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문경-예천-영주-안동 여행 (3)
1.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계획적인 혁국은 이번 여행에서도 사흘 내내 운전을 했다. 피곤하면 재관에게 운전을 맡길 만도 하건만 그는 단 한 번도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다. 다만, 여행 전에도 그랬지만, 가끔씩 재관이 새로 장만했다는 전기 자동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푸념만 장난조로 했다. 재관은 전기 자동차라서 충전이 쉽지 않고 지방 여행까지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식으로 한사코 변명만 했다. 산속에서 자동차가 멈추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그는 우리가 여행할 곳을 미리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듯 보였다. 우리가 움직이는 동선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고 나름대로 여행지에서 머무는 시간까지 계산하고 있었다. 여행 전문 가이드처럼 유적이나 문화재에 관해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왜 그가 우리를 그곳에 데리고 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우리는 그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믿고 따라다닐 수 있었다.
우리는 여행하면서 의견이 크게 엇갈릴 때가 없다. 여럿이 함께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갈등이 생길 법도 하지만 이미 수차례 함께 여행을 다닌 우리에게 그런 일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혁국이 미리 시간별로 계획을 충실하게 짜놓은 덕분이며, 이차적으로 친구들이 자신의 주장을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고 서로 배려하는 선량한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한 번이라도 안 좋은 기억이 생겼다면 다음에는 함께 가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거나 기피하려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일이 없었다. 각자의 취향이 다르기는 해도 우리는 그런 것을 비난하거나 받아주지 못할 만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최대한 각자의 취향과 호불호를 존중해 주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나처럼 술을 잘 마시지 못하고 어린애 같은 입맛을 가진 사람도 그럭저럭 어울리는 데 아무 부담이 없다.
재관은 매우 유쾌하고 말도 적당하게 많은 인물이다. 여행을 할 때마다 그는 조수석에 앉아서 거의 쉴 새 없이 혁국에게 말을 붙인다. 길을 안내하거나 주변 상황에 관해 뭔가 대화를 유도한다. 조수석에 앉으면 가끔은 졸거나 아예 눈을 붙이기도 할 법한데 체력이 좋아서 그런지 그는 좀체 그런 일이 없다. 계속 휴대폰에서 지도를 살피고 가는 길을 안내하거나 다음 갈 곳을 혁국과 상의하거나 추천한다. 그러면서도 가끔 특유의 어조로 웃으면서 농담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경주에서 자랐지만 대학 시절부터 줄곧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사투리 억양이 좀 가실 만도 한데 아직까지도 그의 말투는 좀처럼 서울스럽지 않다. 하여간 그의 지지치 않는 활력을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상국은 희한하게 조용하고 침착한 인물이다. 그는 친구들이 신나서 큰 소리로 대화할 때도 거의 언제나 듣기만 한다. 그는 대화를 들으면서 종종 미소를 짓거나 창밖이나 휴대폰을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사색에 젖은 모습을 보이다가 그는 아주 가끔 아무도 웃지는 못할 정도의 시시한 농담을 조용히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별로 우습거나 농담스럽지 않아서 남들은 가만히 있는데 자기 혼자서 실실 웃기도 한다.
그는 특히 자신의 확실한 견해를 밝히지 않은 채 조금 애매한 질문조로 말을 던지는 경향이 있다.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가면서 상대방의 대답을 유도하려는 말버릇이다. 그의 조용하고 느리고 침착한 말과 행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듯하다. 어느 여행지에 가서도 그는 거의 언제나 가장 뒤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따라온다. 그렇게 느긋하고 차분한 느림의 미학으로 종종 타인에게 답답함을 전하지만 그는 그렇게 느끼는 남들의 사정까지 고려해서 서두르는 법이 결코 없는 인물이다.
2.
동천역 환승정류장에서 출발한 우리는 먼저 문경전통시장까지 쉬지 않고 갔다. 거기서 아침 식사를 할 계획이었다. 문경전통시장은 꽤 한적하고 작은 시장이다. 우리는 시장 안 어느 식당에선가 앉아서 잽싸게 올갱이국밥을 먹은 후에 곧바로 문경새재로 향했다.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나에게는 초행길인 문경새재는 조선시대에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들이 힘들게 넘나든 곳으로 유명하다.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을 잇는 곳에 있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의 고향인 괴산에 여러 차례 가보았지만 문경새재를 넘었던 기억은 없다.
새재 또는 조령이란, 말 그대로 새도 넘기 힘든 해발 642미터 험한 고개라는 뜻이다. ‘재’는 순우리말로 ‘고개’를 뜻한다. 문경새재는 전통적으로 충청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경계가 되었다. ‘영남’이라는 단어도 조령과 죽령의 남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 최고의 명장인 신립 장군이 탄금대가 아니라, 이곳 조령에서 북상하는 왜군을 막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말이 많이 남은 곳도 바로 이곳, 문경새재이다. 신립은 조정에서 보낸 기병대를 포함한 조선의 정예군으로 한강변 탄금대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패배했다. 이후 왜군은 거의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곧바로 한양으로 진군해서 숭례문을 통과하고 이미 선조가 도피한 경복궁을 점령했다.
신립은 왜 방어하기에 일당백이라는 험준한 조령에 진을 치지 않고 충주 평야로 나가서 싸웠을까. 한양에서 파견된 조선 기병대의 힘을 과신했던 것일까. 그러나 이 기병대는 봄이 되어 진창이 되었던 충주평야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듯하다. 조선군이 조령에서 방어하지 않고 충주 평야에서 전투를 벌인 것을 두고, 나중에 명나라 장수 이여송도, 심지어 왜군들도, 신립을 지략이 모자란 사람으로 조롱했다고 한다. 그만큼 탄금대 전투는 임진왜란에서 큰 의문을 던졌고 우리 역사에 큰 상처를 남겼다.
만약 신립이 탄금대가 아니라 조령에서 싸웠다면 정말 왜군을 막아낼 수 있었을까. 역사에 그런 가정은 거의 아무 쓸모도 없고, 아무도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남는 아쉬움과 의문을 가지고 우리는 문경새재에 올랐다. 그러나 주차장부터 산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갈 여유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제2관문까지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긴 마차처럼 바람을 맞으면서 천천히 가는 관광용 차량 말이다.
3.
문경새재의 탐방 코스는 제1관문에서 제3관문까지 총 6.5킬로미터 길이에 이른다. 제2관문까지 오른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제3관문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그 오름길에는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도 자주 보였다. 아마도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옛날 선비들이 힘들게 공부하고 다녔던 ‘과거시험’을 연상시키기 위해서 자녀를 데리고 왔을 것이다. 아이들은 철 모르고 힘들게 언덕길을 걷고 있었지만, 여러모로 좋은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경새재는 말 그대로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통제하는 관문들만 있는 곳이다. 고개를 오르면서 옛날 옛적에 이 길은 힘들게 걸어 다녔던 선비들을 생각해 봤다. 무거운 봇짐을 진 채 그저 걷는 것 외에는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었던 시절, 이렇게 험한 산을 넘어가기는 정말 무섭고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는 어쩌면 호랑이가 출몰하였으므로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다녔을 것이라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말을 누군가 했다. 산짐승이 아니라 산적이 출현할 가능성도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도 산이 깊고 숲이 울창하지만, 옛날에는 오죽했을까. 대낮이라도 감히 한두 명이 이 고개에 오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고개를 넘기 전에 숙박과 취식을 하기 위한 여관도 있고 주막도 있었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 주막터가 아직도 고갯마루 아래에 있다.
자주 있지도 않은 과거 시험을 위해 죽도록 공부하고 나서 이 고개를 넘어 한양으로 갔던 선비들이 낙방하여 힘없이 돌아오던 풍경을 상상해 본다. 시험을 잘 보았다면 다행이지만, 낙방한 자들은 풀 죽은 얼굴과 썩은 심장으로 낙향하면서 고민했을 것이다. 다음 과거 시험을 다시 준비해야 하는가, 아니면 여기서 중단해야 하는가. 그 힘든 결정을 스스로 내리지 못해서 차라리 고개에서 호랑이 밥이 되고 싶었던 자들은 없었을까. 조령을 다녀오면서 내 머릿속에는 별별 상상이 떠올랐다.
제3관문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재관은 엉뚱하게도 그곳이 맨발로 걷기 좋다면서 신발을 벗어 들고 걸었다. 전국적으로 맨발 걷기가 유행이고, 실제로 건강에 좋다고 하니 말리기도 어려웠다. 다만 혹시라도 발바닥이 뭔가에 찔리기라도 할까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다행히 그는 무사히 잘 내려왔고 건강함을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