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mory Sep 17. 2023

버지니아 울프를 그리며

2023년 9월 16일(한국여행 4일째) 우연히 [자기만의 방]을 본 후

1.

9월 중순 가을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9시면 문 닫을 시간이라고 알바 직원들이 퇴근 준비로 바쁜 강남역 뒷골목의 어느 낯선 식당에서 홀로 늦은 저녁을 먹은 나는 식당 맞은편에 있는 영풍문고로 들어섰다. 날씨 탓인지 다소 축축한 냄새만 감도는 고시텔 숙소로 돌아가봤자 특별히 해야 할 아무것도 없는 여행객인 나는 새 책에서 풍기는 잉크 냄새를 맡고 싶었다.


서점 내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정말 작은 책들을 발견했다. 앙증맞은 책들이 진열된 공간에 고를 만한 책이 많지 않은 것이 문제였지만, 나는 주머니에 폭 빠질 듯한, 또는 한 손에 쏙 쥐어지는 그 책들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한 권이라도 사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히 가격까지 착하다.


나중에 비행기 안에서 읽을거리로, [군주론]을 집을까, [싯다르타]를 집을까 하다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오래전에 읽었던 것들이라 내려놓고, 우리의 페미니스트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으로 정했다. 책을 보는 순간 문득 울프가 어떻게 죽었는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그녀가 죽음에 앞서 자신의 말년에 느꼈을 고독은 얼마나 될까.

그 고독력이 얼마나 크길래 견디어내기보다 차라리 자신을 영원히 잠재울 힘만큼 커졌을까.


이미 알지도 모르지만, 당신에게 울프에 관해 조금 더 설명하고 싶다.

울프는 1941년 3월 28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때 그녀는 가장 유명한 소설가 중 한 명이었으며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언론에 대서특필된 그녀의 죽음 뒤에  한 남자가 있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는 바로 남편인 레너드 울프. 공연히 떠벌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가 가련한 버지니아를 버렸고 그녀로 하여금 마지막 선택을 하도록 이끌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2.

버지니아는 1882년 영국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버지니아와 언니 바네사 자매는 홈스쿨링을 받은 후에 킹스칼리지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그녀는 문학에 빠져들었고,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의 클럽인 블룸스버리 그룹(Bloomsbury Group)에 가입했다. 거기서 수필가인 레너드 울프를 만났던  것.


그런데 버지니아의 자살로 구설수에 오른 레너드는 사실 어땠을까.

레너드는 1904년 블룸스버리 그룹에서 당시 22세였던 버지니아를 만났고 곧바로 열렬한 사랑에 빠진 나머지 그녀에게 청혼했다. 버지니아는 레너드가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거절했다. 버지니아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레너드는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는 못했다.


버지니아가 레너드를 거절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버지니아는 어릴 때부터 의붓오빠 두 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성폭행은 그녀가 여섯 살이었을 때 시작되어 23세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로 인해 훗날 그녀는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고 정신분열증을 앓았으며 특히 남성혐오증에 시달렸다. 요즘은 사회가 험해져서 그런지, 혐오증이란 단어가 제법 쉽게 이해된다. 알다시피 '혐오증'은 중독처럼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다.


어니 바네사가 결혼한 1912년, 혼자 남은 버지니아는 돌연히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젖어들었던 듯하다. 그녀는 결국 이미 8년간 자신을 따라다닌 레너드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레너드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 붙어있었다.


1) 그의 직업을 포기하고 자신의 작품활동만 도울 것,

2) 자신에게 절대로 잠자리를 요구하지 말 것.


당신이라면 어떨까.

혼인에 앞서 이런 요구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부디 잊지 말라. 이때는 산업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서구사회라 해도 여성을 명백히 ‘제2의 성’이라고 인식하고 여성을 과도하게 억압하는 남성지배 의식과 문화가 여전히 가득했던 20세기 초였음을.


그러나 놀랍게도 레너드는 버지니아가 내건 조건들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원래 직업을 포기하고 성적 욕망까지 억누르면서 버지니아와 결혼하겠다고.


어쩌면 그는 혹시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일단 결혼하고 나면 설마 잠자리까지 거부하겠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면 언젠가는 나를 받아들이고 육체적으로도 함께 어울릴 날이 올 수 있을 거야. 내가 그녀에게 섹스의 행복까지 알려주고 말겠어.


또는 레너드는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래. 나는 이 여인을 위해 나의 직업과 성욕을 버려도 좋다. 오로지 이 여인의 곁에서 이 여인과 함께 숨 쉬며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행복할 것이다. 섹스는 한갓 육체적 향락일 뿐이며, 우리의 고귀한 정신적 사랑에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버지니아가 남긴 유서가 공개된 이후 사람들은 드디어 레너드가 버지니아에게 진정 헌신적인 사람이었다고 평가한다. 레너드는 버지니아를 위해 출판사들을 찾아가서 그녀의 책 출판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레너드의 노력이 없었다면 버지니아의 책들이 세상에서 빛을 발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3.

버지니아 울프는 1915년 첫 작품 [출항]을 선보였다. 그녀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그로부터 10년 후에 출판된 [댈러웨이 부인]. 이 작품은 페미니즘, 정신질환, 동성애 등 매우 현대적 테마들을 진지하게 다룸으로써 그녀를 페미니스트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작품들은 대체로 매우 큰 인기를 얻었고 그녀는 유명 작가가 되었다.


버지니아는 레너드의 헌신적인 사랑에 감동받았음에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정신적 혼란과 질병으로 깊은 괴로움을 느끼고 절망 속으로 빠져든다. 그녀에게 남성 혐오증은 극복하기 어려운 깊은 병이었다. 남편을 이해하면서도 스스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자신에 관해 버지니아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버지니아는 거의 불가피하게 레너드를 계속 밀어냈고 그를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아울러 그녀의 정신병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의 가련한 버지니아는 육십이 다 되어 드디어 자신의 운명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고 있음을 인식했다. 그녀는 매우 눈에 띄는 남다른 방법으로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자칫 모방 자살을 이끌 수도 있는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앞서 남편 레너드를 위한 한 장의 유서가 남겨졌다.


“내가 다시 미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또다시 그 지독한 시간을 극복할 수 없을 겁니다. 이번에는 정말 회복이 어려워요…..  나는 정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요. 내가 당신의 인생을 망치고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내 인생의 행복을 당신에게 빚지고 있다는 겁니다. 당신은 내 모든 것을 참아내고 놀라울 만큼 친절했어요. 나는 이 사실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기 원합니다. 만약 누군가 나를 구할 수 있었다면 그는 바로 당신일 겁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유서 중)


버지니아는 서늘한  봄바람이 부는 날,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우즈 강가로 가서 자신의 외투 주머니들에 돌멩이를 잔뜩 집어넣고는 천천히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버지니아의 자살 전에 영국의 2차 대전 참전을 두고 레너드와 이견이 발생했는데 그 일을 두고 그들이 심하게 다툰 것도 사실이다. 레너드는 영국의 참전에 동의했지만, 버지니아는 결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니, 아주 우연히 이 작디작은 그녀의 책을 발견한 내가 어찌 그녀의 죽음을 되새겨 슬퍼하지 않으리오.

하필  서울에 온 지 나흘째 되는 날, 가을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하나밖에 없는 내 운동화까지 적시면서 고독하게 걸어야 했던 강남역 뒷골목에서 나는 차가운 강으로 걸어 들어간 버지니아를 생각하면서 속으로 작은 슬픔을 삼켰다.


문득 다시 생각한다.

삶은 얼마나 고독한가.

이 고독을 어찌할까.



<추신>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됩니다.˝


1929년 출판된 [자기만의 방]은 특히 펜을 잡은 여성에게는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마치 정신병자라도 되는 것 같은 딱지가 붙어 다니고, 조금의 시간적 여유와 자기만의 작은 공간도 주어지지 않는 당대 현실을 설파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28년 10월 한 대학 강연에서 발표된 강연을 수정하고 정리한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만약 샬롯 브론테가 1년에 300파운드를 소유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라고 물으면서, 당대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필히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녀는 창조적인 글쓰기를 위해서 기발한 정신적 재능도 중요할 수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물질적 뒷받침임을 소설을 통해 밝혔다.


그 후 100년이 지난 현재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한 환경은 얼마나 개선되었을까.



<버지니아 울프가 남긴 유서>


내가 다시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껴요.

우리는 그 끔찍한 일을 다시 겪을 수 없어요.

그리고 이번은 회복될 수 없을 거예요.

환청이 들리기 시작하고, 집중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에 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려고 해요.

당신은 제게 가능한 가장 큰 행복을 선사했지요.

당신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어요.

두 분은 이 끔찍한 병이 오기 전까지는 더 행복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요.

저도 알아요. 제가 당신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제가 없다면 당신은 자신의 일을 돌볼 수 있어요.

당신도 알게 될 거예요.

전 지금 이것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잖아요. 읽을 수도 없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 당신에게 제 인생의 모든 행복을 빚졌다는 거예요.

당신은 제게 한결같이 인내하고 대단히 친절하게 대해 줬어요.

전 그걸 —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기를 원해요.

만약 누군가 저를 구할 수 있었다면 그건 당신이었을 거예요.

당신의 확실한 선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제게서 사라졌어요.

이제 더는 두 분의 인생을 망칠 수 없어요.

두 분도 우리 모두 함께였을 때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겠지요.

버지니아.


(유서 내용 중 "두 분"은 남편 레너드와 언니 바네사를 말한다. 유서 인용은 위키피디아에서. https://ko.wikisource.org/wiki/%EB%B2%88%EC%97%AD:%EB%B2%84%EC%A7%80%EB%8B%88%EC%95%84_%EC%9A%B8%ED%94%84%EC%9D%98_%EC%9C%A0%EC%84%9C)

매거진의 이전글 코스모스와 첫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