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여행 이야기 8 (부제: 혜화동과 연극 '비누향기')
1.
장기 여행을 하다 보면, 딱히 해야 할 일이 없는 날이 있다. 어디를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이 서지 않는 날 말이다. 그럴 때는 장기 단독 여행자에게 디폴트처럼 장착된 외로움과 고독이 밀려오고, 나는 가능하면 거기에서 벗어나고파서 약간 고민한다. 외로움과 고독은 불가피할 때만으로도 충분하다.
짧은 기간에 서울이나 지방을 돌아봐야 하는 여느 여행객과는 매우 다른 상황에 있는 나는 급히 갈 곳도 해야 할 것도 없다. 그러나 가능하면, 거의 매일 뭔가 할 스케줄을 짜서 다니는 게 습관이 됐다. 서울에서는 그런 것이 꽤 익숙해졌다. 미국과 달리, 여기서는 무척 많이 걸어야 한다. 그래서 바로 그런 이유로, 때로는 일부러 쉬어야 하는 날도 있다. 매일 밖으로 다니기에는 몸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딱히 계획이 없었던 어제는 뭘 할까 고민하다가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기로 했다. 작년 가을에도 거기서 연극을 보았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김종욱 찾기’였나, ‘2호선 세입자’였나, 아니면 '옥탑방고양이'였나……
연극 또는 뮤지컬을 보는 것 외에도 혜화동 일대에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찾아보았더니, 이화장과 이화동벽화마을과 낙산공원과 낙산성곽길도 있음을 발견했다. (성곽길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곧 산에 있는 것인데, 출발에 앞서 나는 그것을 미처 제대로 상상하지 못했고, 그 아쉬운 결과는 곧 불행한 현실로 나타났다!)
느긋하게 브런치를 먹고 나서 인터넷에서 공연 예약 앱을 설치하고 가입한 후 세일하는 연극을 예매하기로 했다. 그래서 조금 애쓴 후에 오후 네 시에 보기로 한 연극은 ‘비누향기’. 이 연극의 포스터나 제목만 보면 단순한 로맨스처럼 보여서 딱히 끌리지 않았지만, 내용과 리뷰를 읽어본 후 관람하기로 결정했다.
혜화동은 이름부터 예쁘다.
한양의 네 소문 중 동소문에 속하는 혜화문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혜화(惠化)'는 '은혜를 베풀어 백성을 교화한다'는 뜻.
2.
오후 두 시, 지하철을 타고 가서 혜화역에서 나오니 엄청 습한 무더위와 눈부신 땡볕이 나를 반긴다. 먼저, 이승만 대통령이 살았었다는 이화장을 겨우 찾아갔다. 예상치 않았던 매우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이어졌다. 대학로 뒤에 이런 옛 풍경이 있었구나.
겨우 이화장에 도착했더니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크고 높은 대문 너머로 넓은 마당과 집들만 보였다. 실망스러웠다. 재작년 가을에 노무현 대통령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을 찾은 이래 두 번째로 겨우 찾아간 대통령 사저인데, 그때와는 매우 비교되었다.
이화장은, 또는 이승만이나 그의 추종자들은, 이렇게 시민과 거리를 두고 반기지 않는다니……
하긴 이화장을 개방한다 해도 찾아오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민주공화국에서 무소불위 독재 권력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다가 4.19 민주혁명으로 몰락한 후 외국으로 도망가서 죽었고, 국민에게 워낙에 인기가 없으니 말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옆에 있는 ‘이화동벽화마을’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마을은 낙산(해발 125미터)으로 올라가는 중턱에 있는 마을이었다. 그것을 깨닫고 망설였지만 연극을 보기 전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므로 나는 땀을 흘리면서 골목들로 이어진 길을 계속 따라갔다. 가파른 계단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나는 참고 올라갔다.
낙산마을박물관 표시가 보였다. 이것은 또 뭘까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듯한 작은 슈퍼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벽화마을은 저 위에 있습니까?”
좁은 골목에 가파르게 오르는 수많은 계단들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렇기는 한데요. 계단을 고치면서 벽화가 거의 다 사라졌고, 지금은 저기 보이는 것처럼 약간만 남아 있어요.”
그도 나처럼 손으로 가파른 골목 계단을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골목을 다시 자세히 보니 벽에 그림 하나가 보였다.
“그럼 박물관은 볼 만한 것이 전시되어 있습니까?” 나는 또 물었다.
“박물관이라고 딱히 볼 만한 것은 없고 사실 이 마을 전체가 박물관과 같죠. 지은 지가 아주 오래됐으니까.” 그가 대답했다. 마을에 있는 집들을 둘러보니 외양이 오래되어 보이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제강점기에 지은 집들은 아니겠죠?”
“그런 집들도 있을 거예요.”
“적산가옥 같이 생긴 집들이 없어 보이는데……" 나는 주변에 2,3층으로 높이 지어진 집들을 올려보면서 말했다.
“전부 집들을 개조해서 그렇죠. 저 지붕이나 창문들 보세요. 아직 옛날 흔적도 많이 남아 있으니까.” 그가 손가락으로 언덕 위에 있는 어느 집 지붕과 창문을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지난 수십 년간 집주인들은 현대식으로 집을 수리했고, 옛 자취는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재개발되지 않은 좁은 골목, 낡은 집들은 그곳이 확실히 매우 오래된 동네임을 실감하게 했다.
나는 대답해 준 남성에게 고맙다고 말한 후에 마음을 다잡고 벽화마을 계단으로 향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조금 더 올라가 보자고 생각하면서.
헉헉거리면서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벽화 두세 점이 더 보였다. 그러나 계단은 마치 천국으로 이끄는 듯 한없이 이어져 있었다. 너무 덥고 땀이 많이 나서 나는 정상까지 가기를 포기했다. 벽화도 거의 없는데 굳이 이렇게 힘들게 올라갈 필요가 있는지 헷갈렸다. 그때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도대체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저 아래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까지 어떻게 다닐까. 특히 노인들 말이다.
꽤 높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멀리 시내 전경이 펼쳐졌고, 그 뒤로 인왕산인지 북악산인지도 보였다. 오르락내리락하기는 힘들지만 전경은 참 좋구나.
연극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고 너무 덥고 힘들어서 나는 차마 낙산성곽길까지 찾아갈 수 없었다. 아마도 힘들겠지만, 나중에 다시 그곳으로 갈 것을 속으로 예약하고 돌아섰다.
3.
내가 보려던 연극은 내용이 몹시 슬퍼서 관객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리뷰가 많았다. 벽화마을에서 내려와서 연극을 보았더니 정말이었다. 연극 ‘비누향기’는 그냥 슬픈 게 아니라 거기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포함되어 큰 감동을 주었다.
스포일 같지만, 이 연극을 조금이라도 널리 소개하고픈 마음에서 여기에 그 내용을 약간이나마 소개한다.
우울증에 빠진 한 청년.
비가 오는 날, 천둥번개가 치면서 그의 휴대폰에 수신음이 울린다. 그것은 공교롭게 젊은 두 남녀가 통화하도록 만든다. 이 특별한 현상은 이후로도 천둥번개만 치면 발생한다. 그들의 우연한 통화는 꾸준히 이어지고 점차 친해진다. 그래서 연극 제목은 ‘비만 오면 누군가의 향기가 기억난다’의 약자만 따서 ‘비누향기’가 되었다.
그 청년이 자랄 때의 모습이 나오는데 일종의 우울증을 앓고 있다. 비 오는 날, 그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그 청년은 아버지가 차를 몰고 나가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내심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살았고 우울증이 발전한 것.
그 아들은 비 오는 날마다 교신되는 여인과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녀가 거의 삼십 년 전에 죽은 어머니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997년 무렵 돌아가신 어머니와 2025년 현재의 아들이 통화하고 있었던 것.
그 청년은 어머니를 죽게 했던 교통사고를 낸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이었음도 알게 된다. 교통사고를 내면서 충격으로 그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것이다.
한편, 극 가운데 국밥 식당을 운영하는 외할머니가 나온다. 1997년에 교통사고로 죽은 딸의 어머니이자 청년의 외할머니다. 결혼을 앞두고 딸은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말했다. 자신의 음식값은 삼심 년 정도 후에 어떤 청년이 자신의 결혼 축의금으로 대신 낼 것이라고.
2025년에 청년이 그 식당으로 와서 실제로 축의금을 받았다면서 음식값을 냈을 때 할머니는 자신의 딸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할머니가 어머니와 아들을 연결하는 어떤 매개 역할을 하는지 나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 기회에 다시 한번 이 연극을 볼 계획이다.)
연극이 중반에 이르렀을 때 나는 비가 오는 날 동시에 두 남녀가 전화를 받게 되는 순간부터 그들이 죽은 어머니와 아들임을 눈치챘다. 그러면서 너무나 슬픈 나머지 연극을 보는 내내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이 교통사고를 내서 죽은 어머니와 대화하는 아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채 아버지를 원망했던 아들. 그런 아들을 위해 비가 오는 날 아들과 교신을 통해 실제적 사실을 점차 깨닫게 했던 죽은 엄마.
이런 날도 있다.
연극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심하게 울던 날.
연극이 끝나고 난 후에 관객들이 배우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기회가 있었다. 연극이 너무 마음에 와닿은 나머지, 나는 기꺼이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가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연극을 보고 나오니, 겨우 아직 밝은 저녁, 오후 6시였다. 숙소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는데, 마로니에 광장에서는 딱히 구경할 만한 버스킹도 없었다. 허한 마음에 호떡을 하나 먹고 혜화역으로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