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 여행 이야기 11
1.
9월 마지막 주말의 화창한 날, 인천 소래포구에 가게 됐다.
내가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나는 대학 친구 혁국이 말로만 들었던 그곳을 구경시켜 준다고 해서 만났다. 인천에 있는 유명한 어시장이라고 들었지만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다. 정다운 친구들을 만나고, 항구에 있는 어시장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함께 먹게 된다는 기대감으로 전날부터 내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아침 열 시까지 부천시청역으로 갔다. 역 밖으로 나가자 혁국과 재관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혁국은 또 다른 친구인 상국이 소래포구로 직접 올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먼저 뜨거운 커피를 사 마시면서 인천으로 가기로 했다.
커피라는 말이 나왔을 때 혁국이 자동차를 몰고 가면서 말했다. 부천에도 카페가 너무 많이 생겨서 과당경쟁이라고. 혁국은 한 건물에 카페 네 곳이 나란히 붙어 있는 곳도 있다고 했다. 나는 카페가 많다고 해서 아무렴 동종 업종 가게 네 개가 주르륵 붙어 있는 곳이 있을까 의심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 말이 진짜라면서 어떤 건물 앞에서 천천히 자동차를 몰면서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거기에 정말로 크고 작은 카페 네 개가 붙어 있었다. 거의 다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들이었다. 저럴 수가!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커피 가격이 6000원인 곳도 있고 1500원인 곳도 있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영업 시장, 특히 카페 업종이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였다. 손님이 많아서 저 가게들이 모두 살아남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만간 한두 곳은 문을 닫을 것이다.
부천에서 소래포구로 가는 데는 30분 정도 걸렸다. 나는 인천에 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어릴 때 한 번도 가본 기억이 없다. 대학 시절에 술에 취해서 전철 1호선에서 자다가 서인천에서 내렸던 적이 두 번 정도 있는데 그런 일을 두고 인천에 갔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2018년 여름에 혁국이 인천 차이나타운과 월미도 등을 구경시켜 준 적이 있다.
인천이 조만간 부산을 제치고 서울에 이어 한국 제2의 도시가 될 것이라고 하니 인천에 관해서도 더 잘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 굳이 인천으로 여행 갈 계획을 세운 적이 없다. 서울과 밀접해 있고 너무 대도시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서울 동쪽부터 서인천까지 고층건물들이 쉴 새 없이 붙어 있는 풍경이어서, 나는 인천이 서울과 다른 도시라고 상상하는 것이 어색하다. 인천 사람들이 들으면 웬 궤변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무지막지하게 촉수를 뻗는 거대한 괴물 같은 서울특별시의 맨 서쪽에 있는 지역인가 생각할 정도다. 큰 의미의 서울인데 다만 행정상으로만 지역이 구분된 것처럼 인식된다는 말이다. 인천은 부산처럼 서울에서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진 도시가 아니라서, 나에게는 광대한 수도권 일대가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절반은 수도권에 살고 있으니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들린다.
2.
소래포구로 가면서 보니까, 바로 그 주말에 그곳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혁국은 고맙게도 그 축제에 맞춰서 나를 불렀던 것이다.
소래포구는 축제로 인파가 몰릴 것에 대비해서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으므로 혁국은 평상시에 주차하던 곳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푸념했다. 소래포구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우리는 천천히 걸어갔다. 축제 때문에 길거리에 설치된 작은 부스들에서 해산물 말린 것들과 전통과자 등을 팔고 있었다.
호떡을 파는 부스를 보았을 때 나는 불현듯 호떡을 사 먹자고 했다. 따뜻한 호떡이 매우 맛있어 보였다. 다른 곳에서 파는 일부 악덕 호떡 장사꾼은 가격에 비해 너무 빈약한 호떡을 파는데, 그날 내 눈에 보였던 호떡은 두툼한 게 아주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사 먹자는 말은 내가 했지만 재관과 혁국도 좋다고 호떡을 먹었다. 그날 먹은 호떡은 정말 크고 맛있어서 기억에 남을 만했다.
소래포구에는 1930년대에 염전이 생겼고, 1937년에는 일제가 이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을 나르기 위해 협궤열차를 부설하면서 더욱 활성화되었다. 1974년 인천내항이 준공된 후에 새우잡이 소형어선들은 정박이 가능한 소래로 포구를 옮기고 파시로 발전했다. 1996년 염전은 폐쇄되었고 현재는 소래습지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소래(蘇萊)라는 지명은 원래 솔애(좁은 갯가)라는 뜻인데 이를 한자로 음차 했다고 한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래주에서 왔다고 해서 소래라고 하는 설도 있다. 하여간 소래포구 맞은편에는 월곶포구가 있는데, 소래포구는 인천광역시에 속하고 월곶포구는 경기도 시흥시에 속한다.
소래포구에는 기존 전통어시장에 종합어시장이 추가로 개장되어서 지역 주민과 관광객 유치에 성공했었다. 한창 때는 싱싱한 해산물을 먹기 위해 평일에는 1만 5000명, 주말에는 3만 명이 몰렸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악덕 상인들이 바가지를 씌우고 그런 뉴스까지 가끔 보도되면서 소래소구 상권이 쇠퇴하기기 시작했다. 소래포구를 방문하는 사람은 크게 줄었고, 이제 이곳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오늘날 이런 불행한 현상은 제주, 속초, 광장시장 등 여러 곳에서 발생하는데, 그것도 다 먹고살기 어려우니까 벌어지는 현상이고, 없는 사람들끼리 하는 말인 듯도 하다. 바가지 씌워서 돈 버는 사람이 떼부자 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혁국과 재관은 물론 이미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입구 근처를 잠시 돌아보고 나서 사람들이 붐비는 전통어시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좁은 통로 양쪽에 수많은 상인들이 싱싱한 해산물을 전시해 놓고 팔고 있었다. 매우 분주하고 활기찬 시장 모습이었다.
우리는 어시장 건물 안에서 각종 해산물을 둘러보면서 계속 전진했다. 혁국과 재관은 거기에서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건물 바깥으로 나가서 물가까지 갔다. 거기에도 많은 상인들이 바닥에 해산물을 놓고 팔고 있었는데, 어떤 것은 방금 경매에서 나온 상품인 듯했다.
혁국은 갑자기 꽃게를 파는 아주머니 앞에 서더니 아주 능숙하게 가격을 흥정하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앞에는 세로 길이가 1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직사각형 모양의 플라스틱 박스들이 있었는데, 박스 안에는 작은 꽃게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내 눈에는 기괴한 모양의 납작한 돌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꽃게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박스 위에는 빨간색 격자형 금속틀이 있었고 그것을 플라스틱으로 묶어 놓았다. 가장 위에 있는 일부 꽃게는 앞발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그렇게 경매에서 갓 나온 싱싱한 게들을 나는 처음 보았다.
그 엄청난 모습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혁국은 꽃게를 4킬로그램인가 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결코 꽃게를 1킬로그램이나 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인이 게를 플라스틱 봉지에 담는 동안 나는 잠시 그 옆에 있는 경매장으로 갔다. 열려 있는 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안에서 경매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닥에 어떤 생선 박스들이 있었고, 앞에는 거간꾼이 서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십여 명의 상인이 수신호로 가격을 매기고 있었다. 가끔 TV에서 보던 경매 모습이었다.
3.
드디어 게를 사들고 우리는 경매장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서 식당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거기로 올라가니까 어시장 앞 갯벌이 잘 보였다. 드넓은 갯벌에 밝은 가을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갯벌 여기저기에 깊은 주름처럼 길게 파인 물골에만 짙푸른 물이 보였다. 하얀 갈매기들이 갯벌과 어시장 주변에 앉아 있거나 날아다녔다. 어시장 옆에 '난전'이라고 불리는 곳도 보였다. 모두 먹고살기 바쁜 삶의 현장이었다.
혁국과 재관은 어느 식당 앞에 서더니 실내로 들어가지 말고 실외 테이블에 앉자고 했다. 갯벌 풍경을 보기에도 좋고 더 시원하다고 했다. 흰색 식탁과 노란 의자들이 길게 줄지어 놓인 곳이었다. 아직 아침이라 그런지 그 넓은 곳에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혁국과 재관은 식당에서 나온 여인에게 게를 주면서 요리해 줄 것을 주문했다. 식당은 게 값을 받지 않지만 음식을 조리하고 기본 반찬을 제공하면서 식탁 차림비 또는 상차림비라는 것을 받았다.
혁국과 재관은 그 비용에 대해서도 흥정을 끝내더니 또 사 올 게 있다면서 나에게는 그곳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그들이 떠난 사이에 식당 종업원은 능숙하게 식탁 위에 밑반찬과 가스 불판을 마련했다. 다행히 혁국과 재관이 금세 횟감을 들고 다시 올라왔으며 상국도 마침 도착했다. 곧이어 꽃게찜이 나왔고 우리는 드디어 비닐장갑을 끼고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게딱지를 뜯어도 살이 통통해 보이지 않았다. 식당 여인은 알이 꽉 찬 암꽃게가 더 통통한데 그것은 봄이 제철이라고 했다. 우리가 사 온 게는 물론 숫꽃게였다. 인천에서 숫꽃게는 가을이 제철이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암꽃게에 비해 실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친구들은 게걸스럽게 꽃게를 뜯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우리 남자 넷이서 식사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연인과 함께 꽃게 같은 음식을 먹으러 가는 건 아닌 듯하다. 게처럼 살은 별로 없고 껍데기만 많은 것은 먹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입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게 많다. 게살을 먹으려면, 두 손에 장갑을 끼고 때로는 가위까지 동원해서 게를 과감하게 찢고 잘라서 먹어야 한다.
특히 작은 게 다리는 불가피하게 껍데기까지 입에 모두 넣고 씹다가 살만 먹고 껍데기는 다시 뱉어내야 할 때가 많다. 먹는 것보다 뱉어 버리는 것이 더 많은 음식이다. 식탁 위에 있는 음식 쓰레기 통에 게 껍데기와 입에서 뱉어낸 내용이 잔뜩 쌓인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은 결코 입맛을 돋우지 못하며 상대방의 매력까지 떨어트릴 듯싶다.
소래포구는 그냥 구경만 하고 연인과 데이트 할 때는 아무래도 조금 더 우아한 식당으로 가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