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문경-예천-영주-안동 여행 (6)
1.
나는 사실 혁국이 여행지를 선정하는 기준을 알지 못한다.
그에게 묻지도 않았다. 어떻게 왜 이번 여행지를 선택했는지. 그저 그를 믿고 맡길 뿐이다.
구월 초에 여행 희망 장소를 물었을 때 나는 안동 지역이라고 말했을 뿐 더 이상 구체적인 장소를 언급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무섬마을에는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던가. 하여간 과거에도 함께 여행을 할 때 그에게 왜 이런 장소들을 선택했는지 물었던 적은 없다. 그는 어떤 기준으로 장소들을 선택했을까.
우리는 거의 암묵적으로 오래된 사찰과 유명한 문화재와 역사적인 장소 등을 우리의 여행지로 뽑곤 한다. 우리는 화려하거나 한적한 휴양지 같은 곳을 선호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사치하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고급 호텔이나 고급 식당을 찾아가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런 것은 우리의 취향과는 맞지 않는다.
언젠가는 우리도 해외로 여행을 갈지도 모른다. 해외여행을 한다면 일본이나 대만이나 동남아부터 갈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혁국에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친구들과 여행할 때마다 여행기를 쓰고 있으니까 이러다가 전국 여행기를 다 쓰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그게 나의 희망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전국’이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도 불확실하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우리는 결코 전국을 모두 다닐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내가 ‘전국’이라고 말한 것은 나의 실수다. 나는 아마도 전국의 유명 관광지와 사적지와 역사적인 장소를 의미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아주 유명한 곳부터 덜 알려진 곳까지 다양하게 있고 관점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으니까 내가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나는 우리가 언제까지 어디로 여행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각자 자기 사정이 있고 그것들을 서로 충족시키면서 여행할 수밖에 없다. 그런 한도 내에서 나는 친구들과 여행을 계속 다니고 싶다. 여행은 여행대로 의미가 있고, 친구들과의 우정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친구들과 하루 저녁 시간을 내서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은 더 오랫동안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여행이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2.
용문사에서 나온 우리는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에 걸쳐 있는 소백산으로 갔다.
나에게 소백산은 처음이다.
소백산 하늘자락공원은 경북 예천군 용문면 매봉 자락 해발 730미터에 위치한 공원이다. 공원 안에 높이 23.5미터 폭 16미터의 ‘소백산하늘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아래부터 나선형으로 된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옥상에 이른다. 그곳에 가면 소백산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360도로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다.
나는 가장 먼저 전망대 위로 올라갔다. 옥상부로 올라가는 중간에도 주변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자꾸만 잠시 서서 바라보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돌면서 올라가다 보니 소백산맥이 멀리 보이기도 하고 어림호가 보이기도 한다. 그런 것이 둥그런 전망대를 오르는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서는 곳마다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것 말이다.
옥상에 올랐을 때는 정말 모든 것이 시원하게 파노라마처럼 보였다. 옥상에는 투명한 플라스틱 벽이 둘러쳐져 있어서 개방감을 주었다. 다소 흐린 하늘 아래 먼 산들이 짙은 녹색으로 겹겹이 흐릿하게 보였다.
전망대 옥상에 서 있으니까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소백산 하늘자락공원의 모습은 물론이고, 주변의 소백산과 백두대간의 산세도 잘 보인다. 또한, 2011년에 예천양수발전소 상부댐이 건설되면서 생긴 깊고 푸른 인공호수인 ‘어림호’도 보인다. 모두 그림 같은 풍경이다.
원래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 군대와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다고 하여 ‘어림성’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어림성은 조선 전기까지 산성으로 기능하다가 방치되어 터만 남았었다. 그곳에 전력공급을 위해 발전소 상부댐이 건설된 것이다.
3.
소백산의 시원한 풍경을 눈에 담은 후에 우리는 초간정으로 향했다.
초간정은 조선 선조 때 문신 권문해 (1534~1591)가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 세운 정자이다. 그는 퇴계 이황의 제자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선조 22년, 1589년)을 지은 인물이다. 그는 원나라 음시부가 지은 '운부군옥'의 체제를 본떠서 '대동운부군옥'을 지었는데 총 20권 20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임진왜란으로 인해 간행되지 못했다가 순조12년(1812년)에야 간행되기 시작하여 헌종 2년(1836년)에 완간되었다.
초간정은 선조 15년(1582)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잿더미가 되었다. 인조 4년(1626)에 재건되었으나 인조 14년(1636)에 다시 불탔다. 현존 건물은 영조 16년(1740)에 원래의 터에서 약간 서쪽으로 옮겨 지은 것을 고종 7년(1870)에 수리한 것이다.
초간정은 맑은 물가에 있어서 있어서 경치가 매우 좋다. 그래서인지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의 촬영지가 되었다는 안내판도 붙어 있다. 우리가 갔을 때 초간정의 대문은 언뜻 잠겨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다. 열어 볼 수 있다고. 대문에 자물쇠가 걸려 있기는 했지만 열려 있었다.
나는 대문을 밀고 초간정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을 통과하면 ‘초간정사’라고 적힌 현판이 있는 집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다. 다른 친구들은 대충 훑어보고 밖으로 나갔지만, 나는 굳이 신발을 벗고 정자로 올라가 보았다. 권문해 이래 무수한 선비들이 이 정자에 앉아서 풍경을 즐겼을 것이라는 상상과 함께 나는 정자를 둘러보고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좋은 장소에 앉아 보았다.
초간정은 온통 오래된 나무들로 건설된 고풍스러운 건축물이었다. 그곳 정자에 올라서면 계곡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을 더욱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다. 마치 자연 속에 앉아 있는 듯하여 변하는 계절을 잘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문득 엉뚱하게도 대도시 건물 안에 있는 현대식 카페가 떠올랐다. 너무나 비교되는 장면이었다.
3.
초간정 옆에는 ‘삼판서고택’이라는 건물도 있다. 말 그대로 판서 세 명이 살았었다는 곳이다. 그 세 판서 중에는 정도전의 아버지인 정운경도 포함된다. 건립 시기는 불명확하나 13세기 또는 14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저 오래된 넓은 기와집처럼 보여서 우리는 삼판서고택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보기만 했다. 고택 앞에는 멋드러져 보이는 제민루가 늠름하게 서 있었다. 제민루는 1433년(세종 15년)에 학교와 공립의원을 겸하기 위해 세워진 2층 누각이다. 조선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 지방의원이기도 하다.
거기서 바라보는 금곡천의 평화롭고 널찍한 풍경은 가슴을 뻥 뚫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천 건너에 너무 높은 산이 있었다면 조금 갑갑해 보였겠지만 적당한 높이의 언덕이 보일 뿐이었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보가 보였고 그 위로 물이 작은 폭포처럼 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물결이 흘러내렸다. 너무 좁지도 너무 넓지도 않고 적당하게 넓은 광장과 풍경이 우리의 눈을 더욱 시원하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