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 여행 이야기 19
1.
도서관과 독서실은 다르다.
도서관은 책들을 구매하고 관리하고 관람과 독서와 대여를 하는 곳이며 최근에는 아예 사회복지문화 복합시설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서실은 자신의 책을 가지고 와서 오로지 조용히 공부를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요즘은 예전의 독서실이 거의 사라졌고 그와 비슷한 기능을 했던 스터디카페가 늘어났다.
나는 과거 독서실에는 자주 다녀서 익숙하지만 스터디카페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스터디카페가 공부하기에 얼마나 좋고 효율적인지 모른다. 지난 수년간 뉴스에 자주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것은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이 일반 카페를 많이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소위 ‘카공족’이 겨우 커피 한 잔 시키고 여러 시간 동안 카페 테이블을 점령하고 휴대폰과 노트북 등을 충전하는 일까지 벌어져서 카페 경영자들이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카공족이 아주 조용한 스터디카페보다 조금 시끄럽고 복잡한 일반 카페를 선호하는 이유를 이해할 듯하다. 나라 해도, 마치 내일 공무원 채용시험을 보는 것처럼 심각하게 집중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타인의 시선이 서로 오가고 적당하게 시끄럽고 조금 분위기가 있으며 맛있는 커피도 마실 수 있는 곳을 공부하는 장소로 선택하고 싶다. 너무 조용해서 외롭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장소는 오히려 공부하기에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영세 카페에 들어가서 눈치 없이 여러 시간 죽치고 있어서 욕먹는 카공족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카페의 입장을 생각해서 적어도 한두 시간에 한 번씩 뭔가 사서 마시거나 먹는 센스를 갖춰야 한다. 특히 작은 카페라면 더욱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카페는 누군가가 돈을 벌기 위해 비즈니스를 하는 장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학창 시절에 나는 가끔 정독도서관에 갔었다.
집에서 공부하지 왜 먼 곳에 있는 도서관까지 갔었을까.
집에서 공부하면 나태해지거나 집중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집이 조용하지 않거나 자신의 방이 없을 수도 있었다. 또한 집이 너무 덥거나 추울 수도 있었다. 나는 중고등학생 때 다행히 작으나마 내 방이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자기 방이 없는 아이들이 훨씬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독서실이나 도서관에 가고자 했고, 그것이 요즘 카페에서 죽치고 공부한다는 '카공족'처럼 유행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나 쉽거나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동네에 있는 독서실은 집에서 가까워서 좋지만 비용이 들었다. 매달 수천 원씩 내고 들어가야 했던 듯하다. 그런 사립 독서실에 등록하면 자기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문제는 한 달씩 끊었다는 것이다. 체육관도 그렇지만 그렇게 한 달씩 등록하면 이상하게 잘 안 가게 된다. 시험 전에는 바짝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독서실에 등록하지만 급한 게 지나가면 굳이 독서실에 가서 공부해야겠다는 열의는 식기 마련이다.
공립 도서관은 동네 독서실을 대신해서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 장소였다. 집에서 멀리 있어서 오가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지, 공립도서관이 가진 장점은 많았다. 입장이 무료라는 것, 한 달씩 등록할 필요가 없다는 것, 공간이 크고 식사를 할 수 있는 곳 등은 모두 우리가 공립도서관에 가고 싶은 이유였다.
문제는 지금처럼 공립도서관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립 도서관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고, 간다 해도 열람실 자리는 학생들 숫자에 비해 매우 적었다. 학생들은 서로 빈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쟁이 심했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정독도서관처럼 유명한 곳으로 가서 자리를 차지하려면 새벽 일찍 가서 줄을 서야 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몹시 추웠던 일요일 아침들을 기억한다.
새벽 여섯 시에 집을 나선다 해도 정독도서관에 가면 긴 줄을 서야 했다. 그래도 늦어서 자리가 이미 매진될 때가 많았다. 열람실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은 입관 순서표를 받고 돌아서야 했다. 그렇게 되면 이미 공부할 열의를 잃게 된다. 규칙적인 생활을 깨고 추위에 떨면서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서 겨우 도서관에 왔는데 빈자리가 없다는 것은 매우 절망적인 일이었다. 그때 느끼는 좌절감과 허전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새벽에 더 일찍 도서관으로 가서 무사히 도서관 열람실로 들어갈 수 있을 때조차 공부를 잘 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 일찍 일어나서 추위에 떨면서 도서관으로 가서 줄까지 섰다가 열람실로 들어가면 몸이 녹으면서 노곤해졌다. 금세 졸음이 오고 집중해서 공부하기가 어려웠다. 잠을 깨기 위해 움직여야 했는데 이상하게 금세 배까지 고팠다. 식사하겠다고 구내식당으로 나올 때 나는 아예 가방을 싸서 나와버리곤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독도서관에 여러 번 갔지만 그곳에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다. 졸면서 공부를 하다가 결국 도서관에서 일찍 나오고 말았다는 슬픈 기억만 남았다. 도서관에서 나온 나는 학원들과 종로서적과 빵집들이 있는 종로 거리를 배회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3.
대학에 간 후에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정독도서관.
지난가을 한국 여행길에 다시 가보았다. 내가 참여하는 걷기 카페에서 마침 그곳을 방문한다고 해서 함께 가기로 했다.
우리는 안국역에서 만나서 가기로 했는데, 여행 기간에 종로3가에 자주 가던 나는 습관적으로 종로3가역에서 내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늦게 된 나는 정독도서관으로 바로 가겠다고 했다. 어차피 그곳에서 모두 점심식사를 해야 한다고 했으므로 그곳까지 나 혼자 가게 되었을 뿐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정독도서관 입구에 도착해서 보니, 바로 왼쪽 북촌로5가길 골목에 ‘독립운동가의 길’이 있었다. 나는 이런 곳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곳으로 가보았다. 북촌한옥마을 일대가 조선시대에는 권문세가가 거주하던 지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했던 지역이기도 해서 이런 명칭이 붙었다. 안국역에서 정독도서관까지 약 400미터 구간은 ‘여성독립운동가길’로도 불린다.
독립운동가의 길로 들어서면 오른쪽 담벼락에 독립운동가 여덟 분의 이미지를 담은 그라피티가 있다. 이곳 벽화 자리에는 원래 2013년에 독립운동가 일곱 분의 이미지가 그려졌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미지들의 색이 바래서 2020년 새로 벽화 작업을 했다. 정독도서관은 유관순여사의 스승인 김란사 지사의 순국 101주년을 맞이해서 독립의식을 되새기는 의미에서 이렇게 벽화를 새로 꾸몄다고 한다.
이 길을 처음 와본 나는 호기심과 함께 그 벽화를 보고 나서도 골목길을 한참 더 걸어 올라갔다. 그렇게 가도 정독도서관을 들어갈 수 있는 다른 입구가 나올 것으로 추측했기 때문이다. 나의 오판이었다. 카카오맵을 보니 정독도서관 북쪽 끝 정도에 이르렀어도 후문이나 옆문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와서 정독도서관 입구로 들어갔다.
혼자서 왔다면 옛 추억을 되새기면서 당연히 도서관 열람실로 들어가 보았을 것이다. 그날은 걷기 카페 사람들을 따라서 갔기 때문에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정독도서관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꽃과 나무가 많은 정원과 산책로가 잘 꾸며져 있어서 도심 속에 있는 정원과도 같다. 코로나팬데믹 전에, 그러니까 아마 십여 년쯤 전에도 북촌을 방문하기 전에 이 정원에 왔었다. 그때도 무척 예쁘고 정다운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정원을 가로질러 들어가자 정면에 삼층으로 된 하얀색 정독도서관 건물이 보였다. 새파란 하늘 아래라서 더욱 아름다운 듯했다. 본관 건물 앞에는 분수대도 있지만 물은 없었다. 걷기 카페 사람들은 구내식당에 있었다. 정독도서관의 구내식당은 ‘소담정’이라는 건물에 있다.
소담정으로 들어가면 꽤 넓은 카페테리아가 있다. 어릴 때 내가 갔던 구내식당도 그곳에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소담정의 메뉴는 백반, 김치찌개, 육개장, 비빔밥 등 다양하다. 착한 가격에 맛도 좋다. 건물 이름 그대로 음식이 소담하다. 게다가 식당 직원들까지 친절했다. 다만, 카페테리아인 만큼 스스로 네모난 쟁반을 가지고 들고 다녀야 한다.
넓고 깨끗한 식당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만약 내가 이 근처에 산다면 소담정을 자주 찾아올 것만 같았다.
4.
정독도서관은 원래 경기고등학교 건물을 1977년 서울시가 인수하여 대형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현재 52만여 권의 장서와 각종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정독도서관의 정원에는 철 따라 아름다움을 뽐내는 각종 꽃과 나무 등으로 꾸며져 있다. 본관 입구 서쪽에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연못을 조성했고 그 주변에 초정도 있다. 이 정원에서 겸재 정선이 인왕산을 바라보면서 인왕제색도를 그렸다고 한다. 그곳은 근대 조선 개화파였던 김옥균, 서재필, 박제순의 집터이기도 했다.
따뜻하고 맛있는 백반을 먹고 나서 우리는 정원으로 나왔다. 정원 산책로에는 앉기 좋은 나무 벤치들이 있다. 우리는 물레방아가 도는 인공 연못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잠시 쉬었다.
나무 벤치에 앉아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초록 나무들이 줄지어 선 넓은 정원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또다시 이 도서관으로 와서 공부하겠다고 할까. 그리고 또 와서는 책을 펴고 졸다가 금세 졸리고 지루해져서 밖으로 나가고 말까.
그때는 하루하루 몹시 힘들었는데,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도저히 못할 것 같은데, 그런데도 그때가 그리운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