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국 여행 이야기 12
(앞서 올린 '인천 소래포구에서 꽃게찜을 먹다’를 잇는 글입니다. 모두 하루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https://brunch.co.kr/@4memory/372
4.
소래포구에서 거하게 꽃게를 먹고 나니 우리 몸에 비린내가 조금 뱄다.
해산물을 먹으면 이런 게 문제다. 우리는 모두 화장실로 가서 비누거품까지 내서 손과 입에 남은 비린내를 잘 닦아 냈다. 어쩌면 옷에도 냄새가 배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다.
또다시 뜨거운 커피가 생각나서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컴포즈커피를 찾아서 들어갔다. 의외로 좁은 카페 안에 사람이 꽉 차 있었고 커피를 받기 위해 한참 기다려야 했다. 각자 커피를 들고 차로 돌아간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청라. 그중에서도 드림파크였다.
그러나 혁국은 나름대로 어떤 시간 계산이 섰는지, 소래포구에서 드림파크로 가기 전에 경인아라뱃길 아라타워전망대를 먼저 들르겠다고 했다. 그는 여행할 때마다 여행지들의 동선과 이동 및 체류 시간 등을 계산해서 움직이는 계획적인 인물이다.
하긴 그것이 여행자가 갖춰야 하는 기본 덕목 아닌가. 나라 해도 여행 계획을 짜라고 하면 그렇게 할 것이다. 여행에서 우왕좌왕하게 되면 시간 낭비 돈 낭비에 동행인들의 불평까지 삼중 손해를 보게 된다.
경인아라뱃길은 인천 앞바다에서 서울을 잇는 길이 18킬로미터의 수로이다. ‘아라’는 민요 아리랑의 후렴구에서 따온 말이다. 2012년에 개통된 아라뱃길은 화물선과 유람선이 서울 도심까지 활발하게 운행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경인아라뱃길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것에 비해 비효율적이고 비실용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크루즈를 타고 서해를 거쳐 서울 시내로 바로 들어올 것으로 기대됐으나 모두 물거품이 된 듯하다. 화물 운송에 관한 한, 인천에서 서울까지는 잘 발달된 도로망으로 인해 굳이 화물선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현재 아라뱃길을 이용하는 화물선 운행은 하루 한 차례 정도. 관광객 수요도 없어서 여행터미널은 유령건물로 변하고 있다. 게다가 인공 수로로 인해 수질과 하천 생태계를 둘러싼 환경오염에 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아라뱃길은 주로 산책로와 자전거길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태로 계속 머문다면 물론 막대한 예산을 들인 것에 비해 초라한 결과이다.
그 아라뱃길의 초입에 거대한 아라타워전망대가 서 있다. 전망대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드넓은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말인데 거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276미터 높이의 전망대가 밝은 가을 햇빛을 받으면서 외롭게 우뚝 서 있었다. 아무도 오지 않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전망대는 무료입장이었다.
우리는 23층 실내 전망대로 갔다. 24층에 옥상 야외 전망대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엘리베이터 24층 버튼이 작동되지 않아서 올라갈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전망대는 모두 통유리창으로 조성되어 이어서 사방을 시원하게 볼 수 있다. 남쪽으로는 청라국제도시가 동쪽으로는 곧게 뻗은 아라뱃길이 보인다. 북서쪽에 서해갑문이 있고 더 멀리에 강화도가 희미해 보인다. 맑은 날, 서쪽으로는 인천대교를 거쳐 서해바다까지 볼 수 있다. 우리의 발아래로 ‘정서진’ 공원도 내려다볼 수 있다. 아라인천여객터미널 앞에, 동해에 있는 정동진에 대응하는 정서진이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만약 우리가 일몰 시간에 왔다면 전망대에서 아주 근사한 저녁놀 광경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전망대 경치는 매우 멋있는데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다.
“주말인데도 이렇게 사람이 오지 않는데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면서 시간을 죽이냐?” 내가 무심코 물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 중에 이렇게 할 일 없는 곳에서 시간 죽이면서 돈 버는 사람들이 좀 있어.” 교사 출신인 재관이 대답했다.
어떤 공무원은 온종일 너무 힘들게 일하면서 사는데, 어떤 공무원은 시간이 가기만 기다리며 지낸다. 그것은 일종의 팔자와 같다. 더 이상 길게 대화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수익성이 없어 보이는 전망대에 투입되는 예산과 비실용적 거대 건축물과 탁상공론적 계획과 보여주기식 행정과 무책임한 공무원들이 우리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작고한 정주영 회장이 남겼다는 명언을 다시 기억했다.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도 멋진 말이다.
“니 돈이면 그렇게 쓰겠냐.”
5.
아주 현대적이고 근사한 전망을 가지고 있지만 거의 아무도 오지 않는 듯 보이는 경인아라타워전망대에서 나온 우리는 드림파크로 향했다. 아주 넓고 아름다운 야생화단지가 있는 곳이다.
드림파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공원으로 들어갔다. 매우 넓어서 맑은 공기와 자연을 즐기면서 산책하기에 좋다.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산책로에 9월 말 밝은 햇빛이 따사롭게 비쳤다. 아마 한 시간 정도 우리는 공원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다.
“여기 꽃이 많은 단지가 있다고 하는데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우리가 한가로이 걷고 있을 때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여인이 물었다. 우리는 산책하면서 여기저기에 핀 꽃들을 보았지만 딱히 꽃이 많은 곳이 어디였는지 특정할 수 없었다. 그래도 친절한 혁국이 얼굴에 웃음을 담고 애써 대답했다. “저쪽에 꽃이 좀 많이 핀 것 같던데…”라고 말하면서 손으로 가리켰다. 여인은 고맙다고 인사했다. 혹시 대답을 잘 못한 것은 아닌지 우려를 삼킨 채 우리는 계속 걸어갔다.
그런데 조금 후에 우리는 정말로 꽃이 지천으로 핀 곳을 발견했다. 야생화 단지였다. 실은 혁국도 그곳을 찾고자 했는데 잘 모르고 다른 곳에서 한참 걷고 있었던 것이다.
“아까 그 여자한테 여기로 오라고 대답했어야 했는데 엉뚱한 곳으로 가라고 했네.” 혁국이 웃으면서 말했다.
“걷다 보면 알아서 찾아오겠지. 그런데 그렇게 되면 우리를 욕할까?” 내가 대답했다.
사실이긴 했다. 공원이 넓어서 그렇지, 계속 걷다 보면 결국 다 보게 되는 곳이었다. 그래도 어린아이가 다리 아프다고 칭얼대는 모습과 애 엄마가 불평하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야생화단지는 대단히 넓고 아름다웠다. 빨간색 라벤더색 노란색 꽃들이 지천으로 자란 사이로 난 작은 길로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광대한 꽃밭은 먹고사느라고 지친 중년 남성들의 가슴에도 묘한 감성을 주었다. 우리는 저절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풍경 사진을 찍었다. 인물 사진을 잘 찍지 않는 혁국도 나와 오랜만에 나란히 서서 꽃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재관과 상국은 자신들이 찍히는 것을 한사코 피했다.
어느덧 야생화단지 너머로 천천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공원에서 나가서 아라타워전망대에서 보았던 아라뱃길에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