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철로가에 핀 꽃들을 딴 소년의 후회와 그리움
대방동과 여의도 사이를 흐르는 샛강이 있다.
여름이나 가을 오후에 나는 가끔 샛강 옆에 있는 철길*로 놀러 갔다. 수없이 늘어선 두툼한 침목과 작은 자갈들, 그 위에 아주 길쭉하게 놓인, 영원히 만나지 않을 것 같은 두 개의 철로는 어린 나에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상력을 품게 해 주었다. 해저무는 저녁 붉어가는 서편 노을을 배경으로 한없이 길게 뻗은 검은 철로를 진지하게 오랫동안 바라본 사람들은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철로는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처럼 끝도 없이 기다랗게 뻗어 가다가 이윽고 붉은빛 속으로 꾸불텅 사라진다. 때로는 아득하게 검은 점으로 뭉쳐지고 지평선 속으로 소실된다.
철로 옆에 서서 서쪽 하늘을 보면서 상상했다.
철로를 따라가면, 낯설지만 정다운 무엇인가 나타날 것 같다.
평행선 모습의 철로를 따라가면, 미지의 세계가 나에게 근사한 뭔가를 선사할 것 같다.
그러나 철로를 따라 한없이 걸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기다랗게 뻗은 철로를 볼 때마다 마음이 설렌다.
딱딱한 쇠붙이지만 신기하게 다정해 보이는 철로를 망연히 바라보면서, 나는 철로가 지나갈 먼 길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에 사로잡히곤 했다. 해질 무렵, 철로에 서서 서쪽 하늘을 보면 붉은 기운에 젖은 일몰 광경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아름다웠다. 머나먼 철길 저편으로 붉은 태양이 시나브로 뚝뚝 떨어지고, 서편에 낮은 대지를 붉게 물들였던 하늘은 이윽고 어두운 잿빛으로 변해갔다.
달콤한 바람과 교감하며 춤을 추듯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나는 가을 코스모스를 좋아한다.
가을에 철길이 곧게 뻗은 그곳에 가면 코스모스가 무수하게 피어났다. 살랑거리는 코스모스는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거기에는 분홍과 보랏빛 꽃이 많았다. 그 꽃들은 맑은 대기로 피어 올라 옅은 저녁노을에 묻혀서 가을의 정취를 더했다.
나와 친구들은 원래 쓸데없이 꽃을 따는 잔인한 짓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코스모스에게만 미안한 추억이 있다.
철길을 따라 노량진 쪽으로 걷다 보면 철로 아래로 굴다리가 있었다. 그곳에 가면 침목 사이가 뻥 뚫려서 밑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들이 오가는 거리가 내려다 보였다. 그 굴다리 위 철로가에 엎드려서 침목 사이로 코스모스 꽃을 떨어뜨리면 꽃은 허공을 빙글빙글 돌면서 굴다리 아래로 낙하했다. 우리는 경쟁적으로 꽃을 따 와서 침목 사이로 코스모스 꽃을 떨어뜨렸다.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둥그런 코스모스 꽃 밑에 넣고 위로 잡아당기면 코스모스의 줄기는 그대로 남고 꽃만 똑 따졌다.
“야, 멋있다. 꽃이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지잖아.”
“진짜 신기하다.”
우리는 철로에 엎드려서 침목 사이로 떨어지는 꽃을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굴다리 높이가 7, 8미터 정도 되었을까. 겨우 2초도 안 되는 동안 꽃은 빙글빙글 돌면서 아래로 낙하하여 보도와 차도 위에 떨어졌다.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꽃 밑의 줄기를 살짝 돌리면서 낙하시키면 꽃은 더욱 팽그르르 돌면서 낙하했다. 그리하여 수많은 꽃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그곳으로 떨어졌다. 내가 꽃을 딸 때 꽃은 비명을 질렀겠지만, 나는 그만 듣지 못하고 말았다. 떨어진 꽃들은 길바닥에 널브러져 그날 밤 가까스로 마지막 숨을 쉬었을 것이다.
처음에 누가 그 ‘잔인한 짓’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잔인함에 대한 후회와 연민은 처음에만 거셌을 뿐이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반복하면 이내 쉬워진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가 인생에서 쓸데없이 잔인하게 꽃을 가장 많이 땄던 때다. 나는 나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했다는 죄의식과 함께 내가 저질렀던 그 ‘짓’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 일로 인해 나에겐 평생 코스모스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았다. 내가 왜 그랬던가. 잠시 허공을 돌면서 떨어지는 모습이 멋있어 보인다고 멀쩡한 꽃을 따서 버리다니, 참 벌 받을 짓이었다.
꽃을 보면 너무 예쁘다고 찬사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평균 이상으로 호들갑스럽게 꽃이 예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릴 때라 더 그랬는지 모른다. 꽃이 그리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어쩌면 꽃이 그저 나름대로 가져야 할 당연한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시큰둥하게 여겼던 듯하다. 어찌 꽃뿐일까. 만물은 저마다 고유한 아름다움으로 빛나지 않는가.
어쨌든 나는 꽃의 아름다움을 결코 요란하게 예찬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만약 어떤 꽃이 가장 아름답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코스모스”
“이유는?”
“그것은... 첫사랑과 같고… 미안해서.”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고, 나는 나중에 코스모스가 나의 첫사랑과 같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철없이 뛰어놀던 내가 느낀 수많은 아름다움 가운데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그 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을 따져 올라가면, 나는 단연코 그 샛강 곁 철로에서 산들산들 흔들리면서, 내 마음을 훔쳤던 코스모스가 가장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그때 우리 집 마당에도 나팔꽃과 팬지꽃과 수국과 해바라기가 예쁘게 피어나기는 했지만, 그 꽃들은 철로를 따라 피어난 코스모스 군상이 주었던 아름답고도 쓸쓸하고도 허전한 이미지를 나에게 선사하지 않았다.
꽃집에서 들으면 안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잘린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슷한 의미에서, 분재는 더욱 싫다. 분재는 너무 부자연스럽고 기이한 가분수를 보는 느낌이 든다. 꽃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온전히 자연스럽게 있어야 한다는 자연주의적 감정이 나에게 원죄 의식처럼 강하게 남아 있다. 땅에 그렇게 뿌리박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지, 꽃줄기를 잘라서 꽃병에 담는 것은 왠지 잔인한 것 같고 인간만을 위한 탐욕적 소유 행위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매일 물을 갈아준다 해도, 꽃병에 담겨 있는 꽃은 며칠도 지나지 않아 물기와 탄력을 잃고 색이 변하고 시들며, 이윽고 힘없이 꽃잎을 떨어뜨린다. 더 이상 꽃잎을 부여잡고 있을 힘도 잃은 듯 고개 숙인 그 처량한 꽃이 나는 가련해 보일 뿐이다.
땅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땅에서 온 대로 죽어서도 천천히 땅으로 그냥 돌아가고 말 뿐이겠지만, 이미 잘려서 탁상 위 꽃병에 담긴 꽃은 고향을 떠난 불쌍한 신세가 되어 채 죽기도 전에 인간에 의해 “지저분해졌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쓰레기통으로 던져지는 존재가 되곤 한다. 땅에서 와서 땅으로 돌아가야 할 꽃이 엉뚱하게 쓰레기 속에 파묻혀 일생을 마치게 된다.
이와 비슷한 생각은 에리히 프롬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의 첫 부분에도 나와 있었던 듯하다. 내 기억이 맞는지 헷갈리지만, 그 책에 적힌 내용은 이랬던 듯하다. 서양인은 들판에서 아름다운 꽃을 보면 꺾어서 집으로 가지고 오지만, 일본인은 들판에 핀 꽃이 그냥 거기서 아름답게 존재하도록 둔다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오해하지 마시라. 프롬의 책에 정확히 그런 내용이 적혀 있든 아니든, 또 그런 관찰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프롬은 아마 소유의식과 존재의식에 관해 설명하고자 그런 서두를 말했을 것이다.) 그것은 소유하려는 욕망에 가득 찬 서양적 의식과 존재하는 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구현하려는 동양적 의식의 차이인 것으로 설명되었던 듯하다.
아무튼 코스모스에 관해서는, 나의 감정을 표현하기가 간단하지 않아서 미안하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이해했을 것으로 믿는다.
코스모스를 예뻐하는 내 마음을.
코스모스를 좋아해야 할 것 같은 내 마음을.
코스모스에게 미안하면서도 좋아한다고 하는 내 마음을.
코스모스를 첫사랑과 같다고 하는 내 마음을.
코스모스가 내 첫사랑과 닮았다고 하는 내 마음을.
* 철길 - 지금도 이 철길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에 서울에서 한강을 건너는 화물열차 철로는 노량진과 대방동을 거쳐 인천 방향으로 향했다.
(이 글은 원래 독자적인 작품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다. 이 글은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장편소설에 나오는 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