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의 하루 - 정독도서관부터 헌법재판소까지 2

2025 한국 여행 이야기 20

by memory 최호인

1.


정독도서관에서 나와서 북촌로를 향해 걸었다.

골목골목에 한옥들이 즐비하다.


이 지역에는 정말 볼거리가 많다. 한옥들 외에도 여러 박물관들이 있다. 변두리 어느 지역이라면 그런 박물관 하나라도 있으면 찾아볼 상황이겠지만 여기는 곳곳에 박물관과 전시관이 있다. 한국전쟁 후에 지은 건물들만 아니라면, 조선시대와 근대에 걸쳐 역사와 문화가 쌓인 곳이라 건물 하나하나마다 이야깃거리가 있어 보인다. 나는 이 흥미로운 거리를 두고두고 돌아볼 계획이다.


북촌로 대로변에 와이레스(YLESS)라는 K-뷰티 플랫폼이 얼마 전에 생겼다.

와이레스는 한국 화장품을 세계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2024년 12월, 한국, 그중에서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북촌 한옥마을에 플래그십 스토어 1호로 먼저 공개됐다. 와이레스는 현재 20여 개의 새로운 브랜드와 1천여 개의 화장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중이며 올해 중순부터 미국 등 세계적으로 확장될 예정이라고 한다.


와이레스는 “Why less for your beauty?”라는 질문에서 나온 말이다.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을 주문하는 문장이다. 고품질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개하면서 소비자들이 다양한 제품을 직접 경험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꾸민 곳이라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오픈 이벤트가 진행 중이라서 파격적인 할인 프로모션을 제공하고 있었다.


북촌로를 걷다 보면 와이레스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대로변에 넓고 투명한 유리창과 밝은 주황색 기둥으로 건설된 화려하고 거대한 한옥이 딱 보이기 때문이다. 그 한옥 카페 앞에서 저승사자 의상을 갖춘 청년 세네 명이 행인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춤을 추듯이 몸을 슬슬 흔들고 있다. 행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말을 걸기도 한다. 올해 세계적으로 대박을 터뜨린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에 나오는 저승사자 의상을 입은 청년들이다. 검은 갓까지 갖추고 있다. 그들 뒤에 있는 한옥은 약간 특별한 카페이고 와이레스는 지하에 있다. 와이레스는 이 한옥카페 옆에 있는 입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계단으로 걸어 내려가서 와이레스 매장으로 들어서자 젊은 여인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내부 매장은 매우 넓다. 화장품에는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어색해서 안으로 깊이 들어가지도 못한 채 입구 근처에서 주춤거렸다. 그렇게 와이레스 매장을 대충 훑어보고 나서 나는 카페로 올라왔으며, 마침 창가에 비어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큰 유리 창문 안에서 보면 바깥 풍경은 늘 평화롭다.

이 카페는 K-뷰티 브랜드 ‘가히(GAHI)’가 만들었다고 한다. 넓고 쾌적한 공간, 안락한 의자와 쿠션,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 등이 돋보이는 카페다.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창밖 거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조금 후에 걷기 카페 지인들이 올라오더니 와이레스에서 화장품을 사면 이 카페에서 커피와 떡볶이 등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카페 직원에게 영수증을 보여 주고 정말로 커피와 떡볶이 등을 무료로 받아 왔다. 그들 덕에 나는 추가로 카푸치노를 마시고 컵에 담긴 맛있는 떡볶이, 일명 ‘컵볶이’까지 먹을 수 있었다. 최신 화장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충분히 와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것이 아니라 해도 북촌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곳에 올 만하다.



2.


와이레스 맞은편에 가회동성당이 있다.

카페에서 커피와 컵볶이를 먹고 나서 나는 북촌로를 건너서 가회동성당으로 갔다.


이 성당은 1949년에 명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은 이 성당을 인민일보 사옥으로 사용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이 성당은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되었으나 1954년에 재건축되었다. 이후 성당 건물을 여러 차례 수리를 거듭했으나, 2006년 정밀진단 검사에서 지나치게 낡아서 안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결과를 받았고 2013년에 새 성당으로 재탄생했다. 새 성당은 북촌한옥마을에 어울리게 한옥과 양옥을 결합하여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게 된 가회동성당 모습이다.


가회동성당이 있는 북촌 일대는 조선의 최초 선교사인 주문모 신부가 1795년에 처음으로 미사를 집전한 곳이다. 이곳에서 주문모 신부는 역관 최인길의 집에 숨어 지내면서 사목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주문모 신부는 활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신도의 배교와 밀교로 발각되었다. 포졸들이 덮쳤을 때 최인길이 주문모인 듯 행세하여 잡혔고 주문모는 여성 신도인 강완숙의 집으로 피신했다. 이 사건으로 을묘박해가 발생했으며 주문모를 도왔던 역관 최인길 등 다수의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했다.


주문모 신부는 경기도 여주와 충청도를 거쳐 전라도까지 지방으로 전도활동을 확대하여 활동을 지속했다. 그가 활동했던 5년 동안 조선의 천주교 신자는 4천 명에서 1만 명으로 증가했다.


1800년 여름 정조의 급작스러운 사망 후에 어린 순조를 대신하여 수렴첨정을 시작한 정순왕후는 노론 벽파를 등용하고 남인들을 숙청하기 위한 조치로 천주교를 적극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다. 1801년 대대적인 천주교인 색출 작업이 단행되었고 다수의 순교자가 발생하자 (신유박해) 주문모 신부는 청나라로 돌아가려고 했던 계획을 바꾸고 의금부에 자수했다. 그해 봄에 그는 새남터에서 참수됐다.


이러한 조선 천주교 전파 역사를 전하기 위해 가회동성당에는 상설 역사전시실이 마련됐다. 시간이 충분치 않아서 나는 그날 거기까지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아무튼 이 같은 순교 역사에 따라 2014년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식을 계기로 가회동성당의 주보는 설립 당시 주보였던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서 주문모 신부와 복녀 강완숙 공동주보로 바뀌었다.


역사전시실 옆에 '은선재(隱仙齋)’라는 한옥 쉼터가 있다. 은선재는 ‘은둔하는 신선이 머무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고요하고 평화로운 공간을 지향한다는 의미일 게다. 현재 이 공간은 신자들의 쉼터이자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톨릭 성당이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지만 가회동성당은 비교적 좁은 자리에 있다. 교회 마당에는 조선의 첫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1821-1846)의 동상이 서 있다. 그는 마카오로 가서 신학을 공부했던 조선 최초의 유학생이기도 했다. 그는 사제 서품을 받은 후에 1845년에 조선으로 들어와서 용인 근방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이듬해에 잡혀서 새남터에서 참수됐다.


나는 아무도 없는 가회동 성당 예배당 안으로 들어섰다. 다소 어두운 실내 전방에 십자가가 달린 벽만 조명으로 환해 보였다. 고요한 실내에는 교회 특유의 긴 나무의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여느 교회에 들어갔을 때처럼 잠시 앉아서 눈을 감고 쉬었다. 조금 전 와이레스의 소란스러움과는 완전히 다른 적막이 나를 엄습했다.


교회 아니라 사찰이나 다른 종교기관이라도 들어가서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곳이라면 나는 기꺼이 앉아서 쉴 수 있다. 그것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인간 세상에 평화와 사랑의 종교가 주는 중요한 선기능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