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여행 이야기 10
˝우리가 헤어지는 것은 역경 때문이 아니라 성장했기 때문이다˝ (파블로 네루다)
칠레의 위대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문구라고 하는데, 그가 정말로 이렇게 말했는지 나는 모른다. 또 그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시 또는 텍스트에서 이렇게 적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헤어짐에 관하여 생각해 보면, 어떤 헤어짐인지는 사람마다 또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이 인용구의 진실성과 적합함을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진정 성장했으므로 헤어지게 되었노라.
성장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헤어지는 법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한 달 전쯤 교보문고에서 지승호/공지영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우리가 헤어지는 것은 성장했기 때문이다]라는 책을 읽고 생각해 본 것이다. 인터뷰 전문작가인 지승호는 17년 전에도 공지영과 인터뷰를 해서 [괜찮다, 다 괜찮다]라는 책을 냈었다. 올해 출판된 [우리가 헤어지는 것은 성장했기 때문이다]에서 공지영은 자신의 작품세계, 글쓰기 방법과 습관과 지향성, 우리 사회에 대한 세계관과 가치관 등에 관해 17년 전에 비해 달라진 다양한 견해를 밝혔다.
그 책의 한 부분에서 공지영은 ‘일기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글을 쓰는 이라면, 기억의 기록과 습작을 위해서라도 필히 일기를 써야 할 것처럼. 또한, 일기를 쓸 때는 가능하다면 각종 상황과 인물에 대한 묘사와 설명, 거기서 느낀 감정과 대화 내용까지, 마치 소설을 쓰듯이 길고 상세하고 세심하게 적을 것을 그녀는 권했다.
습작가들에게 나도 그렇게 하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일상에 관하여 자세하게 쓰려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것이다. 그러니 쓰면서 스스로 절제도 해야 한다. 무엇을 선택해서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렇게 쓸 거리를 생각하는 가운데 관찰과 사고와 묘사와 글을 통한 표현은 어느덧 깊어지고 무르익을 것이다.
올해 한국 여행에서 나도 짧게나마 일기를 적고자 했다. 대체로 그날그날 무엇을 했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공지영을 읽기 전에 시작했던 것인데, 사실을 말하자면, 일기를 적는 명확한 이유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왜 적는가?
누군가 그런 질문을 했다면 나는 딱히 할 대답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쓰고 싶은 욕망, 쓰지 않으면 불안하고 아깝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과 사고와 행위는 뭔가 특별한 일상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또는 그렇게 특별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작년에 부산 한 달 살기를 할 때도 일기를 썼는데, 그때는 그 내용을 곧바로 브런치스토리에 올렸다. 낮에 돌아다니고 밤마다 침대에 앉아서 그런 작업을 했으므로, 그래서 내용이 풍부하거나 충실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두고두고 나를 불편하게 했다.
여행기를 쓴다고 해서 독자에게 여행지에 관한 유익하고 다양한 여행 정보를 전한다는 식으로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런 정보는 인터넷에 무수하게 쌓여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우수하고 충실한 정보들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록에서 나는 나만의 무엇인가를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부산 여행기에서는 그런 목적이 충실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자책감이 남았다. 그러나 이미 쏟아져버린 물처럼 나는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하긴 매일 여행하면서 그날의 내용을 담고자 했으니, 그 깊이가 일천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이번 여행에서는 일기를 쓴다 해도 타인에게 여행기로 공개할 계획이 애초에 없었다. 다만, 가끔씩 여행 단상을 올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계획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다. 오로지 나의 무능력과 나태함으로 인해.
이미 다년간 한국, 특히 서울을 장기간 여행하는 나는 어쩌다 한국을 잠시 방문하는 사람처럼 여행기를 쓸 수는 없다. 나는 여행에 관하여, 또 여행자로서 갖게 되는 감정과 관찰에 관하여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무엇을 써야 하는지 구체적인 것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어쭙잖게 여행에서 알게 되거나 느꼈던 몇 가지 관찰과 정보를 정리해서 공개하기는 했다. 예전에 비해서는 매우 부족하다.
이제 서울을 떠나는 시점에 이르러, 나는 헤어짐에 관하여 생각한다. 뭔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헤어지는 것은 명백히 서글프고 슬프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삶의 불가피한 과정의 하나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밖에. 그래서 공지영 인터뷰 책에서 발견한 제목, 또는 파블로 네루다가 적은 문구를 위로삼아 떠올린다.
우리가 헤어지는 것은 역경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정동제일교회 월요일 정오 음악회 중 바라본 창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