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초가을 문경-예천-영주-안동 여행 (2)
1.
한국에서 지방 여행을 갈 때마다 나는 가능하면 출발 전에 여행지에 관하여 사전조사를 하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여행 전날까지 그럴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여행할 때 다소 계획적으로 행동하는 나의 성격과도 잘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국으로 여행을 오기만 하면 거의 매번 그런 일이 반복된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저녁까지도 뭔가 하거나 돌아다니느라고 지방 여행 계획에 집중하지 못하곤 한다. 그것은 어쩌면 긴 여행 기간에 피로가 쌓여서 집중력을 잃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번에도 나는 혁국이 준 여행 일정을 한 번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 채 여행을 시작했다.
8월 말에 서울에 도착했으므로, 친구들과 안동 여행을 가는 시점에 나는 이미 서울에서 사십일 정도 체류한 상황이었다. 올해 추석 연휴는 특별히 매우 길었는데, 그 기간에 나는 예사롭지 않은 경험을 했다. 10월 3일과 4일에 나는 한양도성순성길을 순례했다. 한양을 둘러싼 성곽이 이어지는 남산, 낙산, 인왕산, 북악산을 이틀 만에 모두 돌았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과도한 걸음과 등산으로 인해 종아리가 아파서 순성길을 걸었던 이틑날인 일요일에는 숙소에서 내내 쉬어야 했다. 온종일 비가 내려서 나가기에도 불편한 날이었다. 나는 비와 추석을 핑계 삼아서 숙소에서 이틀 정도 푹 쉬기로 했다. 그래야 몸의 피로도 풀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상상하기 힘든 괴상한 사고가 발생했다.
숙소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2.
세탁기가 있는 작은 밀실 천장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두 방울씩 떨어져서 미처 깨닫지도 못했는데, 점차 많이 떨어져서 세탁기 위에 물이 고이고 흐르는 것을 발견했다. 오피스텔 출입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에 양쪽으로 여닫이문이 있고 그 안에 세탁기가 놓여 있다. 그런데 그 밀실 천장에서 물방울들이 점점 더 거세게 떨어졌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물이 떨어지는 곳이 침대와 책상 등이 있는 방 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는 즉시 건물관리소에 연락했다. 추석 연휴였지만 관리소 직원이 곧 올라왔다. 그는 세탁실을 보더니 위층에서 세탁기를 돌리면서 물이 새는 모양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위로 올라갔다 오더니 위층이 아니라 옥상이 문제라고 했다. 내 숙소는 9층 건물에서 8층에 있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건물 옥상에서 뭔가 공사를 했다는 것이다. 추석이라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공사하느라고 파헤쳐진 웅덩이에 물이 고였고, 어찌 된 일인지 그 물이 내 숙소 천장으로 새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런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다니!
그것도 하필 추석 연휴에.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당장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관리소 직원은 추석 연휴라서 공사하는 사람들이 나흘 후인 9일이나 되어야 온다고 그때까지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조금 후에 나에게 커다란 붉은 플라스틱 양동이를 갖다 주었다. (우리가 어릴 때 ‘다라’라고 부르던 것 말이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이 양동이에 차면 버려 달라면서.
“미안하지만 다라에 물이 차면 싱크대에 버려 주세요.”
“뭐라고요? 9일까지 비가 자주 내릴 텐데 어떻게 하나요? 그리고 제가 밖으로 나갈 때는 어떻게 하란 말이죠?”
내 머릿속에서 갖가지 불안한 상상이 떠올랐다. 물이 더 많이 새서 천장이 무너지거나, 세탁기가 고장 나거나, 아예 방 안에도 물이 새서 침대나 책상이 젖는 것 등.
그러나 사무소 직원은 내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도 아무 해결책이 없어서 답답하다고 말하면서 주말에 공사를 시작했던 관리소장을 탓했다. 관리소장은 추석이라 어디로 갔는지 나타나지도 않았다.
나는 답답하고 화까지 났지만 아무 대책도 없었고 그에게 불평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당장 피해는 나에게 오는 것이므로 나는 그저 양동이에 괸 물을 퍼내면서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 외에 할 게 없었다. 그렇게 2025년 나의 추석은 빗물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면서 흘러가고 있었다.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꽤 서글퍼졌고 깊은 시름에 젖어들었다.
3.
그러나 월요일 내내 야속하게도 비는 계속 내렸다. 그 바람에 천장에서 더 많은 물이 떨어지더니, 이윽고 작은 폭포수처럼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제발 그 빗물이 방 안에 떨어지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또한, 빗물이 작은 폭포처럼 떨어지는 장면을 사진과 비디오에 담아서 관리소와 부동산중개업자에게 보냈다. 이러한 사태가 분명히 나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증거로 남기고자 했다. 그러나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하긴 추석 연휴인데 누가 이런 일에 신경을 쓰고 싶을까.
천장에서 빗물이 심하게 떨어졌으므로 커다란 양동이는 금세 찼다. 그렇게 양동이에 물이 찰 때마다 나는 작은 냄비로 물을 퍼서 싱크대에 버렸다. 물이 찬 양동이는 너무 크고 무거워서 내가 들 수는 없었다. 월요일에 그렇게 온종일 숙소에 머물면서 열 차례 이상 양동이에 찬 물을 퍼내야 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빗물이 양동이에 작은 폭포수처럼 떨어지면서 내는 소음을 나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비가 계속 내리면서 이윽고 화장실 천장에서도 빗물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아가, 출입구 바깥에서 소리가 나길래 문을 열어 보았더니, 관리소 직원이 내 방 앞 복도에도 양동이를 배치했다. 거기에도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화요일 낮에 드디어 밖으로 나가야 할 시점에 이르러 나는 양동이 물이 넘치는 것에 대비하여 뭔가 묘안을 짜내야 했다. 혹시라도 물이 세탁기 뒤로 넘쳐서 세탁기가 고장 날까 봐 걱정도 됐다. 여행을 시작한 이래 거의 매일 밤 빨래를 했으므로 세탁기는 필수적으로 작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세탁기마저 작동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야말로 다른 숙소로 옮겨야 할 판이었다.
떨어지는 빗물이 세탁기 뒤쪽으로 흐르지 않도록 나는 양동이 밑에 작은 그릇을 받쳐 두었다. 빗물은 밀실에서 비교적 앞쪽에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약간 기울어진 양동이에 물이 차면 물은 저절로 세탁기 앞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떨어지는 물이 세탁기 밀실 안쪽이 아니라 출입구 쪽으로 흐르도록 나는 신발장에 있는 나무판자를 세탁기 밑에 비스듬하게 기울여 놓았다. 그리고 세탁실 문을 닫아서 물방울들이 출입구 앞으로 튀는 것을 막았다. 이제 천장에서 떨어진 물은 양동이에 먼저 떨어지고, 그 물이 차면 세탁기 앞으로 떨어지게 되며, 결국 그것은 출입구로 흘러나오게 되었다.
출입구는 방보다 약간 낮게 단차가 있었다. 그래서 물이 출입구로 나와도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복도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나는 예상했다. 복도로 나가는 물까지 내가 신경 쓸 수는 없었다. 그것은 관리소에서 알아서 할 일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말하면 밤에도 빗물은 천장에서 계속 떨어졌는데, 그 물이 복도로 흘러 나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까, 복도에 물로 흥건하게 흐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물이 또 아래층으로 흘러갔다는 말인데…. 나는 그 행방까지는 추측할 수 없었다. 아니, 더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4.
화요일에도 비가 조금 더 내렸다. 아, 웬 가을장마기 9월에 이어 10월 초 추석까지 이어진단 말인가.
밤새 폭포수처럼 소리를 내면서 내 잠까지 방해한 그 사태는 화요일 오후에 이르러 조금 진정이 됐다. 다행히도 비가 월요일만큼 오지 않았다. 수요일에는 날이 맑았고, 목요일에는 흐렸지만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금요일 새벽에 나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 숙소를 나왔다.
관리소 직원은 그날 건물 옥상 공사하는 사람들이 온다고 했으니, 이 문제는 해결될 일이라고, 아니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여행을 떠났다. 실제로 친구들과 지방 여행을 마치고 일요일 낮에 숙소로 돌아와 보니 물은 더 이상 떨어진 흔적이 없었다. 세탁기가 있는 밀실에서는 약간 퀴퀴한 냄새가 났고, 화장실 천장도 물길이 만든 천장 색깔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빗물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관리소는 이 문제에 관해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고 나는 시월 말 숙소를 떠날 때까지 그 상태로 살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일도 겪는 법이라고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더 큰일을 당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