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문경-예천-영주-안동 여행 (14)
1.
다음날 아침, 우리는 간밤에 찜해 놓은 그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정말로 유명한 식당이어서 그런지, 아침부터 손님이 많았고 국밥 국물이 진하고 맛있었다. 나는 또 국밥에서 고기를 모두 건져서 재관에게 주었다. 나의 까탈스러운 입맛에는 참 친숙해지기 힘든 고기 맛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2025년 가을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오기에는 너무 이른 아침이었고 헤어지기에는 너무 밝은 한낮이었다. 조금 어색했지만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어느 휴게소인지 모르지만 잠시 들른 김에 우리는 호두과자를 사 먹었다.
다가온 이별의 감정 때문인지, 차 안에서 우리는 모두 이상하게 말수가 줄어들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호두과자를 오래도록 씹기만 했다. 이윽고 그저께 아침에 우리가 만났던 동천역 환승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상국과 나는 내리고 혁국과 재관은 떠났다.
2.
여행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허전했다. 여행이 끝나서 그런 것인지 뒤풀이 없이 대낮에 친구들과 헤어지고 돌아오려니까 그런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래도 어떤 상황은 내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마음을 추스르고자 했다.
숙소 천장에서 떨어지던 빗물 사태는 해결되었을까. 여행 중에 이따금 떠올랐던 그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기를 나는 바랐다. 걱정하면서 돌아와서 보니까 그 작은 바람은 다행스럽게 현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세탁기 위에 있는 붉은 양동이 안을 보니 바짝 말라 있었다. 더 이상 빗물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너무 밝은 한낮에 숙소로 돌아오니까 기분이 묘했다. 방 안이 너무 조용해서 음악을 틀었다. 조금 바쁘게 움직였던 여행 후였지만 몸은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나는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다소 느긋해진 기분으로 침대에 잠시 누웠다. 그러나 머리가 맑아져서 금세 일어났고 점심 식사를 위해 바깥으로 나가기로 했다.
이번에 서울에 와서 자주 갔던 식당이 있다. 콩나물국밥 식당. 갑자기 거기로 가서 작은 항아리에 든 깍두기와 김치를 곁들여 뜨뜻한 국밥을 먹고 싶었다. 교차로에 있는 이 식당은 늘 환하다. 식당에 큰 창문이 많기도 하지만 천장에도 언제나 여러 개의 LED 전등을 환하게 밝혀 둔 곳이다. 나는 자주 앉는 자리로 갔다. 식사를 하면서 대형 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곳이다. 나는 국밥을 입에 떠 넣으면서 생각했다.
대학 동기 친구들과 올해에도 이렇게 여행을 다녀온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어릴 때 좀 친했다고 해서 나이 든 후에도 이렇게 함께 여행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해마다 이런 여행을 하고 있다. 참 대단한 인연이고 행운이다.
나를 포함해서, 대학 시절 친구들은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이렇게 저렇게 변했다. 어떤 친구들은 그간 너무 많이 변해서 말을 건네기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만나서 대화하기에는 서먹해진 친구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친구는 어렸을 때의 성격이나 모습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한 친구가 입에 붙은 듯 가끔 던지던 말처럼,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 법이긴 하다. 막상 만나서 대화하면 우리는 금세 옛날처럼 서로 어울릴 수 있다.
긴 시간의 흐름에서 우리가 이미 많이 변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젊었을 때의 날카로움이 좀 가셨기 때문에 서로 쉽게 어울릴 만도 하건만 나이를 먹은 만큼 고집과 주관도 강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일부나마 옛 친구들을 이렇게 만나고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3.
이상하게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혁국은 이번 여정에 포함된 곳들을 과거에, 아니 어쩌면 최근에 이미 다 가보았던 듯하다. 그런데도 굳이 나를 위해서 이런 여정을 계획하고 자동차를 가지고 와서 여행을 안내해 주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다. 웬만하면 자기도 안 가 본 곳을 선택할 만도 한데 그는 항상 나에게 여행지를 선택하도록 했다.
서울로 돌아온 후에 출국할 때까지 나는 아쉽게도 혁국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출국을 일주일 앞둔 시월 말 어느 날, 재관과 상국을 포함한 여러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맑은 날 오후 여섯 시 종로3가 단성사 건물 앞.
몇 명이 오는지, 어디로 가서 무엇을 먹을지 미리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거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갑작스럽게 만남을 주선했는데도 여덟 명이나 모였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거리에서 우리는 서로 오랜만이라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 각자의 생활에 젖어서 연락도 자주 하지 않고 지냈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무척 반가운 표정이었다. 우로 좌로 옆에 선 친구들과 바쁘게 대화가 오가고 서로의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솟아났다. 아무도 식당을 미리 정하지 않아서 우왕좌왕한 후에 우리는 마침내 낙원상가 근처 어느 식당 구석 자리로 들어가서 마주 앉았다. 하필 남자 넷 여자 넷이라서 우리는 마치 미팅이라도 하러 나온 것 같다고 깔깔거리면서 농담하기도 했다.
나는 미국에 있으니까 그들을 자주 볼 수 없는 게 당연하지만, 모두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그들도 세월의 무게에 눌려서 서로 자주 만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동창회를 해도 많이 모이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들은 수년 만에 만났으면서도 지난달에 만난 듯 환한 얼굴로 웃고 떠들었다. 수십 년간 알게 모르게 다져진, 저력의 우정을 되새기면서 우리는 마치 대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소란스럽게 식사를 했다.
우리 이제 얼마나 더 이렇게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이렇게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겉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런 생각이 우리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식당에서 1차를 하고 헤어지기 아쉬워서 카페에서 2차를 하고 나니까 그새 밤 열 시. 한 친구는 예전처럼 술에 취해 비틀거렸고, 2025년 가을 종로의 밤은 깊어만 갔다. 다시 종로3가 거리로 와서 우리는 악수를 하면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잘 가. 우리 나중에 또 이렇게 보자.”
“그래. 부디 건강해.”
“너도.”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