생각했고 서남아시아인들과 동남아시아인들의 이민 역사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시아계를 주로 동북아 출신 이민자들에 한정지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세미나에서 생각해 보니, 아시안 아메리칸들은 동남아뿐 아니라 인도와 서남아와 인도차이나반도 출신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거의 잊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동북아 출신자로서의 나의 정체성에 매몰되어 그 사람들을 자주 눈으로 보면서도 그들의 이민과 정체성의 역사에 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이미 19세기, 심지어 18세기부터 미국과 유럽으로 이민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매우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유럽인들은 동북아에 비해 인도와 동남아시아로 먼저 진출했다. 인도인들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백인들을 알게 되었고, 동남아 국가들도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백인들의 무력과 문화를 경험하게 됐다. 그것은 동북아, 특히 백인들이 아니라 일본에 의해 먼저 개항되었던 조선에 비해 한참 앞서는 시기였다.
또한, 매우 현대사적인 이야기지만,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 후에 주로 남베트남 사람들이, 또 그와 비슷한 시기에 캄보디아 사람들도 전쟁의 피해자로서 또 정치적 난민으로서 대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국은 태생적으로 많은 이민자들을 받다 보니, 지구상에서 거의 모든 국가들로부터 온 이민자들 또는 그들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2.
이번 세미나에서, 부분적이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이민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은 매우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와 더불어, 나는 ‘지역사’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 주로 ‘거대담론’적인 역사를 배웠다. ‘거대담론적인 역사’라고 내가 표현하는 것이 적당한 학문적 용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나는 다만 내가 배우고 공부한 역사를 되짚어 제한된 의미로만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대를 시간적으로 거슬러 내려오면서 구조적으로 사회를 짜 맞추는 거대 역사, 특정한 국가나 왕조 위주로 특별한 사관과 함께 공식적 기록을 위주로 기술하는 역사, 또는, 예를 들면, 경제사나 문화사와 같이 특정 부문이나 영역으로 역사학의 주제와 소재를 한정 짓는 역사를 공부했다. 그래서 중국사나 일본사, 조선 후기 경제사나 조선말 민족운동사, 또는 한복이나 궁중음식의 역사 같은 한정적 주제로 이뤄진 역사학에 익숙해진 편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특히 흑인이나 라티노(라틴아메리카인들, 주로 미국에 사는 중남미인들)들은 거대담론적 역사보다 자신들의 뿌리를 찾는 역사를 먼저 조사연구 할 때가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또 그들이 낯선 땅으로 이주한 후 이민족과 혼혈로 가족을 이루게 되는 역사와 흐름에 관한 조사도 많다.
그런 지역사를 연구할 때는 거의 언제나 먼저 자신의 조상의 갈래에 관한 조사를 포함한다. 마찬가지로, 아시안아메리카인들도 흑인과 라티노들처럼 자신들의 뿌리를 찾는 역사를 시도해 왔다.
한반도와 같이 동북아의 좁고 제한된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강조하거나 자신들의 문화의 동질성을 배타적으로 주장하면서 역사와 문화를 형성해왔다. 오늘날 한민족은 주로 그러한 역사와 문화의 결과물이다. 거대한 중국에 가로막히고 대륙의 끝에 있는 반도에 갇혀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민족과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일본은 더하다. 그들은 반도가 아니라 아예 섬에 갇혀서 살았으므로 이민족과의 교류나 혈연의 얽힘이 더욱 드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민자들의 역사를 다룰 때는 거의 언제나 여러 민족 또는 종족 출신자들의 이주와 발전과 혼혈 등에 관한 연구를 반드시 포함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어느 하나의 민족 또는 국가로 제한해서 역사로 묘사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문화적 혈연적 동질성이 강한 곳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혼혈과 문화적 혼합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상은 미국 이민사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에서도, 또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사이에서도 흔히 발생했다.
과거에 유명했던 TV 드라마 시리즈였던 <뿌리>를 기억하면 조금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뿌리>는 원래 작가 알렉스 헤일리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선조와 그로부터 이어지는 여러 세대의 역사를 1976년 소설로 발표한 작품이다. 그들에게 의미 있는 역사란, 인류 또는 어떤 국가가 어떻게 어떤 목적이나 방식으로 발전하는가를 다루는 거대담론 방식의 역사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들이 발을 딛고 사는 지역에서 자신의 혈족들이 발전시켜 온 존재적 의미를 구현하는 학문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학문이 아니라면, 그들에게 거대담론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거대담론은 현학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매우 추상적이며 목적론적이고 주로 지배권력의 담론이기도 하다. 뿌리가 뽑힌 채 이주하여 이민족과 함께 살아야 했던 그들에게 그러한 거대담론적 역사가 완전히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거나 지워지고 있거나 잊히고 있는 자신의 혈연과 가족과 지역에 관한 역사다.
3.
그렇게 구체적이고 현존적이고 혈연적이고 지역적인 역사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경험적인 역사에 천착하는 것을 본다면 과연 거대담론에 익숙한 역사학자들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아무도 그것이 쓸데없는 연구라고 주장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강단과 학계에서 오랫동안 길들여진 학문적 체계와 방법론에서 쉽게 이해하고 함께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주류 역사학은 이미 어느 정도 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담론적 이론으로 체계화됐다. 그러한 거대담론은 불가피하게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지배권력 또는 그것의 전복과 그 후의 대체권력의 역사를 주된 소재와 주제로 삼는다.
만약 우리가 조선시대나 현대에 이르는 우리 가족의 역사를 조사하고 그것을 연구 논문으로 제시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사소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거대담론적인 역사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내 말은 한국에서 그런 세밀한 미시적 역사 연구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각 지역에는 나름대로 향토사와 가문이나 씨족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역사학도들이 여기저기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를 읽고 거대담론을 짜깁기 식으로 늘어놓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역사학자가 아니라 해도, 거의 누구라 해도 조금만 노력하면, 우리의 인식에서 점차 사라지게 될 자신들의 가족사 또는 사는 지역의 동네 역사를 조사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그것이 역사학에 접근하는 더욱 올바른 방법이 될 것이다. 즉, 가족사와 지역사를 추구하는 것은 역사학도의 일차적이고 독창적인 학문 주제가 될 수 있다. 그러한 개인적이고 지역적인 역사를 토대로 해서 역사학도는 점차 거대담론적 역사학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역사에 대한 그러한 접근은 이민자들이 많은 미국의 학교 교육이나 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소수일지 모르지만 미국의 교육계나 문화계는 종종 소수인종이 자신들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역사를 주된 소재로 삼는 역사와 문화의 연구 결과를 존중하고 장려한다. 그것은 그들 소수 인종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올바로 이해하고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미국 역사와 문화라고 해서 주류 담론인 백인들의 이민사와 문화사만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부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학 접근에 관한 비교는 언론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의 언론 기사를 보면 거의 다 사회 최상위권의 소식과 주장을 위주로 하는 거대담론적 내용만 보도할 때가 많다. 그러니까 역사학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주로 왕과 귀족들이 생각하고 전하는 이야기이며 그들에게 생기는 일이다. 물론 주류 언론은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 보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의 언론 기사를 보면,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로 가장 기초적이고 구체적인 개인적 경험을 담은 기록에서 기사를 시작할 때가 많다. 또는 거의 반드시 그런 예를 기사 안에 담고 있다. 개인적 경험은 시대와 시류를 드러내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지만 그러한 작은 경험들이 없다면 거대 시류를 드러내는 것도 너무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일이 될 것이다.
‘지역사’를 연구하고 발표하는 것은 종종 지루하고 하찮게 여겨진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문학과 역사의 기초가 될 것이며, 시시하고 하찮은 개인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기록하는 역사가 될 것이다.
기록은 결국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이번 세미나를 보면서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참고로, Asian American / Asian Research Institute의 웹사이트 링크를 올려 둔다. https://aaari.info/ )
사진 출처: 픽사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