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우정

2025년 초가을 문경-예천-영주-안동 여행 (1)

by memory 최호인

1.


2025년 초가을에 친구들과 함께 다녀온 문경-예천-영주-안동 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신뢰할 만한 인생을 살아온 존경할 만한 친구 혁국은 올해도 한국을 찾아온 나를 위해 친절하게 지방여행 계획을 세워 주었다. 내가 서울에 올 때마다 (나의 성화에 못 이겨) 그는 1박 2일 또는 2박 3일 여행을 계획하고 직접 자동차를 몰고 와서 마치 전문 가이드처럼 여행을 함께 해 주었다. 이런 여행을 수차례 하다 보니 이것도 차츰 익숙해졌고 이제는 마치 우리의 연례행사라도 된 듯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행사가 쉽사리 이뤄지거나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영원히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지방 여행을 함께 가게 됐다는 결과는 쉬워 보일지 모르지만, 여기에는 늙어가는 우리들이 각자 애써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아직까지는 다행히 그런 노력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우리가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었지만, 머지않아 여기에도 한계가 닥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미리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현재의 조건과 환경에 맞춰 우리에게 또 우리의 우정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9월 초에 내가 여행 가자고 했을 때 혁국은 나에게 이번에는 어디로 여행하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안동 일대라고 대답했다. 나는 아무런 구체적 계획이 없었지만 아마도 하회마을과 무섬마을, 그리고 병산서원이나 도산서원에 가고 싶었을 것이다. 2018년에 소수서원에 갔었는데 꽤 인상적인 추억으로 남아서 안동에 있는 다른 서원에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대답만 들은 채 여행을 갈 수 있을지 없을지 확인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는 올해에는 아무리 짜내려 해도 나와 함께 지방여행을 다녀올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주말마다 참여해야 하는 여러 일들이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을 가볍게 하는 게 좋다는 나의 지론과 달리 그는 점점 더욱 바쁘게 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는 나름대로 여행할 시간을 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여의치 않은 듯, 이번에는 다른 친구들이랑 여행하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올해는 지방 여행을 포기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나 추석 연휴를 겨우 일주일 정도 앞두고 그는 마치 의리의 화신이라도 된 듯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여행 계획을 발표했다.


그렇게 해서 정해진 여행 시기는 추석 연휴의 마지막 사흘인 10월 10~12일. 그러나 마지막 날인 12일에도 그에게 다른 일정이 있었으므로, 우리는 그날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만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꽉 찬 이틀간의 여행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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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제 그렇게 힘들게 이뤄진 우리들의 여행의 추억을 길이 남기기 위해, 또 나는 나대로 글을 쓰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으로서의 소망과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여행을 정리하여 기록하기로 했다. 이것이 또한 함께 여행 한 친구들에게 보내는 나의 우정의 표시이기도 하다.


나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이름과 행적이 공개적으로 부각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우리 친구들이 아니라 여행지와 나의 여행 감성에 초점을 맞추어 적을 계획이다.


많은 여행자들의 공통된 습관이겠지만, 이번에도 혁국은 출발 시간을 이른 아침으로 정했다. 그래서 발표된 출발 시간은 아침 7시. 한국으로 와서 매일 아침 8시 정도에 일어나는 나에게 그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더욱이 만나기로 한 장소는 동천역 환승정류장이라 나는 늦어도 새벽 5시 반 정도에 일어나야 했다. 동천역 환승정류장은 우리가 남쪽 지방으로 여행을 갈 때마다 만나는 곳이다.


강남역에서 출발한 내가 겨우 시간에 맞춰 동천역에 도착했을 때 마침 역 안에서 커피를 사 가지고 나가려던 재관과 상국을 만났다. 그들을 역 안에서 만난 것도, 그들이 벌써 따뜻한 커피를 들고 있다는 것도 매우 반가웠다.


드디어 혁국이 운전석에 앉은 자동차 안에서 우리 네 명은 모여 앉았다. 재관이 조수석에, 그 뒤에 내가, 내 옆에 상국이 앉았다. 그리고는 마치 매일 만나기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전혀 흥분하지 않은 모습으로 한가로운 대화를 나누면서 경부고속도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대화와 표정은 나이 든 남자들 특유의 무뚝뚝함 같은 것이다. 여성들이라면 아마도 흥분된 목소리로 서로 소란하게 수다를 떨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이 든 남자들은 이 정도는 결코 흥분할 일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상황에 불과함을 내세우려는 듯 짐짓 점잖게 대화를 나눈다.


혁국이 이미 계획하여 여행 출발 수일 전에 밝힌 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날>

문경. 문경새재, 고모산성, 진남교반, 오미자터널,

예천. 용문사 하늘자락공원 초간정, 에천권씨 종가별당, 금당살마을

영주. 근대문화거리 (제일교회 풍국정미소, 영광이발 7호관사), 제민루 (1박)


<둘째 날>

영주댐 용마루2공원, 무섬마을, 봉정사,

안동. 법흥사지7층전탑, 임청각, 이육사생가, 하회마을, 병산서원 (2박)


<셋째 날> 아침 식사 후 곧바로 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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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일정을 보여 주면 너무 빡빡하다고 평가하는 게 보통이다. 이틀간 너무 여러 곳에 다니는 것 아니냐고.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다. 다른 친구들은 혁국이 짠 여행 일정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바쁘게 다니냐고 한다.


그러나 혁국은 느긋하게 여행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여행 동선과 시간을 꽤 세심하고 짜임새 있게 계획한다. 그래서 한가롭게 여행을 즐기려는 사람은 그의 여행 일정에 놀라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게 유유자적한 여행도 충분히 이해한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한가하게 쉬는 여행 말이다. 그들은 여행을 일처럼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혁국이 계획한 여행을 일처럼 생각한 적은 없다. 혁국은 짧은 여행 일정에 가능하면 여러 가지를 의미 있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나는 어느덧 그의 그러한 여행 스타일에 익숙해졌다. 그것이 곧 우리의 여행이 되었다. 아마도 아주 늙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힘이 없어서 빨리 돌아다니지 못하게 될 때까지는, 이런 여행이 우리에게 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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