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문경-예천-영주-안동 여행 (4)
1.
문경새재에서 나온 우리는 고모산성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전에 ‘문경오미자테마터널’이라는 곳이 보였다.
혁국은 자신은 “이미 그곳에 가 보았기 때문에 안 갈 테니까” ‘보고 싶은 사람’만 가서 보라고 말했다. 모험심이 강한 재관이 먼저 가겠다고 말했고 나도 그와 함께 가겠다고 했다. 상국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로써 혁국과 상국은 그냥 차를 타고 곧바로 고모산성으로 가고, 재관과 나는 오미자터널에 들렀다가 산성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혁국은 재관과 나를 오미자터널 앞에서 내리도록 했다.
예쁘게 꾸민 터널 입구에 이르렀을 때 입장료가 성인 3500원임을 알고 재관은 조금 망설였지만 우리는 결국 그냥 들어갔다. 겨우 막힌 터널 하나 보는데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받느냐고 이번 여행의 회계를 맡은 재관은 불평했다.
그런데 이 터널은 한 번 볼 만하긴 하다. 예전에 석탄을 나르는 기차가 오가던 석현터널을 꽤 예쁘게 꾸며놓았다. 굳이 ‘오미자터널’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처럼, 터널 안에는 오미자를 주제로 꾸미기도 했고 오미자 관련 상품들도 많이 팔았다. 터널 안에 오미자 카페도 있었다. 터널 한쪽 구석에 손님들이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를 잘 꾸며놓았다. 그러나 거기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무더운 여름이라면 손님들이 더 있지 않았을까.
우리가 터널 안으로 들어갈 때 오미자 상품을 파는 가게에서 눈이 예쁜 중년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터널 안으로 바쁘게 걸어가는 우리를 곁눈질로 바라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녀는 다소 추위에 떠는 듯 보여서 작은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마음 같아서는 뭔가 사서 가냘픈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주고 싶었지만 우리는 절대 그런 곳에서 뭔가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중에 터널을 나오면서 그녀를 다시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꼿꼿이 서서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또다시 그녀가 고달프고 애처로워 보였다.
터널 밖으로 나오면서 우리는 과연 그녀가 그 가게의 사장인지 종업원인지 하는 문제를 두고 ‘논의(?)’했지만 아무 결론도 내지 못했다. 그녀가 시간당 임금을 받는 종업원이라면 우리가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고 해서 그리 슬프지 않을 것도 같았다.
항상 섭씨 14~17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그 터널 안은 꽤 서늘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안에서 온종일 일하는 사람이 분명히 추울 것이라고 말했는데, 재관은 그녀가 그곳에서 오랫동안 일했을 것이므로 나름대로 방책을 마련했을 것이고 그런 문제는 이미 해결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었으므로 더 이상은 알 길이 없었다.
여행 중에 생기는 아련한 궁금증을 때로는 이렇게 가슴에 묻어 둬야 할 때도 있다. 혁국과 재관은 나중에 다시 문경새재에 올 일이 생기면 그때 찾아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좋을 듯도 하지만, 그것을 묻기 위해서 터널 입장료 3500원을 다시 내고 들어가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나이 든 사내들의 쓸데없는 농담은 거기까지였다.
아무튼 이 터널은 예쁘다. 어두운 터널 내부를 각종 불빛 장식으로 아주 예쁘게 꾸며졌다. 터널의 길이는 540미터. 우리는 그 길이를 모른 채 들어갔기 때문에 어둠 속을 걸어가면서 터널이 무척 길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터널 끝에 이르렀다. 그곳은 엉뚱하게도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곳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우리는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음침하고 서늘한 곳까지 와서 도대체 어느 연인이 사랑을 고백하겠느냐고 푸념하고 돌아섰다.
2.
오미자터널에서 나온 후 재관과 나는 곧바로 ‘고모산성’으로 뛰어갔다. 혁국과 상국이 먼저 그곳으로 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오미자테마터널은 고모산성 아래에 있다.
고모산성은 삼국시대에 신라의 경상도 관문이었다. 외부에서 경상도로 진입하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었으므로 신라의 중요한 방어성곽이 있는 곳이었다. 산성은 해발 231미터 고모산 정상에 축조되었고, 둘레가 1300미터나 되는 대형 성곽이다. 그 정상에는 ‘영남문’이라고 적힌 관문이 있다. 그 영남문은 ‘진남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진남문은 예로부터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고, 고모산성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했다. 이 지역은 태백산에서 대미산, 주흘산,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고봉 경계였으며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이 많은 곳이다. 게다가 영강으로 불리는 물길을 따라 교량들도 보여서 경북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진남'은, 임진왜란 때 조선군이 이 일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왜군에게 허무하게 내어 준 곳이라, 나중에 새로 성을 쌓으면서 남쪽 (왜)를 경계한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교반'은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진남교의 주변이라는 뜻. 그래서 이곳이 진남교반으로 불리게 되었다.
재관과 내가 허겁지겁 산으로 올라갔을 때 혁국과 상국은 이미 성곽을 따라 고모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 정상에 올라가야 주변 경관, 진남교반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고 혁국이 말하면서, 나에게 올라가고 싶으면 갔다 오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그가 다녀온 후라 내가 산 정상으로 올라가면 그들이 기다려야 할 것을 생각하니 차마 오를 수 없었다. 다음 행선지도 서둘러 가야 하는 판에 말이다.
아무튼 고모산성 표지판에는 이렇게 설명이 적혀 있다.
“고모산성은 신라가 5세기경 문경에 진출한 이후 축조한 거점 성곽이다. 이곳은 신라가 고구려의 남진을 방어하고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소백산맥 이남에 설치한 전진기지였다. 산성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주흘산 이남이 한눈에 보인다. 남쪽으로는 불정 지역 외에는 다른 곳으로 길을 만들 수 없어,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 길목에 있다. 그래서 임진왜란, 동학농민운동, 한말 운강 이강년 선생의 의병항쟁 등 여러 차례 전략적 요충지로 이용되었다. 산은 장방형 구조로 총 둘레는 1270미터이다. 성의 높이는 성벽이 낮은 곳은 1미터, 높은 곳은 11미터로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다. 남쪽으로 1000미터 떨어진 곳에 옛길인 문경 토끼비리가 있다.”
옛날 옛적에 이곳에서 신라군이 성을 지키던 모습이 아련하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나라를 지키려고 했던가. 수백 년이 지나도록 고구려 백제와 악착같이 싸운 후에 결국 자신의 힘만으로는 못하고 당을 끌어들여 한반도의 반쪽 만이라도 통일하려는 게 그들의 목표였을까.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는 우리나라 고대사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을 허하게 한다. 당에게 빼앗긴 고구려 영토를 어떻게 봐야 한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