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문경-예천-영주-안동 여행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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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오후가 되었고 혁국은 시간이 많지 않다면서 예천을 떠나 북동쪽에 있는 영주로 가자고 했다. 문경에서 시작한 우리의 여정은 예천을 거쳐 이제 동북쪽에 있는 영주로 이어졌다. 혁국은 영주로 가는 길에 재빨리 근대역사문화거리를 돌아보자고 했다. 영주에는 아직까지 일제강점기의 자취가 남은 거리가 있다. 그곳을 근대역사문화거리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제 그 거리를 빠르게 살펴볼 것이다.
영주역은 영동선, 경북선, 그리고 중앙선이 만나는 교통요충지에 있다. 오늘날 영동선과 경북선에서 열차 운행은 매우 뜸한 편이지만, 중앙선은 서울 청량리역에서 부산 부전역까지 이어지는 간선노선이다. 영주역은 1941년 중앙선 보통역으로 시작됐고, 그때부터 영주시는 근대도시로 탈바꿈되었다.
왕년에 그렇게 화려했던 영주역에서 일했던 철도 직원들이 거주하던 관사가 아직도 남아 있다. 당시로서는 꽤 근대적 형태의 연립주택으로 건설되었고, 일본 목조 관사주택의 형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아직까지 구 영주역 제5호관사와 제7호관사가 비교적 옛 형태를 잘 간직하고 남아 있어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혁국은 여기에도 마치 얼마 전에 와본 듯 능숙하게 어느 언덕길로 올라가더니 차를 잠시 세우면서 손가락으로 관사를 가리켰다. “저기 봐. 저렇게 생겼어.” 혁국은 굳이 차에서 내려서 볼 필요는 없다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가 가리키는 언덕 위에 같은 모양을 한 기와집들이 촘촘히 늘어선 모습이 보였다. 그곳이 철도 직원들을 위한 관사였다. 이곳은 현재 점차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부디 옛 정취를 잃지 않고 간직하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만 남겼다.
자세히 보려면 매우 넓은 곳이고 시간도 많이 걸리니까 굳이 주차하고 볼 여유가 없다고 혁국은 운전하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그냥 달리는 차 안에서 잘 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광복로를 달리면서 영주 거리를 보았다. 근대역사문화거리는 광복로를 달리면서 살펴볼 수 있다.
저기는 제일교회, 저기는 풍국국정미소, 저기는 영광이발관 등 혁국은 차를 몰고 가면서 옛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돌려서 보고 가능하면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러나 워낙에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차분히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느껴지는 거리의 모습이 비디오처럼 흘러갔다. 해가 질 무렵이라서 그런지 다소 쓸쓸해 보이는 그 거리를 보면서, 나는 단지 예전에 이곳이 꽤 번화했던 곳이었구나,라고만 생각했다.
2.
예전에 번창했지만 오늘날 쇠락한 또는 쇠락해 가는 거리를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허전하게 한다. 작년에 사북과 태백에 갔을 때도 그랬었다. 그래도 거기는 영주 광복로에 비해서는 현대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강원도에서 캐는 석탄이 산업발전의 주된 동력이었을 때는 그 거리에 지나가는 개도 입에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농담을 했었다. 그러나 전설적인 그런 시대가 지나가고 도박의 도시라는 이름이 붙은 지금은 어딘가 허무한 쓸쓸함 같은 게 거리에 흘렀다. 영주에서도 은근히 그런 느낌이 마음속으로 스쳤다.
이 글을 쓰면서 조사해 보니까, 1940년대에 이곳에는 서른 개도 넘는 정미소가 있었다고 한다. 영주제일교회는 1909년에 설립되었고 1958년에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현재의 고딕양식 건물로 변했다. 풍국정미소는 1930년대에 만들어진 삼십여 개의 정미소 중 하나이다. 영주가 경북 북부지역 미곡 유통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영광이발관은 1930년대에 ‘국제이발관’으로 영업을 시작했고 ‘시온이발관’에 이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
그런데 ‘영주’, 하면 나 개인적으로 엉뚱한 기억도 떠오른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좋아했던 교회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이름이 영주였다. 믿음에 충실했던 내 친구가 전도 차원에서 그 영주를 우리 교회에 데리고 왔었다. 그런데 영주는 두세 번 우리 교회에 오더니, 이유는 모르지만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친구 좋다고 해서 교회와 신앙까지 함께 따라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신의가 두터운 친애하는 내 친구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영주가 중학생 때 가장 친했던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내 친구가 그렇게 좋아했던 영주가 은근히 부러웠다. 그 영주가 아직도 내 머리에 남아서, 오늘 정작 경북 영주시에 왔을 때까지 되살아날 줄은 몰랐다.
3.
아침에 여행을 시작하면서 우리끼리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정한 게 있다. 여행 중 운전기사의 근로시간. 친구들과 여행하는데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혁국이 오후 5시까지만 운전하도록 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그것만 해도 하루 여덟 시간 근무한 것이라고 간주했다.
이렇게 운전기사의 근로기준을 정했으므로, 여행 첫날 오후 다섯 시가 되었을 때 우리는 조속히 숙소로 가서 여장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월 초 오후 다섯 시는 그리 어둡지 않아서 저녁 식사를 하기에는 너무 일러 보였다. 그러나 영주로 왔기 때문에 영주에서의 여행은 내일 아침부터 해야 한다고 혁국은 생각했던 모양이다. 우리 중 아무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영주시는 경북 북서부에 있으며 그리 크지 않은 도시다. 인구는 2023년 기준 겨우 10만 명을 넘었으나 감소 추세에 있다. 오늘날 한국의 지방에 있는 대부분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영주 역시 그렇게 인구는 감소하고 도시 기능은 줄어들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는 영주 시내에 있는 어떤 모델로 들어갔다. 모텔에 두 개의 방을 예약했으므로 우리는 두 명씩 나누어 자야 했는데, 가위바위보로 한 방에서 같이 잘 사람을 결정하기로 했다. 카운터 앞에 서서 네 명이 가위바위보를 한 결과, 재관과 상국이 한 방에, 혁국과 내가 한 방에 자게 됐다. 방마다 두 개의 침대가 있었으므로 사실 누구와 함께 자도 별 문제는 아니었다. 옆 짝꿍이 밤새 심하게 코를 골지 않는다면 말이다. 다행히 모텔 방은 작지 않았고 화장실도 컸다. 우리는 모텔 방을 둘러보고 나서 곧바로 저녁 식사를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재관이 휴대폰을 통해 근처에서 찾은 맛집은 삼겹살 식당. 숙소에서 가까운 곳이라 천천히 걸어갔다. 비교적 넓은 식당이었고 서비스도 괜찮았다. 불판에 삼겹살이 올라갔고 흥겨운 술판이 벌어졌다. 소주와 맥주가 등장했다. 운전기사 겸 가이드 역할을 한 혁국도 마음 놓고 술을 들이켰다.
식당에서 배부르게 먹고 나온 우리는 또 편의점에 들러서 술과 안주를 잔뜩 샀다. 저녁을 잔뜩 먹고 숙소로 와서 또 먹고 마시는 것, 나는 따를 수밖에 없는 먹성 좋은 이 친구들의 여행 패턴이다.
모텔 방에 네 명이 둘러앉았다. 기분이 좋아져서 시끌벅적 떠들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 때 마침 텔레비전에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축구 경기가 방영됐다. 혁국은 보나 마나 대한민국이 질 것이고 그로 인해 열만 받게 될 것이라면서 채널을 돌리기를 원했다. 그러나 재관은 끈질기게 그 경기를 보고자 했다. 나도 속으로는 그 축구 경기를 보고 싶었다. 우리나라가 잘해서 이길 수 있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브라질이 얼마나 잘하는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역시 결과는 참혹했다. 0대5로 한국이 졌다. 사람들은 감독을 탓하기도 하고 선수들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딱히 그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한국이 경기에서 졌다는 사실보다 나에게 더 놀라운 것은, 세계적으로 보면 정상급에 못 미치는 우리나라의 축구에다 온 국민이 그렇게 열정을 갖고 있으며 국가적으로도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한국인들이 다양한 운동 종목과 운동선수들에 대하여 지금보다 관대한 형평성 같은 것을 갖기를 기대하고 싶다. 인기 없는 종목들과 눈에 잘 안 띄면서 힘만 들어 보이는 다른 종목에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이다.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나 메달 숫자에 지나치게 감정을 쏟지 말고 비인기 종목 선수들도 격려할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스포츠를 둘러싼 이익관계의 부작용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운동 종목마다 거대한 운동단체가 있고 상위 간부들과 임원들도 있는데 그들에 대한 과도한 대접을 줄였으면 좋겠다. 나는 그들이 왜 유달리 특권을 누리고 높은 임금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거의 모두 스포츠 인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돈보다는 명예와 영광을 위해 일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에 대한 특혜를 주느니 열심히 뛰는 가난한 어린 선수들에게 혜택을 더 주면 좋겠다.
말이 나왔으니 조금 더 하자면, 운동이나 예술에서는 선후배 관계가 너무 엄격하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일반 시민들에게는 그렇게 알려져 있다. 그 안에서는 지연, 학연 등이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운동계와 예술계에서 그런 관계에서 비롯되는 불공정한 특권이 제거되는 것은, 그 내부의 민주적 질서를 확립하고 운동과 예술의 본질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할 것 같다.
4.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떠들다 보니 밤이 깊어갔다. 거의 자정이 되어서 우리는 헤어졌다. 여행의 첫날이 그렇게 저물었다. 낯선 호텔 방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그곳이 뉴욕도 아니고 서울도 아니고 영주라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 밤이었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마치 내가 공중에 둥둥 떠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것이 인생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느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자꾸만 떠돌아다니는 것만 같은 느낌. 장기 여행을 하면 그런 생각이 더 자주 더 깊이 드는 것일까.
그런 감정은 단순한 외로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낯선 모텔, 낯선 냄새가 풍기는 이불과 베개에 머리를 묻고 창밖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눈을 감은 채 조금 더 깊게 조금 더 길게 인생에 관해서 생각할 때 그렇다. 삶의 여로가 불투명하게 보인다. 마치 인생의 뿌리가 뽑혀서 어떤 액체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유영하는 듯도 하다.
이 밤에 다른 친구들도 이렇게 생각할까. 아닐 듯하다. 사는 것이 모두 이러지는 않을 텐데, 혹시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의아하다. 삶이 부평초처럼 흐르는 듯하여 왠지 모를 우울함이 슬그머니 덮쳐오더니 나는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