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뉴욕 일기

결정의 무게

by memory 최호인

지난주 토요일, 이곳에서 늙어가는 친구들을 만나서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2월에 만난 후 반년만이었군요.

그들과 대화하면서 삶의 난관과 삶의 궁핍과 삶의 희망에 관해 생각했지요.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서로 여러 얘기가 오간 후에 한 후배가 아주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한 달 반 전에 돌아가셨어.”


그렇게 말하는 후배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투명하고 맑아 보였습니다. 지난봄, 그녀의 어머니는 입원과 퇴원, 재입원을 반복했고, 최종적으로 폐렴으로 돌아가셨다고 해요.


폐 기능이 떨어진 환자는 자체적인 호흡 능력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혈중 산소포화도까지 떨어져서 위험해집니다.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 신체의 각 기관은 올바로 기능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환자에게 산소호흡기를 이용하여 강제로 산소를 흡입시켜 주는 것입니다.


아마 병원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영화나 TV에서 침대에 누운 환자의 입에 산소호흡기를 단 모습을 보았을 겁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통스럽지도 않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신선한 산소가 많이 흡입되어서 기분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나도 부모님이 입원했을 때 산소호흡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납니다. 쉭쉭거리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산소를 환자의 입안으로 주입하는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해요.


그런데 후배의 어머니가 자꾸만 산소호흡기를 입에서 떼어내려고 했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답답해진 후배가 어머니에게 말했다지요.


“엄마, 왜 그래? 산소호흡기를 입에서 떼면 안 돼. 위험하단 말이야. 귀찮아도 입에 대고 있어야 해. 엄마 알아들었어? 떼면 안 돼.”


후배의 어머니는 딸의 말을 알아들었지만 산소호흡기를 쓰고 있으면 입안이 너무 말라서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꾸 산소호흡기를 입에서 떼어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던 후배는 궁금해서 의사에게 물었답니다. 산소호흡기를 입에 대고 있는 게 어떤 느낌인지. 왜 어머니가 자꾸 산소호흡기를 입에서 떼어내려고 하는지.


그랬더니 의사는 그녀를 바라보고 입에 진공청소기를 대고 작동시키면 어떤 느낌인지 상상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고 해요. 산소호흡기 사용이 바로 그런 느낌이라는 것이지요. 상상하건대, 그 비유는 대단히 끔찍한 공포로 느껴집니다.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는 급기야 자다가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산소호흡기를 떼어냈고, 그로써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비상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병원은 특히 뇌에 산소공급이 중단되면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어머니 양손을 묶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후배는 매우 난감해졌어요.


당신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머니의 양손을 묶어야겠습니까.


후배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 양손을 묶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이후에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라도 어머니가 치료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회복되지 않았고 상황은 점차 악화되었지요. 천천히 어머니의 죽음을 준비해야 할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죽어도 집에서 죽고 싶다고 하면서, 자꾸만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해요. 그러나 집으로 간다고 해도 산소호흡기가 큰 문제였지요. 어차피 더 이상 치료가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어머니는 강력한, 아주 강력한 진통제를 통해 고통만 줄이면서 연명하는 형편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과정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무의미한 연명을 위한 산소호흡기를 떼어내야 하는 결정을 그 후배가 했다고 해요.


“마지막으로 내가 결정해야 했는데… 그건 너무 힘든 일이었어.”


그 힘든 결정의 무게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심각해진 분위기에서 그녀의 말에 집중하던 우리는 그녀가 내려야 했던 결정의 무게를 쉽게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그렇지 않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의 생명을 결정하는 것 아닙니까.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고통이라서 듣는 우리의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내 경우에는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도 났고요. 친구들은 그녀에게 “잘한 거야.” 또는 “괜찮아. 어쩔 수 없었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연명치료 문제와 의료적으로 죽기 전에 미리 해야 할 형식적인 일 등에 관한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삶과 죽음이 칼로 무 자르듯 딱 갈라지는 것이 아닐 때, 그런 과정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법적으로 문제가 될 때, 환자 자신이나 가족에게 종종 큰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런 현실을 모두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나도 그런 문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조금 답답해졌습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병, 즉 죽음에 이르는 병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또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나을 수 있다거나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종종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날밤,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관하여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병이 악화되고, 회복 불능에 이르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에 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제법 어렵고 하기 귀찮은 숙제와 같은 느낌이 들었지요.


여름밤의 시원한 공기가 차창으로 들어왔지만 마음은 착잡했습니다.

이 숙제를 언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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