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서원... 아름답고 평화로운 오래된 학교

2025년 문경-예천-영주-안동 여행 (12)

by memory 최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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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토요일 오후가 되었고 우리의 여정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아침에 영주댐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듯했다. 아직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이 우리 여정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둘러 병산서원으로 갔다.


2019년에 우리나라의 서원 아홉 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 가운데 안동지역에 있는 병산서원(안동), 소수서원(영주), 도산서원(안동)도 포함된다.


나는 2018년에 소수서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받은 감동이 커서 나중에 반드시 다른 서원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나중이 바로 오늘이었다. 친구들 덕분에 병산서원을 보게 된 것은 큰 다행이었다.


병산서원 주차장부터 병산서원까지 무척 먼 거리였다. 햇빛 가릴 것 하나 없는 도로에서 거의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하필 강력한 땡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오후였다. 그러나 병산서원으로 향하는 관광객은 무척 많았다. 특히 자녀들과 함께 온 부모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서원이라 하니, 아이들에게 구경시켜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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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병산서원은 원래 고려시대의 사림 교육기관인 풍악서당(豊岳書堂)을 선조 5년(1572)에 서애 류성룡 (1542~1607)이 안동으로 옮겨온 것이다. 서애가 타계한 후 1614년에 병산서당으로 개칭되었다. 사학기관들이 가문, 학연, 지연 등에 얽혀 저지르는 폐해를 막기 위해 고종 8년(1871)에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병산서원은 가치 있는 47개 서원 중 하나로 지정되어 보호되었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에도 사학재단들이 저지르는 각종 폐해들을 생각하면 사학 개정이 시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병산서원에 도착하니 먼저 출입문 격인 복례문(復禮門)이 우리를 반겼다. 복례문을 통과하면 경내로 진입하기 전 문루(門樓)인 만대루(晩對樓)가 보인다. 만대루와 복례문 사이에는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진 모양) 형태의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복례문으로 들어섰을 때 만대루를 보고 탄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높고 넓고 시원하게 만들어진 누대가 너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볼계문과 만대루 사이에 있는 마당을 잠시 살펴본 후에 나는 만대루를 지나 경내로 진입했다. 정면에 당당한 풍채의 입교당(立敎堂)이 마주 섰다. 입교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로 학문 강론 장소로 사용되었다. 더운 여름에 유생들은 사방이 탁 트여 시원한 만루대에서 교육받기도 했다.


입교당 주변에는 존덕사, 장판각, 진사청, 동재와 서재 등이 있다. 존덕사는 류성룡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특이한 것은 경외에 달팽이 형태의 담이 설치된 뒷간이 있다는 것. 거기에는 문도 없고 천장도 없어서 약간 의아해 보였다. 입구에서 볼일을 보는 데까지 거리가 제법 있으니까 문이 없어도 될 수도 있겠지만, 비가 올 때 천장이 없다면 어떻게 사용했던 것일까. 그래서 지금은 천장이 없지만 옛날에는 아마도 이 뒷간에도 문과 덮개가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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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원을 돌아보면서 나는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특징을 발견했다. 많은 사람이 이곳에 들어와서 금세 떠나지 않고 꽤 한참 머문다는 것이다. 특히 입교당의 넓은 마루에 가만히 앉아서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사람이 많았다.


왜 그렇게 하고 싶은지는 들어가서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입교당에서 전방에 보이는 풍경은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평화와 신비로움을 안겨준다. 마당 앞에 서 있는 만대루와 그 주변으로 보이는 푸른 숲의 풍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다치고 힘든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나도 입교당 마루에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고 싶었다.


입교당에서 또 만대루에서 사람들은 주변의 경관에 감탄하면서 수백 년 전에 이곳에서 매일 공부하고 수련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사오백 년이 지난 훗날, 후손들이 자신들이 매일 뛰놀고 공부하던 이곳을 이렇게 찾아올 것을 예상이나 했을까. 마당과 누각에 그들의 자취는 남아 있지 않지만, 입교당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그들의 옛 일상이 어느덧 눈에 떠오른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입교당 마루에서 쉬이 일어서지 못한 채 망연히 전방을 바라보고 있다.


병산은 말 그대로 산들이 겹겹이 쌓여 있음을 의미한다. 산들로 포근하게 감싸진 서원은 더욱 평화로워 보인다. 그런데 외부로부터 서원으로 들어오는 길은 의외로 꽤 험난하다. 차를 타고 서원으로 갈 때 산비탈로 지나가는 도로가 매우 길고 험해서 내가 말했다.


“여기로 들어오는 길이 이렇게 힘들어서 옛날에 서원에 온 학생들이 나가기가 무척 어려웠겠다.”

그러자 혁국이 대답했다.

“그렇게 해야 학생들이 한 번 들어오면 못 나가고 열심히 공부하지.”

그 대답도 그럴듯했다. 민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유생들이 공부하기 힘들다고 도망가고 싶어도 탈출이 어려울 듯했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는 엉뚱한 생각 하나.


그 시절에 똑똑하고 현명해서 스승에게 칭찬을 받고 과거급제를 한 학생도 있었겠지만, 그들 곁에서 함께 수학했던 머리도 좋지 않고 공부하기도 싫어하는 학생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서원에서 선생님에게 멍청하다고 혼나고 모범적인 다른 학생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도살장 끌려가듯 갔던 과거 시험에서 낙방하고 인생의 패배자가 된 마음으로 다시 서원으로 돌아왔을까.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데, 성인들과 철학자들은 차마 자신들이 세상을 바꿀 능력이 모자란 것을 슬퍼하면서 다른 인간들에게 스스로 공평함과 평정심을 찾으라고 한다. 또는 세상은 고행이고 어찌 한들 공평무사와 행복을 찾을 수 없으므로 이승에서는 열심히 덕을 쌓거나 도를 닦아서 저승에 가서야 지복을 얻을 수 있다고 설파하기도 한다.


유서 깊은 입교당 천장의 쭉쭉 뻗은 서까래와 나무 기둥들 아래 넓은 마루에 앉아서 나는 잠시나마 무념무상에 젖어들어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늘 어지럽지만 서원의 풍경은 평화로웠다.


오래된 서원 마루는 시원하고 숲은 푸르고 바람은 잔잔하고 하늘은 참 맑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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