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월영교와 월영정...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야경

2025년 문경-예천-영주-안동 여행 (13)

by memory 최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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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산서원에서 나오니 어느덧 오후 네 시가 되었다. 우리는 급하게 하회마을로 갔다. 그곳이 이번 여정의 종착지였다.


하회마을의 드넓은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없을 만큼 차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마치 안동으로 관광 온 사람들이 그날 오후에 거의 다 하회마을로 모여든 듯했다. 그래도 눈치 빠른 혁국은 부지런히 주차장 안에서 돌더니 곧 주차 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하회마을의 입장료는 무려 성인 오천 원.


입장 티켓을 사는 부스 앞에서 우리는 망설였다. 시간은 이미 오후 네시 반.

우리는 굳이 이만 원이나 내고 하회마을로 들어가야 하는가 의견이 갈렸다. “무섬마을은 무료인데 하회마을은 왜 이렇게 비싸게 받아”라고 재관이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꼭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이만 원도 아깝고 하회마을에 들어가 봤자 여기저기서 흔히 보던 기와집과 초가집들을 또 보게 될 텐데 굳이 들어갈 필요가 있냐고. 게다가 오후 다섯 시가 가까웠으므로 우리의 운전기사인 혁국의 근무시간도 마감되는 시점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약간 아쉬운 느낌이 들었지만 하회마을을 꼭 봐야겠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무섬마을에서 기와집과 초가집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더 많이 본다 해봐야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용할 듯도 했다. 게다가 서울에서도 북촌과 서촌에서 기와집들을 많이 봤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회탈 모습은 하도 유명해서 지금 눈을 감아도 눈에 선하게 보일 정도다. 게다가 인터넷과 방송에서 하회마을을 여러 번 본 것도 영향을 주었다.


해야 될 이유와 하지 말아야 될 이유를 대면서 논의하자면 끝이 없는 법이다. 당위와 욕망이 충돌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하회마을에 들어가지 않고 돌아섰다. 하회(河回)’라는 단어의 뜻처럼 강물이 휘감아도는 그림 같은 하회마을 풍경을 머릿속에서 상상했다. 나중에 언제 이곳에 다시 올 기회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큰 후회는 남지 않았다.


2.


우리는 안동 시내로 갔고 상국이 예약한 모텔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가위바위보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재관과 혁국이 한 방에, 상국과 내가 한 방에 자기로 했다. 네 명이 들어가기에도 비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서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서울이라면 방을 세 개 정도 만들 정도로 방이 넓었다. '도대체 방이 왜 이렇게 넓은 거야. 여기서 족구를 해도 되겠는데...'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안동 하면 모름지기 찜닭이 유명하다. 재관이 휴대폰에서 식당들을 찾더니 안동구시장으로 가자고 앴다. 그곳에 안동찜닦 골목이 있다고 하면서. 우리는 곧바로 모텔에서 나와서 안동구시장으로 걸어갔다. 거의 일 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걸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거리에 오가는 차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인도가 좁아서 우리는 일렬로 걸어갔다. 토요일 오후, 겨우 다섯 시가 조금 지난 이른 저녁인데 길가에 있는 많은 가게가 이미 문을 닫았거나 닫고 있는 중이었다. 미용실처럼 아직 문을 연 가게에도 손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참 한산한 도시 풍경이었다.


그러나 안동구시장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제법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시장 통로 양쪽으로 여러 찜닭 식당이 나타났다. 시장의 덮개 천장에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예쁘게 그려져 있었다. 전통시장 치고 넓고 깨끗한 편이었다. 우리는 두리번거리면서 시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다가 철판 찜닭 그림이 맛있어 보이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들어갈 때는 좀 이른 시각이어서 식당 안이 거의 비어 있었지만, 우리가 식사를 마칠 때쯤에는 빈 테이블 거의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들어찼다. 나는 달콤 짭짤한 찜닭과 맥주를 맛있게 먹었다. 날이 맑은 오후라서 그런지 기분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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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은 후에 숙소로 돌아와서 어제처럼 또다시 둘러앉아 술을 마실 수도 있었지만, 나는 안동을 떠나기 전에 더 볼거리가 없나 궁금했다. 혁국은 안동에서 월영교도 유명하다고 대답했는데 우리 여행 계획에 들어 있지는 않은 곳이었다.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무엇이 유명한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 가보자고 했다. 그렇게 이른 저녁에 퀴퀴한 모텔 방으로 들어가서 술만 마시면서 앉아 있기는 싫었던 것이다. 여행의 마지막 밤에, 거리가 어둡지만 않다면, 안동 시내라도 걷고 싶었다.


처음에는 귀찮다면서 나보고 혼자 택시 타고 가서 보고 오라고 했던 혁국은 결국 내 성화에 못 이겨서 일어났다. 상국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혁국이 상국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우리끼리 다녀오라고 했던 모양이다. 혁국과 재관과 나는 즉시 택시를 타고 월영교로 갔다.


3.


알고 보니, 월영교는 안동에서 야경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월영교는 강폭이 좁아진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폭 3.6미터, 길이 387미터의 다리이다. 다리 바닥과 난간을 모두 목재로 만든 인도교라서 산책 삼아 걷기에 아주 좋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우리는 월영교에 비치는 화려한 금빛 조명을 보고 마음이 들떴다.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긴 다리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월영교에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우리는 천천히 월영교를 걷기 시작했다. 조명이 비치는 을 제외한 사위는 완전히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공간과 황금빛 다리가 극적으로 대조되어서 그 밤의 분위기는 감미로웠다. 기온 적당하고 바람도 잔잔해서 월영교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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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정은 월영교 가운에, 그러니까 낙동강 한복판에 우뚝 서 있다. 월영교 전체가 조명으로 물들어서 멋있어 보였지만 월영정은 특히 상향 조명으로 인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우리는 낮은 이층높이의 월영정 계단을 올라가서 난간에 섰다. 검은 강물 위로 긴 줄처럼 조명이 빛나고 있었고 그 빛이 검은 강물에 반사되어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강물 위에는 조명을 달고 다니는 작은 배들까지 한가로이 떠 있었다.


월영교와 낙동강 양변에 온통 노란 불빛이 켜져 있어서 캄캄한 하늘과 강물을 배경으로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을 주었다. 다리 건너 언덕 위에 옛 고을 관아였던 선성현객사가 있는데, 그곳도 금빛 조명을 밝혀 둬서 검은 하늘 위에 밝은 건물이 둥실 떠 있는 듯 보였다. 우리는 예상치 않았던 약간의 감동에 취해 아름답고 낭만적인 야경을 즐겼다. 연인과 함께 왔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옆을 보니 아랫배가 불쑥 나온 늙수그레한 친구가 걷고 있었다.


월영교를 보고 나서 다시 택시를 타고 모텔로 돌아가는 길에 상국을 만났다. 우리는 또 편의점으로 가서 술과 과자를 샀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봐둔 맛집 식당에서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자고 했다. 차를 타고 오면서 돼지국밥 식당을 보았는데 어찌나 잘 되는지 밤에도 손님들이 식당 앞에 줄을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버스 정류장 이름까지 그 식당 이름을 지니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 집이 분명히 유명한 맛집임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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